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2:14-23 다니엘은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진실한 태도로 지혜롭고 맛깔 나게 말을 해서 기도할 시간을 얻었고 친구들과 함께 기도하여 환상으로 깨닫고는 하나님을 찬양했다.
이전 말씀에서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꿈을 알아내고 해석까지 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하지 못하자 모두 다 죽이라고 했다. 이는 바벨론의 지혜자들이 섬기던 모든 신들이 다 가짜라는 것을 느부갓네살 스스로 밝히는 것이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셔서 하나님만이 진짜임을 나타내신다.
14절은 원어에서 "다니엘이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 아리옥에게 대답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서 "이 사람은 왕의 시위대장이고 바벨론의 지혜자들을 죽이려고 나온 사람이다" 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따라서 14절의 중심은 명철하고 슬기로운 대답이다. 이러한 원어의 순서대로 읽어야 원문에 담긴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슬기롭다는 말은 본래 맛이 있다는 뜻이다. 다니엘은 아리옥에게 지혜롭고 맛깔 나게 대답했다는 것이 원어의 본래 의미이다.
아리옥이 누구인지는 그 다음에 이어진다. 아리옥은 왕의 시위대 장관이다. Matthews에 따르면 이 사람은 느부갓네살의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 성을 파괴하고 허물었던 사람이다. 포로들을 처형시키거나 바벨론으로 끌고 가게 한 것도 시위대장관이 한 것이라고 했다(Matthews, Dan.
2:14). 그렇다면 아리옥은 다니엘의 가족들을 처형시켰을지도 모른다. 다니엘을 바벨론까지 끌고 온 사람이다. 다니엘에게는 철천지 원수 같은 사람이다. 그 사람은 지금 바벨론의 지혜자들을 죽이려고 나온 것이라고 이어서 말한다. 다니엘은 수많은 예루살렘 사람들을 처형시켰고 지금은 다니엘을 비롯한 모든 바벨론의 지혜자들을 죽이려고 나온 사람에게 지혜롭고 맛깔 나게 대답했다는 것이다.
15절은 다니엘이 왕의 시위대 장관 아리옥에게 묻는 내용이다. 그 질문은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냐?" 라는 것이다. 다니엘서 2:4-7:28절은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 아람어로 급하다는 말은 "show insolence" 라는 뜻이다(BDB, 1093). 그렇다면 NIV와 NLT는 새번역처럼 "harsh"
라고 번역한 것은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ESV와 NASB는 개역처럼 "urgent"
라고 번역했다. 문맥상으로 보면 급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듯 하기에 두가지 번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왕의 최측근의 군 지휘관이 그렇게 급히 서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시켜야 하기에 엄하게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리옥의 설명을 들은 다니엘은 16절에서 왕에게 가서 꿈을 해몽할 시간을 달라고 청한다. Miller는 다니엘의 요청이 분명히 받아들여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다니엘이 자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까운 시간 안에 그 꿈을 드러내 주시고 해석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왕을 확신시켰을 것이라고 말한다(Miller, 85). Fausset은 왕이 갈대아의 술사들에게는 시간을 주지 않은 것은 그들이 왕을 속이고 시간을 지연시키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 다니엘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Fausset, 388). 그렇다면 다니엘은 아리옥에게만 지혜롭고 맛깔 나게 대답한 것이 아니라 왕 앞에서도 지혜롭고 맛깔 나게 대답하면서도 진실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17-18절은 왕의 허락을 받고 돌아온 다니엘이 다른 친구들에게 함께 기도하자고 요청을 하는 내용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위기에서 네 소년이 함께 기도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이다. 다니엘은 자신들 뿐만 아니라 나머지 바벨론의 지혜자들도 죽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고 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 주시길 간구하자고 했다.
19절은 그 기도가 응답이 되는 내용이다. 그 비밀은 밤에 환상을 통해 다니엘에게 알려졌다. 그래서 다니엘은 하늘의 하나님께 찬송하였다. 20-23절은 다니엘이 기도중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다니엘이 말한 내용은 먼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찬양 받으실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21절은 그 이유를 밝힌 것이다. 때와 계절을 바뀌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왕을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한다는 것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느부갓네살과 같이 강력한 왕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이다. 또 지혜자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사람들에게 지식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모든 지혜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22절은 먼저 깊고 은밀한 것을 나타내신다고 했다. 깊은 곳은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있는 곳이다. 은밀한 것이란 감추어진 것이다. 어떤 인간도 접근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은 드러내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어둠 속에 감추어진 것도 다 아신다고 했다. 인간들이 볼 수 없는 어두운 곳에 있는 것도 하나님은 다 보고 아신다는 것이다. 빛이 하나님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나타낸 것이다. Archer는 오직 여호와 안에서 만이 하나님의 말씀이 궁극적인 진리로 발견되어 질 수 있다고 했다(Archer, 43). 그렇다면 이는 성경 말씀도 여호와께서 나타내 주시고 알려 주셔야만 그 의미가 궁극적인 진리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23절은 감사를 드리는 내용이다. 조상들의 하나님이라 부르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고 했다.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지혜와 힘을 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께 간구한 것도 알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다니엘의 감사는 과거 조상들과 함께 하신 것에서 시작하여 자신에게 전에 지혜와 힘을 주신 것과 현재 드린 긴급한 기도에 응답한 것까지 이다. 우리의 감사도 역시 과거에서 시작하여 현재 응답해 주신 것에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첫째로 주목할 것은 다니엘의 지혜롭고 맛깔 나면서도 진실한 말이다. 그러한 다니엘의 말로 인해서 시위대장도 마음의 안정을 얻고 왕도 그 분노가 가라앉게 되고 그 요청에 따라 시간을 준 것이다. 우리에게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혜롭고 맛깔 나면서도 진실한 말이다. 이러한 말을 하지 않고 우리의 감정에 따라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것이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하도록 막는 행위이다.
두번째로 주목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이다. 다니엘은 응답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도 왕에게 나아가 시간을 주시면 그 해석을 알려드린다고 했다. 바벨론의 지혜자들은 시간을 끌기 위해 거짓말을 했지만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알려주실 것을 확신했기에 그렇게 왕에게 말한 것이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어야 한다. 죽음의 위급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에게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 가운데 평안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주관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며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지 않으시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단지 좋은 말을 담고 있는 오래된 지혜의 책일 뿐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분을 확신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지혜롭게 말하고 지혜롭게 살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도 다니엘처럼 진실한 태도로 지혜롭고 맛깔 나게 말할 수 있도록 하자.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가서 엄한 책망을 듣게 될 것이다. 거친 말과 분노로 찡그린 표정 하나로 인해 연자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차라리 낳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사람들 앞에서 진실한 태도로 지혜롭고 맛깔 나게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