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7:24절에 보면 요한의 심부름꾼들이 떠난 뒤 예수께서 무리들에게 요한에 대해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온다.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본다는 말은 주목해서 본다는 뜻으로 놀라운 광경이니 신기한 볼거리를 공연을 구경하듯 한다는 뜻이다. 영어의 극장이라는 말의 어원이 바로 이 단어에서 온 것이다. 두가지 질문은 당연히 아니라는 대답을 기대하고 하는 질문이고 마지막 질문은 맞다는 대답을 기대하는 질문이다.
첫째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라고 물으셨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란 물가에 있는 갈대가 아니라 사막에서 비가 내리는 계절에 길게 자라다가 비가 내리지 않으면 바싹 말라 바람에 흔들리는 마른 풀이다. 이러한 마른 풀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가을에서 봄 사이에 비가 오면 풀들이 길게 자라다가 늦은 봄부터 초가을 까지는 비 한방울도 오지 않기에 노랗게 말라버린다. 그런 키가 큰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풍경은 특별한 구경거리는 아니라는 뜻이다.
압도적인 다수의 학자들 여기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라는 말은 요한이 어떤 사람인지 비유한 것으로 본다. 요한은 갈대처럼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한다(Brown, Fausset & Jamieson, CCEPONT, 250; Martin, BKC, 223; Marshall, NIGNT, 294; Morris, TNTC, 162; Noland, WBC, 336; Tites & Larkin, CBC, 122).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세상 풍조에 따라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들로 비유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요한은 그 반대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존재가 아니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유는 분명히 요한이 어떤 사람인지 잘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세가지를 구경거리를 순서대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구약성경의 시가서나 예언서에서 세가지가 나란히 병행이 되면 거의 예외없이 점층범이다. 신약성경에서도 세가지가 병행으로 나오면 거의 예외없이 점층법이다.
만약 대다수의 학자들처럼 요한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사람이라는 비유로만 해석하면 점점 더 볼만한 구경거리로 발전하는 예수님의 그림 세 장을 놓치게 된다. 사람들이 사막에 나간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흔히 볼 수 있는 구경거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두번째 볼거리는 25절에 나온다. 이번에는 사막에 있는 마른 풀보다 더 볼만한 구경거리가 나온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고 다시 물으신다.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라고 물으셨다. 새번역에서 비단 옷이라고 번역한 말은 부드러운 옷이라는 뜻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거친 마로 짠 옷들을 입은 것과는 반대되는 옷들이다. 비단 옷일 수도 있지만 아주 곱게 짠 고급 옷감의 옷들일 수도 있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보라!" 라는 말로 청중들의 관심을 집중시키신다. 화려한 옷을 입고 호사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은 왕궁에 있다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흔히 볼 수 있는 갈대들과는 반대로 아주 고운 실로 짠 부드럽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은 쉽게 볼 수 없었기에 정말 큰 구경거리였다. 그래서 그런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는 사람은 왕궁에 있다고 하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 앞에 있는 청중들은 이번에도 아니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들이 광야에 나간 것은 좋은 옷을 입은 왕족들을 보러 나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번째 구경거리는 26절에 나온다. 예수께서는 또 다시 그러면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라고 물으신다. "예언자를 보려고 나갔느냐? 옳다!" 라고 하셨다. 요한이라는 예언자를 보러 간 것이 맞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메시야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예언자인 요한이 나타나자 광야로 요한을 보러 나갔던 것이다. 최고의 구경거리는 예언자이다.
광야에 흔히 있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가장 별볼일 없는 구경거리이다. 부드럽고 화려한 옷을 입은 귀족들은 광야의 갈대보다는 더 나은 구경거리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역시 대단한 구경거리는 아니다. 모두의 구경거리는 예언자로 소문이 난 요한이었다. 예수님의 세가지 질문은 아무 것도 아닌 구경거리에서 정말 놀라운 구경거리로 점점 발전해가는 세장의 그림이다. 주석을 열 권이 넘게 찾아 보았지만 나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는 Robert Stein뿐이었다. Stein만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중요하지 않은 볼거리를 보러 나갔느냐는 뜻으로 해석한다(Stein, NAC, 229).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란히 배치된 세개의 질문 사이의 연결관계이다. 글이 아닌 말로 소통을 하던 고대인들에게 이처럼 질문을 던져 청중들의 귀를 기울이게 하던 전달방식을 놓치면 안된다.
어릴적 보던 용각산 광고가 생각이 난다. "이 소리가 아닙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이 광고 역시 두개의 No와 한개의 Yes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