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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엘 › 1:1-4

Dawn Word

요엘 1:1-4

아무도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

밭에 내리는 이른 비와 늦은 비 · 요엘 2장

2020. 7. 29. · 안정섭 목사 · 요엘 1장 강해 설교

요엘 1:1-4 요엘은 나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하나님의 경고를 들으라고 한다. 자신들만 아니라 자손 대대로 전하고 가르치라고 한다.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만 살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요엘은 포로 전기인 기원전 9세기에 기록되었다는 설과 포로 후기인 기원전 5-6세기로 보는 견해가 있다. 언제 쓰여졌는지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요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메뚜기 재앙을 통해 여호와의 날은 큰 고난을 동반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고난 중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보호하신다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성령을 부어 주신다고 말한다.

VanGemeren은 "요엘의 예언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에게 더 큰 충성을 맹세하고 그의 긍휼과 은혜에서 그의 자유를 보며 그들의 일상을 더욱 종말론적인 초점에 맞추어 살도록 권고하는 정경적 기능을 계속 수행한다" 라고 했다(VanGemeren, 215). 이러한 예언은 요엘의 시대에도 종말론적인 초점에 맞춰 살게 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성령을 선물로 주신 이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역시 종말론적인 초점에 맞춰 살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말론적 회복의 때에 완전히 성취될 것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1:1절은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말한다. 대부분 예언서들은 시작하면서 시대를 밝히지만 요엘은 시대를 알리는 아무런 단서도 주지 않는다. 브두엘이라는 이름은 포로 전기에도 많이 나오기에 어느 시대인지 알 수가 없다. 요엘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2절은 짝을 이루는 댓구로 시작한다. 늙은 자들과 그 땅에 사는 모든 주민이 짝을 이루는 것이다. 늙은 자들은 들으라고 했고 그 땅의 모든 주민들은 귀를 기울이라고 했다. 신명기 32:1절도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라고 했다. 신명기 32:1절은 귀를 기울이라는 말이 먼저 나오고 들으라는 말이 나중에 나온다. 이는 모세가 마지막 증거를 할 때 한 말이다.

모세가 하늘과 땅을 말한 것은 모두 다 들으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요엘이 말하는 것도 늙은 자들과 그 땅에 사는 주민도 모두 다 들으라는 뜻이다. 늙은 자란 나이가 많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또한 백성들의 대표자들을 뜻하는 것이다. 주민들은 그 나머지 일반 백성들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지도자들이나 따르는 자들이나 모두 다 듣고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특별히 지도자들인 늙은 사람들은 숫자가 얼마 안되기에 분명하게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들으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백성들은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기에 귀를 기울여야 선지자가 전하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귀를 기울이라 한 것이다.

이어지는 2절 뒷부분의 내용도 역시 짝을 이룬다. 너희 날이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너희 날이란 요엘의 시대를 말하고 조상들의 날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 모든 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신명기 4:32절에도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고 하면서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느냐고 말한다. 요엘에 나타난 재앙의 날은 평범한 재난의 날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는 날이라는 뜻이다.

3절은 이런 전무후무한 재앙을 자녀들에게 알리고 자녀들은 또 자기 자녀들에게 알리고 또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하라는 것이다. 이는 자손 대대로 기억해야 할 만한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그 중요한 사건은 4절에 나오는 재앙들이다. 팟종이가 남긴 것은 메뚜기가 갉아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은 누리가 썰어먹고 누리가 남긴 것은 황충이 먹었다고 했다. 결국은 아무 것도 남지 않고 완전히 다 먹어 버렸다는 것이다. 들판에 남아 있는 것은 아무도 없게 된 것이다.

Garrett은 다수의 성경 해석자들이 여기에 나오는 곤충들은 애벌레에서부터 시작하여 잘 날지 못하는 어린 메뚜기로 자라고 나중엔 자라서 날아다니는 메뚜기를 뜻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가설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네 가지로 말한 것은 여호와의 진노에서 아무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Garrett, 315-16). Allen도 메뚜기의 성장 단계를 나타낸다기 보다는 메뚜기 종류에 대한 다양한 언어들이 모아진 것이라고 말한다(Allen , 783).

각 곤충이 여러가지 곤충인지 아니면 메뚜기가 자라나는 모습을 여러가지 이름으로 부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초점은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가지 심판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살았다며 좋아하겠지만 또 심판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결국은 완전히 다 망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히 다 망할 때까지 심판하시는 분이시니 아무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Stuart는 이러한 메뚜기 재앙이 실제 일어난 일일 가능성과 단지 비유일 뿐이라는 가능성을 모두 말하면서 비유라는 쪽으로 결론을 맺는다(Stuart, 454).

그러나 고대 근동에서 메뚜기 재앙은 자주 있었던 일이었기에 실제 일어난 일일 가능성도 있다. 분명한 것은 요엘의 예언을 듣던 사람들은 그 재앙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두가 다 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다 굶어 죽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비유냐 실제냐가 아니다. 오늘 말씀에서 네 단계로 먹어 치우는 장면은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자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작은 재앙으로 경고하실 때 들어야 한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다 들어야 한다. 먼저 우리 자신이 들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경험한 재앙을 자손 대대로 전해서 가르쳐야 한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도록 하나님 말씀과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

농사를 짓지 않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더 이상 메뚜기 재앙으로 경고하시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일에서 여러가지 형태로 경고하실 것이다. 그 경고는 작은 일에서 시작하여 점점 커질 것이다. 그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작은 일로 경고하실 때 깨닫고 돌아서야 한다. 계속 자기 고집대로 자신이 옳다고 가다가는 완전한 멸망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아남을 자는 아무도 없다. 지금 우리 세대나 다가올 우리 자손들의 세대나 모두 똑같이 다 완전히 멸망한다. 오직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 만이 살아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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