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6:1-6 예루살렘의 멸망이 자신들에게 큰 유익을 가져왔다며 기뻐하는 두로를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멸하신다.
이전 말씀은 유다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블레셋은 앙심을 품고 지나치게 보복을 했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무섭게 벌하며 크게 보복하신다고 하셨다. 이제 이스라엘 북쪽 해안에 위치한 두로가 받을 심판이 이어진다.
1절은 때를 나타내는 말과 함께 여호와의 말씀에 에스겔에게 임하여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2절은 "사람의 아들아!" 라는 말로 새로운 말씀을 주신다는 것을 알린다. 그것은 두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관해 말하길 "아하! 만민의 문이 깨져서 내게 돌아왔도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바닷가에 있던 두로는 무역을 통해 살아가던 나라이다. 요단강 동편에 있는 나라들로 가려면 예루살렘을 거쳐야 하기에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들의 문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망했기에 이젠 마음대로 요단강 동편에 있는 나라들에 가서 장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Block, 36).
그래서 예루살렘이 황폐하게 되었으니 두로는 충만함을 얻는다고 한 것이다. 이는 서로 반대가 되는 비유이다. 원어는 말라버렸다는 말과 사방에 잔뜩 쌓여 있는 모습이 서로 비교되는 뜻이다. 예루살렘은 사막에서 바싹 말라버린 풀과 같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시편 1편에서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장면과 같은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반대로 자신들은 그렇게 황무지가 된 예루살렘을 통과해서 많은 나라들과 장사를 해서 벌어들인 것이 자신들은 둘레에 잔뜩 쌓여 있다는 뜻이다.
3절은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길 "보라! 두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겠다" 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두로를 직접 대적하시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두로를 대적하시는가? 많은 나라들이 두로를 치게 하시는데 마치 바다가 파도를 가져오듯 하신다는 것이다. 바다는 파도를 끊임없이 육지로 가져온다. 파도가 바닷가의 바위들을 끊임없이 쳐서 부수듯 많은 나라들이 끊임없이 두로를 공격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4절은 파도가 바닷가의 바위를 부수듯 많은 나라들이 두로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그 망대를 헐면 하나님께서 그 부스러기 잔해들을 다 쓸어버려서 맨 바위만 남게 하신다는 것이다. 부서진 흔적 조차도 없게 만든다는 것은 다시 재건하지도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 잔해까지 완전히 파도로 쓸어 버리셔서 맨 바위만 남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5절은 바다
한 가운데 그물 치는 곳이 되게 하신다 한 것이다. 웅장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지중해의 상업의 중심지가 흔적도 남지 않고 바다
한 가운데 맨 바위만 덩그러니 남기에 어부들이 그곳에다가 그물을 펴서 널어놓고 말리는 장소로 삼는다는 뜻이다. 또 아무런 방어벽도 없기에 나라들의 노략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5절은 섬에 있는 요새가 그물 말리는 곳으로 완전히 파괴된다고 한 것인데 두로 사람들이 사는 육지의 마을의 방어벽이 사라진 것이다. 6절의 들에 있는 그의 딸들이란 육지에 있는 마을에 사는 두로의 딸들이다. 그들은 그들을 지켜 줄 요새와 사람들이 사라졌기에 적들이 와서 마음대로 짓밟고 모두 칼로 죽인다는 것이다. 그 때 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안다는 것이다.
두로의 죄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자신들의 사업 확장의 기회로 보고 기뻐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완전히 버리신 줄 알고 박수 치며 좋아하고 자신들이 돈 벌게 되었다고 했던 것이다. 오늘날도 남의 불행이 자신들에게 큰 유익이 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원수가 불행을 당한 경우에도 박수 치며 기뻐하면 안된다. 원수라도 불쌍히 여기고 위로해 줘야 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처럼 남의 불행을 기뻐하며 남들의 불행을 이용해서 유익을 얻으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심판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