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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나 › 4:9-11

Dawn Word

요나 4:9-11

피조물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큰 물고기와 멀리 보이는 니느웨 · 요나 1-3장

2020. 11. 4. · 안정섭 목사 · 요나 4장 강해 설교

요나 4:9-11 요나는 자신에게 시원한 그늘을 주는 식물 하나도 그렇게 불쌍히 여겼는데 하나님은 그 큰 성 니느웨의 분별력 없는 사람들과 아무것도 모르는 가축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겠느냐고 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이기적인 요나를 가르치기 위해 한 박넝쿨로 요나를 고통에서 구원해 주셨다가 다시 말라죽게 했을 때 요나는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 분노하며 차라리 죽여달라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이러한 요나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가르치시는 내용이다.

9절에서 하나님(엘로힘)은 요나에게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을 내는 것이 옳으냐?"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요나는 "예, 제가 화를 내는 것이 옳습니다. 저는 화가나서 죽을 것 같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 이러한 요나의 분노는 모순적이다. 요나 4:3절에서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지 않았을 때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며 화를 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박넝쿨 하나를 보내셔서 자신에게 재앙이 내리지 않도록 해 주셨을 때 요나는 대단한 기쁨으로 기뻐했었다. 저렇게 악한 니느웨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는 것은 그렇게 분노할 일이면서 저렇게 악을 박박쓰며 하나님께 대드는 악한 자신에게 재앙이 내리지 않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는다면 모순된 것이다. 이런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너의 분노가 옳으냐고 질문했을 때도 요나는 끝까지 자신이 죽도록 옳다고 악을 써대는 것이다.

10절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라는 말에 바로 이어 원어에서는 "네가 완전히 불쌍히 여겼다" 라는 말이 나온다. 에스겔에서 9번이나 나오는데 대부분 "눈" 이라는 말과 함께 나온다. 눈으로 보고 불쌍히 여긴다는 뜻이다. 무엇을 그렇게 불쌍히 여기는가 하면 "그 식물" 즉, 박넝쿨이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가꾸느라 노동하지도 않았고 자라게 하지도 않았고 단지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죽은 이 박넝쿨도 완전히 불쌍하게 여겨 아깝다고 했다는 것이다.

11절은 10절과 정확히 대조가 된다. 10절에서 요나는 그 식물을 완전히 불쌍히 여겼다고 했는데 11절에서 하나님은 그 큰 도시를 계속해서 불쌍히 여기고 계신다고 말씀하신다. 요나가 불쌍히 여기는 것인 이미 끝났지만 하나님께서 그 도시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 도시는 좌우도 가릴 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많다는 것이다. 요나는 겨우 그 식물 하나도 아깝다며 불쌍히 여겼는데 하나님은 그 큰 도시인 니느웨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좌우도 가릴 줄 모르는 사람이란 본래 어린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Fausset은 3-4세 이전의 아이들을 가리킨다며 전체 인구는 그 다섯배쯤은 되기에 60만 쯤은 된다는 뜻이라 했다(Fausset, 584). Smith도 역시 어린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일 수 있기에 전체 인구는 60만쯤 된다고 볼 수 있다고 하면서도 "사람" 이라는 말이 어린아이를 가리키지 않는다며 이는 실제 어린아이가 아니라 분별력이 없어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는 앗시리아 사람들을 뜻한다고 말한다(Smith B. K., 283).

고고학적 발굴이나 논리적으로 따진다면 고대의 도시의 인구가 60만이나 되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숫자이다. 그러나 문맥의 흐름을 보면 오줌 똥도 못가리는 어린아이들이 십이만 명이나 되고 아무것도 모르는 짐승들도 수없이 많다라고 했기에 실제 어린아이들을 가리킬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분별력이 없는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정말 많았다는 것이다. 분별력이 있는 요나가 하나님께 그렇게 대들고 따지는데도 화를 내지 않으시고 차근차근 가르쳐 주시는데 하물며 분별력이 없는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다 멸할 수 있느냐는 뜻이다.

요나가 그 식물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자신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기에 아깝다며 불쌍히 여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니느웨 때문에 얻는 유익이 없다.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피조물들이기에 불쌍히 여기며 자비를 베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인간들이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것은 자신이 낳은 자녀들이거나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경우이다. 인간들의 사랑은 이기적이고 조건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이타적이고 무조건적이다.

사실 요나 전체를 읽어보면 하나님의 원수는 니느웨 사람들이 아니라 요나이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을 피해 내려가고 또 내려가고 또 내려갔던 하나님의 원수이다. 하나님께서 차근차근 가르치시는데도 차라리 죽여달라며 악을 박박 쓰던 하나님의 원수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한없는 인내로 참으시며 요나를 가르치고 계신 것이 요나 전체의 내용이다. 요나의 초점은 니느웨 사람들을 구하신 것이 아니다. 요나의 초점은 모든 피조물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한없이 인내하시며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요나의 초점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원수들을 멸해주실 것만 바란 요나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에 있다.

우리가 우리의 원수들을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기에 인간 본래의 욕구에 따라 이기적인 사랑만 하는 사람들이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가 다 분별력이 없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이다. 어린아이가 잘못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했다면 정죄하기 보다는 요나를 참아주시며 차근차근 가르친 하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며 한없이 참아주며 기다려주고 본보기를 보여주며 차근차근 가르쳐야 한다. 아직도 우리의 원수들을 불쌍히 여겨 용서하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우리도 아직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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