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3:22-35 하나님께서는 바빌로니아를 통해 예루살렘의 코와 귀를 베게 하시고 모든 것을 다 빼앗고 옷까지 벗겨 전시하게 하셨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그 깊고 큰 진노의 잔을 다 마시고는 그 잔까지 다 씹어 먹고 자신의 유방까지 잡아 찢으며 하나님께 분노를 표시했다. 이러한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잊고 버렸기 때문 그 죄를 담당하게 하신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는 오홀리바로 비유된 예루살렘은 오홀라로 비유된 사마리아 보다 한 술 더 떠서 앗시리아 뿐만 아니라 바빌로니아까지 끌어들이고도 만족하지 못하여 청소년기 하나님을 만나기 전 이집트를 그리워하는 모습이었다. 이제 오늘 말씀은 바빌로니아를 재판관으로 임명하셔서 이처럼 음란한 예루살렘을 심판하게 하시는 내용이다.
22절은 예루살렘을 오홀리바 라고 부르며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제 심판의 말씀이 전해지는 것이다. 17-21절에서 오홀리바는 바빌로니아가 자신의 음욕을 채워주지 못했기에 미워하고 나귀 같고 말 같은 이집트를 그리워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처음엔 사랑하다가 미워한 바빌로니아를 충동하여 그들이 사방에서 쳐들어 오게 하신다는 것이다.
23절은 사방에서 쳐들어 오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나열한 것이다. 바빌로니아 사람과 갈대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브곳은 예레미야 50:21에도 나오는데 티그리스 강 하류에 사는 아람 족속의 중요한 지파이다(Block, 749). 소아는 티그리스 강 중류로 합쳐지는 샛강인 디얄라 강 가에 사는 유목민들이다. 고아는 티그리스 강 동쪽 지역이다. 따라서 이 모든 지명들은 바빌로니아의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나열한 것이다. 거기에 앗시리아 사람들까지 함께 한다는 것이다. 앗시리아도 바빌로니아에 복속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지방의 사람들은 바빌로니아 제국의 동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다(Cooper, 230).
17절에서 오홀리바는 바빌로니아와 관계를 갖고는 그 만족하지 못한 성욕으로 인해 바빌로니아를 미워했다고 했다. 자신의 성적인 능력을 다른 남자와 비교하며 멸시를 당하면 분노하지 않을 남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게 오홀리바에게 멸시를 받은 잘 생긴 청년들은 군대를 이끌고 와서 공격하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모두가 한눈에 반할 매력적인 젊은이들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총독과 군 지휘관들이고 귀족들이고 모두가 다 말 타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잘 생긴 데다가 모두가 최고의 지위에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아니라 만족할 줄 모르는 오홀리바의 음욕이라는 것이다.
24절은 분노한 이들이 무기와 병거와 수레와 크고 작은 방패를 이끌고 투구 쓴 군대를 거느리고 치러 와서 오홀리바를 에워싼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오홀리바를 재판하는 권한을 이들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여호와의 판례에 따라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판례에 따라 재판한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판례는 한결 같은 사랑으로 인내하시며 용서하시는 것이지만 그들의 판례는 받은 그대로 갚아주는 무자비한 판결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받은 멸시를 그대로 갚아주는 것이다.
25절은 여호와의 분노가 곧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분노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오홀리바를 향해 질투하시면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분노를 오홀리바에게 행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코와 귀를 잘라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전쟁 포로들에게 행하던 방식이다. 무시당한 신분이 높은 미소년들은 오홀리바의 코와 귀를 잘라버려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남은 자들은 칼로 찔러 죽이고 자녀들은 잡아간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불로 다 태워버린다는 것이다. 아내의 서방질로 망신을 당한 남편은 성적인 능력에 대해 모욕을 당한 아내의 정부를 부추겨서 이처럼 잔인하게 복수하게 하는 것이다.
