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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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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21-26

살인의 뿌리를 제거하라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5장 강해 설교 · 마태복음 5장 새벽말씀

이 말씀은 바로 앞에 나오는 5:20절에서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보다 더 나은 의를 이루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살인이라는 나무만 보지 않으시고 그 나무의 숨겨진 뿌리인 분노를 보신 것이다.

21절의 "옛 사람들에게 말한 바…들었으나"라는 말과 22절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라는 말이 대조된다. 21절에서 예수님 앞에 있던 사람들이 들은 옛 사람들에게 말한 것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율법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이는 유대교 랍비들이 율법을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 해석한 것을 말로 오랫동안 전해온 것이다. 따라서 대조되는 것은 유대교 랍비들의 전통적인 해석과 하나님 말씀의 원저자의 해석이 대조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해서는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은 살인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있던 사람들도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러한 생각을 뒤집어 엎으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들보다 훨씬 더 나아야 한다는 것이다.

21-22절에서 말한 살인죄란 그 숨겨진 뿌리인 분노에서 시작하여 겉으로 드러난 나무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사람을 죽이는 모든 과정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겉으로 드러난 나무인 살인 죄만 보지 말고 살인 죄의 숨겨진 뿌리요 시작인 사람들의 마음 속의 분노를 보라고 하신 것이다. 인간인 재판관들은 사람들의 마음 속은 알 수 없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살인죄만 죄로 처벌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분노까지도 다 아시기에 제자들에게 살인의 뿌리요 시작인 분노에 대해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살인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죄가 세 단계로 발전해 가면서 그에 대한 심판도 역시 세 단계로 점점 강해진다. 첫째 단계는 형제에게 분노하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유대교 랍비들의 전통적인 가르침에서는 살인한 자만 심판을 받는다고 했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나무만 보고 심판한 것이다. 심판을 받는다는 말은 각 지방에 있던 공회에서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 경우 그 심판의 결과는 무조건 사형이다. 그렇다면 형제 자매를 보고 분노하는 마음을 품기만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조건 사형이라는 뜻이다.

둘째 단계는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된다는 것이다. 라가라는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머리가 빈 놈"이라는 뜻이다. Hagner는 이러한 욕이 오늘날 사람들이 쓰는 비슷한 욕보다 훨씬 더 모욕적인 욕이라 했다(Hagner, 116). 이러한 욕은 마음 속에 감추어 두었던 분노를 말로 표현한 것이기에 분노를 품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죄이다. 그렇기에 공회에 잡혀간다고 한 것이다. 공회란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교의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 공회를 말한다. 이는 지역의 공회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던 공회이기에 훨씬 더 심각한 죄이다. 역시 살인죄와 똑같다고 했기에 이경우 재판 결과는 무조건 사형이다.

세번째는 바보라고 번역된 말은 원래 모레라는 말이다. Wilkins는 이 말이 그리스어의 " μωρός"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Hagner 역시 같은 말을 하며 라가와 모레는 거의 같은 뜻일 것이라고 했다(Hagner, 117). 그러나 만약 Hagner의 말처럼 "모레" 라는 말이 그리스어에서 온 말이고 "라가"라는 말과 거의 같은 뜻이라면 세단계의 점층법은 무너져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수의 주석가들은 이 말이 아람어나 히브리어의 음역일 것이라고 말한다. Nolland는 이 말이 아람어에서 빌려온 말이라고 말한다(Noland, 231). Stott는 이 말이 히브리어의 반역자라는 말의 음역일 것이라고 말한다(Stott, 84). Mounce도 이 말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킨다며 히브리어의 음역일 가능성도 제시했다(Mounce, 45).

유대인들이 반역자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살기 때문에 지옥에나 떨어질 놈이란 뜻이다. 하나님을 믿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러한 욕은 최고 심한 욕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하여 지옥불에나 떨어져 버릴 저주 받을 놈이라고 악을 쓰며 욕하는 말일 것이다. 마음 속에 품고 있던 분노에서 시작해서 말로 "머리 빈 놈"이라고 말해서 그 분노를 표현하고 그래도 그 분노를 참지 못하면 "하나님을 배반하는 놈"이라고 저주를 퍼붓는 것으로 봐야 세단계의 점층법이 완성된다.

지옥불이란 말은 우리에겐 막연한 말이지만 이 말은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던 말이다. 이는 원어에서 “게헨나의 불”라는 말인데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힌놈의 골짜기의 불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님 시절엔 쓰레기를 버리고 태우던 곳이었기 때문에 더럽고 항상 연기가 자욱하던 곳이었다. 그곳은 그 이전엔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의 자녀를 산채로 잡아서 태워서 희생제사를 드리던 곳 이기도 했다.

예수님께서 지옥불에 떨어진다고 하실 때 당시 사람들은 이방인들이 자식들을 태워 제사를 드리던 곳이고 더러운 쓰레기와 연기로 자욱한 곳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것은 지방의 공회보다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공회보다 더 심각한 하나님의 법정에서 내린 판결의 결과이다.

마음속에 분노가 :골빈 놈"이라는 분노의 나무로 쏟아져 나온다. 또 그 분노의 나무가 더 커져서 하나님께 반역할 놈이라는 아주 심각한 저주로 자란다. 이렇게 마음 속의 분노는 세단계로 발전해 나간다. 이러한 분노와 짝을 이루는 재판도 발전해 나간다. Allen은 재판도 역시 그 정도가 점점 더 심각해진다고 했다(Allen, 48). 지방공회에서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공회로 또 하나님의 법정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판결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 버린다고 하신 것이다.

