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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호세아 › 14:9

Dawn Word

호세아 14:9

말씀에 순종하는 지혜있는 자가 되라

2020. 7. 28. · 안정섭 목사 · 호세아 14장 강해 설교

호세아 14:9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을 분별하고 분별하는 사람은 말씀을 알아서 순종하지만 악한 자들은 그 말씀에 걸로 넘어진다.

이전 말씀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시되 풍성한 결실을 맺고 아름다운 향기를 내도록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 했다. 이제 있는 자는 깨닫고 여호와의 길을 가겠지만 죄인은 걸려 넘어진다는 내용으로 호세아를 끝맺는다.

9절은 호세아가 예언을 끝맺으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개역과 NIV는 9절 앞부분을 질문과 대답으로 번역했지만 ESV와 NASB와 새번역은 9절 앞부분을 평서문으로 번역했다. Stuart는 두개의 질문과 두개의 도전으로 해석했다(Stuart, 219). 반면에 Dearman은 두개의 조건과 두개의 도전으로 해석했다(Dearman, 344-45). 원어를 보고는 의문문인지 평서문인지 알 수가 없다.

먼저 9절 앞부분은 두개의 병행구절이 나란히 있으면서도 사실상은 깨닫고 알아가는 것을 세단계로 말하고 있다. 먼저 "누구든지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면 그로 하여금 이러한 일들을 깨닫게 하라" 라고 말한다. 이와 짝을 이루는 말은 "깨달은 사람이 있다면 그러 하여금 알게 하라" 히브리어나 70인역 구약성서 모두 이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깨닫게 하고 깨달은 사람은 알게 하라" 라고 되어 있다. 두 구절이 병행되면서도 실제로는 세단계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글 성경들은 병행은 잘 번역했지만 같은 단어를 다르게 번역해서 알아가는 세 단계를 지워버렸다.

먼저 지혜로운 사람이란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금이나 은의 세공사 같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술로 만들 줄 안다는 뜻이다. 항해사가 어떻게 항해하는지 안다는 뜻이다. 창세기 41:33절에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라고 했다.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는지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지혜로운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는지 아는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면 깨달으라고 했다. 깨닫는다는 말은 오감을 통해 분별한다는 뜻이다.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을 보거나 손으로 만져보고 분별한다는 뜻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오감을 통해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분별하면서 따라갈 줄 안다는 뜻이다. 누가 속이려 해도 누구의 말이 옳고 누구의 말이 그른지 분별하면서 바른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어떤 일을 볼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 분별하면서 바른 길을 따라갈 줄 아는 사람이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깨닫는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이것을 알라는 것이다. 안다는 말은 자신의 지혜로 분별하여 깨달은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말로 선포하거나 이야기로 들려준다는 뜻이다. 시편 11편에서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산의 새들을 보면 이 새는 무슨 새 저 새는 무슨 새 이렇게 손으로 가리키며 사람들에게 말로 들려줄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길에 있어서 안다는 말은 이 길로 가야 생명의 길이고 저 길로 가면 멸망의 길이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칠 줄 안다는 뜻이다.

이 세 단계의 안다는 말을 비유로 말하자면 이렇다. 명품 백이 두개가 있는데 하나는 진품이고 하나는 가짜라고 하자. 어느 것이 진품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아는 지식이 있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그 다음 단계로 지혜로운 사람이 두개의 백을 만져보고 눈으로 자세히 보고 어느 것이 진품인지 알아낸다면 그것은 깨닫는다 분별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어느 것이 진품인지 손으로 가리키며 그것이 왜 진품인지 말로 사람들에게 들려준다면 아는 것이다. 새번역은 안다는 말을 마음에 새긴다고 번역했다.

9절 뒷부분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길은 똑바르다는 것이다. 길은 똑바른데 그 길을 따라 가는 사람들의 반응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먼저 의인이란 길에 대한 지혜가 있고 길을 분별할 줄 알고 걸어가면서 어느 길이 똑바른 길인지 사람들에게 손으로 가리키며 말로 설명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 걷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죄인이란 반역하는 사람이다. 그 길에 대해 반역하고 거역하기에 그 길을 따라 걷기를 거부하다가 그 길에 걸려서 넘어지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의인과 악인의 차이는 아는 것의 차이가 아니라 순종의 차이이다. 의인이란 알고 순종하며 따라가는 사람이고 악인은 알면서도 거절하고 거역하며 다른 길로 가려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14:6절에서 자신이 길이라고 하셨다. 또 마태복음 7:13절에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반석이시고 길이신 것이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이 길이라며 예수님을 거부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9:32절에서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을 따라가야 하고 그 반석을 의지해야 하는데도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기들 고집대로 율법을 따라 가다가 그리스도라는 반석에 걸려서 넘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말씀을 통해 지혜를 얻어야 한다. 말씀이 없으면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예수님을 따라 천국에 가는 길인지 알지 못한다. 그 다음에는 그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우리 삶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서 판단해 보고 옳은 길을 선택하고 따라갈 줄 아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경험이 쌓이면 그 지혜와 경험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면서 바른 길로 인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삶은 하나님 말씀을 아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에서 온다. 알면서도 자신의 탐욕을 따라 가면 하나님께 반역자이고 멸망할 죄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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