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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에스겔 › 32:11-16

Dawn Word

에스겔 32:11-16

의지하던 것을 완전히 치우신 하나님

2020. 1. 30. · 안정섭 목사 · 에스겔 32장 강해 설교

에스겔 32:11-16 하나님께서 애굽의 무리들을 칼로 멸하시고 땅을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이 쌓아 둔 모든 것이 다 사라지게 하셔서 그 주민들까지 다 쓸어 버리셔서 남은 자들이 더 이상 애굽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다괴물을 잡아 올려 먹이로 주시고 썩게 하시고 그 피가 온 땅에 채워지게 하시고 그 멸망의 소식을 온 세상 모든 백성들에게 듣고 보게 하시어 두려워하게 하신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애굽의 무리들이 다 쓰러지고 짐승들도 다 멸하고 물까지 못쓰게 되어 황폐한 땅으로 만드신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10절에서는 춤추던 여호와의 칼이 바다괴물을 산산조각을 내서 흩었던 장면이었다. 11절에서는 다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며 바벨론 왕의 칼이 온다고 했다. 바벨론 왕의 칼이 바로 여호와의 칼인 셈이다. 이제 바다괴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에 아무도 막을 자가 없다. 이제 남은 것들을 다 치우는 장면이 이어진다.

12절은 먼저 네 무리가 용사 곧 모든 나라의 무서운 자들의 칼에 엎드러지게 할 것이라 했다. 용사라는 말은 유럽을 떨게 하던 바이킹족이나 반달족 같이 무자비하고 무시무시한 자들이다. 그들이 바다괴물의 졸개들인 남은 무리들을 다 쓸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들은 애굽의 교만을 멸망시키고 그 모든 무리들을 다 멸한다는 것이다. 이제 애굽의 자랑거리인 바로의 군대가 다 죽는 장면이다.

13절은 애굽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모든 가축들이 나일강 가에서 도살되는 장면이다. 애굽은 막강한 대군과 엄청난 가축 떼를 자랑하며 교만했는데 이제 다 사라진 셈이다. 이제 사람도 없고 가축도 없기에 어떤 발도 강물에 발을 넣어 흙탕물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제 애굽의 남은 자랑거리 마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14절은 하나님께서 애굽의 나일강 물을 맑게 하신다는 것이다. 원어는 그들의 물이 가라앉는다는 뜻이다. 나일강은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기에 날마다 사람들이 씻고 물 마시던 곳이다. 수많은 가축들도 그 강물에 발을 담그고 물을 마셨다. 그러나 이제 아무도 살지 않기에 사람도 가축도 그곳에 발을 넣지 않게 되어 모든 진흙들은 바닥에 가라앉아 굳어져버린 모습이다. 그래서 강물이 맑아졌다고 번역한 것이다.

게다가 강들이 기름같이 흐르게 하신다고 했다. 우가릿 바알 문서에서나 구약성경에서 이러한 표현은 번영의 상징이다(Matthews, Ezek 32:14). 욥기 29:6절은 버터가 내 발자취를 씻기며 반석이 나를 위하여 기름 시내를 흘려 내었다고 했다. 과거 하나님께서 욥을 축복해 주셨을 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처럼 유대인들에게 기름이 흐르는 강이란 낙원과 같은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는 것이다(Block, 209).

그러나 나일강물이 흙탕물이 되는 것은 사람이나 가축이 아니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사납게 흐르고 범람하여 온 땅을 뒤덮으면 상류에서 내려온 거름들이 쌓여서 그 땅이 기름진 땅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강물은 아주 맑게 흐른다고 했기에 강물은 더 이상 범람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Fausset은 더 이상 급류로 범람하여 다른 나라들에 넘쳐 흐르지 않게 되었다며 애굽의 정치적 활동이 잠잠해졌고 모두가 바닥에 가라앉아 버렸다고 상징적으로 해석했다(Fausset, 324). Block도 탈굼을 인용하면서 애굽이 황폐화되고 아무도 살지 않는 것은 다른 나라들에게 평화와 희망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Block, 209-10).

15절은 애굽 땅이 황폐하여 사막이 되게 한다고 했다. 강물이 더 이상 범람하지 않아서 맑고 고요하게 기름처럼 흐르게 되면 애굽 땅은 황폐화되어 사막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거기에 가득 채워진 것들이 없게 된다. 14절의 맑고 고요하게 흐르는 강물의 그림과 15절을 연결해서 읽는다면 이제 홍수가 나지 않아 땅이 황폐하게 되고 모두가 다 죽게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번에 그 주민들을 친다는 것은 모두가 굶어 죽게 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애굽 땅을 치신 것은 15절에서 세단계로 이루어졌다. 먼저 땅을 황폐화시키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채워진 것들을 다 없애신 후 그 주민들까지 다 쓸어 버리신 것이다.(Block, 210). 그렇게 되면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를 알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Fausset이나 Block처럼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애굽의 정치적 활동이 가라앉아 주변 나라들에게 평화가 온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2절에서는 애굽 왕 바로를 위해 장송곡을 지어 부르라고 했다. 그런데 16절에서는 애굽과 그 모든 무리들을 위하여 이것을 슬피 부르리로다 라고 했다. 이제 바로 왕만이 아니라 애굽 전체가 다 죽었기에 애굽과 모든 무리들을 위해 장송곡을 부르라고 한 것이다. 모든 무리란 사람일 수도 있지만 많이 모여진 것을 뜻하기에 애굽의 막대한 부를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고대 이집트나 이스라엘에서 장례식에서 애가는 주로 여자들이 불렀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나라 여자들이 이것을 슬피 부른다고 한 것이다.

유다 사람들이 의지하던 마지막 희망은 완전히 사라진다는 예언이다. 이 말씀을 읽으며 애굽의 멸망만 바라 본다면 본문을 잘못 읽는 것이다. 이 예언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에게 선포되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이제 유대인들이 의지하던 마지막 희망인 애굽은 완전히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절망이다. 금방 회복되어 돌아갈 줄 알았는데 이들은 죽을 때까지 고국에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만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가? 그러면서 그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다면 복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눈물을 닦아 주시고 위로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만약 세상 어떤 사람들이나 어떤 힘이나 재물을 바라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애굽 치우듯 치워 버리실 것이다. 모든 소망을 사라지게 하셔서 라도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실 것이다.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5장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뜻이다. 내 자녀들도 나를 보고 하나님 밖에 없다며 하나님만 의지하게 해야 한다. 교회 성도들도 나를 보고 하나님 밖에 없다며 하나님만 의지하게 해야 한다. 내 직장과 이웃의 모든 사람들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나를 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애굽을 완전히 치워 버리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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