이러한 세단계의 재판은 하나님의 법정에서 그렇게 점점 더 심각한 죄로 재판하신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은 세상 사람들 앞에서만 지키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동하기 전에 이미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분노라는 살인의 뿌리를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에 분노의 칼을 갈고 있는 사람은 이미 살인자와 똑같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살인의 뿌리까지 다 아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가지 분노를 점점 더 강한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살인의 뿌리인 분노를 품고 그것이 자라서 겉으로 드러나게 하지 말고 마음 속에서 뽑아 버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분노의 뿌리를 뽑아 버리지 못하고 말로 터트려서 욕하고 저주했을 때 해야 할 일이 바로 23-24절에 나오는 두가지 예화이다. 만약 그 분노를 뽑아버리지 못하고 욕으로 터트려서 밖으로 나오게 했다면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와 화해부터 하라는 것이다. 그 후에야 와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먼저 형제의 분노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화해를 하는 일은 말로 대화해서 풀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화해한다고 하면 서로 대화로 오해를 풀고 화해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대화는 오히려 가라앉은 분노까지 다시 일으키게 한다. 웃으며 화해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꺼져가는 분노에 다시 부채질하여 살려 놓은 것이다. 각자가 자신을 변호하는 말만 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화해하라고 하신 것은 자신이 분노를 터트린 것에 대해 무조건 가서 사과하고 그에게 용서해 달라고 빌라는 뜻이다. 상대가 내게 분노하게 한 죄는 어떻게 하느냐고? 그것은 마음 속에 품지도 말고 이미 용서하고 내려놓았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자신이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를 터트린 것 자체가 살인죄보다 더 큰 죄이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에게 가서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형제 자매와 화해하지도 못하면서 하나님과 화해하는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위선자이기 때문이다.

25절에는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일으키게 한 두번째 예화가 나온다. 두번째 예화는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고 갚지 못한 경우이다. 이 경우는 형제라고 하지 않았기에 이방인일 가능성이 높다. 유대교의 율법에서는 빚진 형제를 감옥에 넣게 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는 빚진 자가 빚을 갚지 못하면 재판관에게 재판을 받게 하고 노예로 팔아서 그 빚의 일부라도 찾을 수 있게 했었다. 한번 노예로 팔려가면 다시 속량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판결이 끝나고 노예로 팔려가기 전에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친척이나 친구들이 빚을 갚아 주어 노예로 팔려가지 않도록 막았다. 이러한 법은 유대인의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 로마 세계의 법이었다.

마태복음 5:21-26절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담긴 하나님의 참된 뜻을 설명해 주신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의 모든 삶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본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맡기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치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뜻에 따라 해석하고 자신들의 뜻에 따라 통치했다. 저들은 하나님 대신 자신들이 왕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 21:33-46절에서 예수께서는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로 하나님 노릇을 하고 있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책망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오셔서 악한 농부들인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빼앗긴 나라를 탈환하고자 유대교 지도자들이 내쫓아 버린 쓰레기 같은 사람들을 제자로 불러 모아 산 위에서 여덟가지 복을 가르치신 것이다. 이는 작전 사령관이신 예수께서 이런 제자들을 불러모아 네이비실이나 UDT같은 특수부대로 훈련시켜 적진에 침투시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침투시켜 악한 세상을 뒤집어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작전은 무력으로 싸워 세상을 멸망시키고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 특수부대로 훈련시킨 제자들을 땅의 소금과 세상의 빛으로 만들어 세상에 침투시키신 것이다. 이러한 소금과 빛인 제자들은 세상에 침투하여 세상을 썩지 않게 하고 맛을 내게 해서 세상이 참 빛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가도록 변화시키시려는 것이다. 적은 양의 이스트가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하듯 적은 수의 특수부대원들이 게릴라 작전으로 세상 전체를 완전히 뒤집어 놓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가 하나님의 특수부대원들이다. 우리의 지휘관은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제 악한 농부들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의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그 첫번째가 바로 살인의 뿌리가 되는 분노를 처리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는 우리의 원수를 용서함으로 분노를 내려놓고 결국에는 그러한 원수를 사랑하라는 뜻이다. 실제로 살인하지 않아도 살인의 뿌리가 되는 분노를 우리 마음 속에 품고 있다면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살인죄를 범한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분노를 내려 놓을 때 우리의 원수들은 놀라서 하나 둘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에 침투해서 게릴라전으로 악한 세상을 뒤집어 놓아가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만약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살인의 뿌리는 그대로 간직한 채 하나님 앞에 나와 거룩한 예배를 드린다면 우리는 반드시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회칠한 무덤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그렇게 자신의 안에 살인의 뿌리를 그대로 두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행위는 하나님 앞에 가증한 예배가 되는 것이다. 그 결말은 작전에 성공한 특수부대원들이 또 다시 하나님 대신 왕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회칠한 무덤 같은 위선자들이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와 바리새파들처럼 교회를 지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수복하기 위해 오신 작전 사령관이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작전 명령은 살인의 뿌리를 제거하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 한다고 하신 것이 작전 사령관이신 예수님의 명령의 핵심이다. 그 작전을 완수하기 위해 마태복음 끝부분에서 땅끝까지 가서 제자 삼으라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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