26절은 코와 귀를 자르고 자녀들까지 빼앗아간 뒤에도 분이 안 풀린 정부는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 보는 데서 옷을 찢어 벗겨 버리고 몸에 걸치고 있던 목걸이 귀걸이 등 화려한 장신구들을 다 잡아 뜯어 가져가 버리는 장면이다. 27절은 코와 귀를 자라고 벌거벗겨 전시하고 모든 장신구들을 빼앗아간 목적이 나온다. 이제는 애굽에서 청소년기부터 행하던 그러한 음탕한 창녀 짓을 다시는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코와 귀가 잘린 흉측스러운 오홀리바 이기에 다시는 사람들을 향하여 눈을 들지도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다시는 하체가 나귀 같고 그 정액이 말 같은 이집트를 기억하지도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28-30절은 앞에서 말한 것을 다른 말로 바꾸어 선포한 것이다. 28절은 새로운 여호와의 말씀이 이어진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것은 오홀리바가 미워하는 자와 싫어하는 자의 손에 오홀리바를 붙인다는 것이다. 29절은 그들이 오홀리바가 노동해서 얻은 모든 열매들을 다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벌거벗은 몸으로 둔다는 것은 입은 옷까지 다 빼앗아 간다는 뜻이다. 당시 전쟁에서 여자들은 모두 벌거벗겨 끌고 가는 것이 흔한 관례였다. 음행의 벗은 몸 즉 음란하며 행음하던 것을 드러낸다는 것은 창녀 짓 하던 그 음란한 부분을 만인 앞에 드러낸다는 뜻이다. 30절은 오홀리바가 이렇게 당하는 것은 오홀리바가 온 세상 모든 나라들과 창녀 짓을 하며 놀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우상들로 그 자신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31-34절은 오홀리바를 그 언니 오홀라와 비교하며 그 재판의 선고문을 낭독하는 것이다. 31절은 네 언니 오홀라의 길을 그대로 따라 걸었기에 오홀라가 받았던 잔을 오홀리바에게 준다는 것이다. 잔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다. 32절은 나 주 여호와가 말씀하신다는 말로 이어간다. 오홀리바를 그렇게 만든 것은 바빌로니아지만 재판관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그들은 재판관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형을 집행한 것 뿐이라는 뜻이다. 깊고 크고 가득히 담긴 네 형의 잔을 네가 마시고 코웃음과 조롱을 당한다고 했다. 그 진노의 잔은 깊고 크기에 마셔도 마셔도 끝이 없는 것이다.
33절은 그렇게 깊고 큰 잔을 마셔서 취함과 근심으로 가득 채워진다는 것이다. 그 잔은 네 언니 사마리아가 마시던 놀람과 패망의 잔이다. 34절은 오홀리바로 비유된 예루살렘이 이러한 진노의 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시고 나서 분노하는 모습이다. 벌을 받으면 깨닫고 회개를 해야 하는데도 화가 나서 다 마시고는 하나님께서 주신 진노의 잔까지 아득아득 씹어 먹으며 피투성이가 되는 모습이다.
코도 없고 귀도 없는 음탕한 여인이 벌거벗겨진 채 컵까지 다 씹어 먹고 그 컵의 부스러기에 입이 다 찢겨 입에서 피를 흘리는 드라큐라 같은 모습이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려 잡아 찢는다는 것이다. 개역개정은 유방을 꼬집는다 했는데 원어의 그림을 살리지 못한 번역이다. 원어는 찢는다는 뜻이다. 새번역은 "네 유방을 쥐어뜯을 것이다" 라고 원어의 의미를 잘 살려 번역했다. 화가 나서 자기 가슴을 잡아 뜯어 가슴에서도 선혈이 낭자한 흉칙스러운 모습이다. 이렇게 심판을 받고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제 분을 못 이겨 자기 가슴을 잡아 찢으며 여호와께 항의를 하는 모습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였으니 반드시 그대로 된다는 것이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35절은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렇게 벌을 내리신 이유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이다. 잊었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자신의 등 뒤에 버렸다는 것이다. 청소년기인 이집트 시절부터 그렇게 음행하던 그들을 참아 주시며 언약을 맺으시고 아내로 삼아 주신 하나님을 잊었을 뿐 아니라 버리기 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인내는 끝이 났다. 이제 예루살렘은 그 음란과 창녀 짓의 결과를 스스로 담당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자신이 그렇게 음란하게 행하여 받는 진노의 잔을 다 마시고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그림이 마음에 남는다. 그렇게 많은 진노의 잔을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시고도 회개하지 않는 장면이 마음에 남는다. 마지막에는 그 잔까지 다 씹어 먹고 자신의 유방을 잡아 찢으며 악다구니를 퍼부어 대는 오홀리바의 그림이 어쩌면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도 있는지 모른다.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우리도 하나님 대신 세상을 의지하고 세상 쾌락을 쫓아 살면서도 만족하지 못해 계속 더 크고 강렬한 쾌락을 얻으려고 애를 쓰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런 우리를 깨닫게 하시려고 벌을 내리실 때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회개하기 보다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쾌락을 따라 산다면 우리도 역시 오홀리바처럼 음란한 존재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