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5:18-20 여호와의 날이 자신들에게 축복의 날이라고 착각하는 자들은 그 날이 멸망의 날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전 말씀은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면 광장에서나 거리에서나 포도원에서나 어디에서나 곡을 하는 소리가 들려올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오시는 날은 축복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라고 경고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18절은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들이여"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께서 오시면 자신들을 구해 주시고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Stuart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치 과제물에 F를 받은 학생이자신은 정말로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거나, 해고된 직원이 자신은 일을 정말 최고로 잘했다고 생각하거나, 갑자기 이혼 통보를 받은 배우자가 자신의 결혼생활은 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Stuart, 354). 우스개 소리 같지만 사실이었다. 아모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제로 자신들이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들은 실제로 여호와의 날을 간절히 기다리며 하나님께서 오셔서 자신들을 괴롭히는 이방 나라들을 멸하시고 자신들의 나라를 강력한 나라로 만들어 잘 먹고 잘 살 것이라고 저들은 실제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모스가 "화 있을진저!"라고 자신들에게 저주를 선포하자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아모스는 이어서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라고 묻고는 바로 이어서 "그 날은 어둠이고 빛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둠이란 재앙의 날이고 심판의 날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다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죽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 날이 얼마나 어두운 재앙의 날인지 19절에서는 두가지 비유로 예를 들어 설명한다. 첫째 그 날은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려다가 곰을 만난 것과도 같다고 말한다. 쫓아오는 사자를 피해 정신없이 달아나는데 곰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피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둘째 그날은 집에 들어가서 안전하다고 생각하다고 벽에 손을 짚었다가 뱀에게 물리는 것과도 같다고 말한다.
첫째 비유와 둘째 비유는 연결되는 드라마와도 같다. 사자를 피해 달아나다가 보니 앞에는 곰이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다시 곰도 피하여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는 벽에 손을 짚고 서서 숨을 몰아쉰다. 그런데 독사가 그 손을 물은 것이다. 고대에는 독사에게 물리면 반드시 죽는 것이고 치료법은 없었다. 이러한 비유가 말하는 것은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이고 절대로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절은 이 부분의 결론이다. 아모스는 두개의 짝을 이루는 댓구로 결론을 짓는다. 결론 역시 그림언어로 되어 있다. 먼저 여호와의 날이 빛 없는 어둠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여호와의 날이라는 말에서 낮이라는 말 자체가 밝은 낮을 뜻한다. 그런데 밝은 낮이 캄캄하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이집트 사람들에게 흑암 재앙이 닥친 것과도 같다.
이와 짝을 이루는 빛남없는 캄캄함이 아니냐는 질문은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이나 지하에 갇혀있는 모습이다. 거기에는 한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단순히 어두운 것이 아니라 완전히 땅에 묻힌 것이고 무저갱에 들어간 것이고 완전한 멸망이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 가운데로 오시는 날은 모두가 다 완전한 멸망의 날이고 전혀 희망이 없다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기독교가 유럽에 들어가서 유럽이 잘 살게 되었고 기독교가 미국으로 건너오자 미국이 세계 최고 부강한 나라가 되었고 기독교가 한국으로 건너오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잘 사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이렇게 복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나라들은 모두 오늘 말씀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이 착각하는 것이다.
유럽 사람들은 풍요의 땅 아프리카에 가서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고 짐승처럼 부려서 잘 살게 되었다. 무분별한 약탈로 살기 좋던 땅이 척박한 죽음의 땅으로 바뀌었다. 유럽의 약탈자들은 항상 복음 전하는 자들을 함께 데리고 들어가 그들의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믿도록 강요했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착각한 것이다. 미국으로 건너온 기독교인들도 원주민들은 가나안 사람들로 생각해서 원주민들을 학살했다. 역시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착각한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인들도 자신들의 성공을 위해 온갖 악한 일은 다해 성공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축복하셨다고 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다스리시게 해야 계속 잘살게 된다며 기독교인들을 선동하여 자신들이 정치에 참여하려는 정신 나간 자들이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다. 역시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착각한 것이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떠들면서 내 자식 잘되고 우리 사업 잘되게 해 달라고만 하며 살아왔지 않는가? 그러면서 내게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은 원수 삼고 비방하지 않았던가? 본인 역시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며 내가 하는 일 잘되게 해 달라고 했다. 우리 자녀들이 잘되게 해 달라고만 오랫동안 기도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믿음인 줄 알았다. 예배 잘 드리고 헌금 열심히 하면 그것이 좋은 믿음인 줄 알았다.
구약과 신약의 모든 책들이 강조하는 공통점은 하나님 믿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있지 않고 관계에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내게 해를 끼치는 원수까지도 참아 주면서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은 신령한 은사를 받았다고 믿음이 좋은 사람인 줄 착각한다. 하나님 말씀을 먼저 깨달아 알게 되었다고 그 아는 지식으로 자신은 믿음이 좋은 사람인 줄 착각한다. 그러면서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한다면 오늘 말씀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착각과 완전히 똑 같은 것이다. 우리는 누가 하나님께 돌아온 자이고 누가 착각 속에 빠져 사는 멸망할 자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갈라디아서 5:20-21절에는 육체의 일들의 목록이 나와있다. 그 핵심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면서 이웃을 비방하고 분열시키는 것이다. 반대로 22-23절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나온다. 그 핵심은 오래 참으며 사랑하는 것이다. 착각은 자유이다. 그러나 그러한 착각에 빠져 자신은 믿음이 좋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생각하며 사는 것은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