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1:17-21 세상 안에서 정결함을 지킨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지식을 주시고 특별히 다니엘에게는 이상과 꿈도 깨닫는 능력도 주시고 장수의 축복도 주셨다.
이전 말씀은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셔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왕의 진미를 먹지 않고 믿음의 정결함을 지킬 수 있게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네 젊은 이들이 이렇게 믿음의 정결함을 지킨 가운데서 지식을 얻게 하시는 내용이 이어진다.
17-21절은 3년 동안의 왕립 학교의 모든 과정을 마친 뒤의 결과를 말한 것이다. 17절은 이 소년들이 하나님께서 이 네 소년들에게 지식을 주시고 모든 문학과 지혜에 관해 깨닫는 능력도 주셨다고 했다. 외형적으로는 바빌론의 지혜있는 사람들에게 배운 것이다. 하지만 본문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빌론 사람들이 가르쳐 준 이상의 놀라운 능력을 주신 것이다.
그 중에서도 다니엘에게는 환상과 꿈을 분별하는 능력도 주신 것이다. 이것도 바빌론 사람들이 가르쳐 줄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람들에게 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실까? 그렇지 않다. 이제는 하나님의 뜻이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 완성되어 전해졌기에 더 이상 환상이나 꿈을 통해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Miller도 역시 구약과 신약의 기록들이 완성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꿈을 통한 계시는 불필요하다고 했다(Miller, 71).
18절은 3년의 기한이 차고 왕립 학교를 졸업을 한 뒤 왕 앞에 서는 장면이다. 왕 앞에 서서 졸업 인터뷰를 하는 셈이다. 네 소년만 왕 앞에 선 것이 아니다. 모든 졸업생들이 다 왕 앞에 서서 시험을 받았다. 19절은 왕이 그들을 시험해 보니 모든 졸업생들 중에 네 소년과 같은 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19절에서 왕 앞에 섰다는 말은 왕의 중요한 관리로 임명이 되었다는 뜻이다. 왕의 보좌 가까이에 서서 왕이 모든 결정을 할 때 이들에게 묻게 될 것이다. 이들은 최우수 졸업생들이기에 가장 존귀한 자리에 특별채용이 된 것이다. 이것 역시도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하시고 이루신 일이다. 하나님께서 이 네 소년에게 지식과 지혜를 주셨다고 했기 때문이다.
20절은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열배나 나은 줄 알았다고 했다. 이는 이 네 소년들이 이방 나라에 끌려와서 이방 나라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정결함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것이다. Wood는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신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가!" 라고 말했다(Wood, 29). 이 네 소년들이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했기에 하나님께서 이들이왕에게도 최고로 인정받게 하셔서 가장 존귀한 자리에 서게 하신 것이다.
21절에서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었다고 했다. 고레스는 페르샤의 왕이다. 바빌론 제국은 멸망하고 페르샤가 바빌론을 지배하게 된 때이다. Fausset은 이러한 표현은 다니엘이 첫번째로 끌려간 포로들 중에 포로생활이 끝나는 것을 볼 때까지 살았던 사람 중의 하나라는 것을 가리킨다고 했다(Fausset, 385). Miller는 다니엘이 85-90세까지 살았을 것이라며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장수의 축복을 주셨다고 했다(Miller, 73). Wood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니엘이 고레스 왕 원년에 이 부분을 기록했을지도 모른다고 까지 말했다(Wood, 29). 그러나 이는 다니엘이 그 때 죽었다는 뜻은 아니다. 10:1절에서 고레스왕 3년에 다니엘이 본 환상이 나오기에 다니엘은 고레스왕 원년까지도 살아 있었다는 뜻이고 장수의 축복을 받았다는 뜻이다.
다니엘이 우상이 가득한 이방 세계의 중심인 왕궁에 살면서도 스스로 정결함을 지킨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모든 일을 알고 깨닫는 축복을 주셨다는 것이다. 게다가 장수의 축복까지도 주셔서 오랫동안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오늘날 믿는 자들은 정치에 참여하면 안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오늘날 만의 논쟁이 아니다. 예수님 신구약 중간기에 에세네파는 더러운 하스모니안 왕조에 참여할 수 없다며 쿰란 동굴에 들어가 따로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다가 죽었다. 반면 바리새파 사람들은 하스모니안 왕조와 함께 하면서 세상 안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려고 했다. 교회 역사를 보아도 수도원 생활을 하며 에세네파와 같이 세상과 분리된 거룩한 삶을 추구하던 사람들도 있었고 바리새파 처럼 세상 안에서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니엘서의 내용들은 분명히 더럽고 악한 세상 안에서 거룩히 구별된 삶을 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5:13-14절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라고 하신 것도 썩어져가고 맛없는 세상을 썩지 않게 하고 맛을 내는 삶을 살아야 하고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5:10절에서 세상의 더러운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고 말하며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라고 말했다. 따라서 성경은 분명히 에세네파와 같은 세상과 분리된 거룩함이 아닌더러운 세상 안에서 구별된 삶을 살라고 말한다
우리는 더럽고 썪어져 가는 세상 안에서 다니엘처럼 구별된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런 세상 안에서 살면서 그런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다가고 만약 세상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법을 어기도록 요청한다면 우리도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큰 손해를 가져올지라도 분명히 거부해야 한다. 다니엘과 세친구는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을 한 것이다. 세상 안에서 세상과는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나는 삶을 살라는 것이 다니엘 1장에서 강조해서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