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1-3 에스겔이 그발강 가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그 손으로 에스겔을 잡아 주셨다.
약 만명에 달하는 유대의 지도자들이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갔다. 그 가운데는 제사장 가문의 에스겔도 있었다.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속히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사람들을 속이던 선지자들의 말을 거짓이라고 폭로했다(VanGemeren, 564). 에스겔은 포로상태에서 선지자와 파수꾼으로 여호와를 섬기도록 부름을 받았다.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은 조상들의 우상 숭배 때문에 자신들이 그렇게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했으나 에스겔은 그 모든 책임은 각 사람에게 있다고 강조했다(Ibid, 567). 에스겔은 스스로 감당하던 상징적인 고난을 통해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고난을 알렸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전하는 것 이외에는 말도 못하게 하셨다(3:26; 24:27). 하나님은 에스겔의 아내를 죽게 하시고 슬퍼하지도 못하게 하셨다. (24:15-18).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러한 고난을 통해 계시하게 하신 것이다.
에스겔이 전하던 이러한 부정적인 계시 때문에 함께 잡혀간 포로들은 에스겔의 말을 듣지 않았다. 에스겔 자신은 함께 잡혀갔던 유대의 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받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겔은 스스로 고난을 자처하며 말로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고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전했던 사람이다.
1절은 "제 삼십 년 넷째 달 오일이었다" 라는 말로 때를 알린다. 이 때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Cooper는 요시야가 율법책을 발견하고 개혁을 한 이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를 말하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Cooper, 59). 요시야의 개혁이 기원전 622-621년이고 에스겔이 부름을 받은 때는 기원전 593-592년 이므로 잘 맞는다는 것이다.
랍비들의 해석에 따르면 30년은 희년이 지난 후 30년이 지났다는 뜻이라고 한다. 레위기에 보면 7년 마다 지키는 안식년이 7번 지난 후 50년째는 희년으로 지키라고 했다(레위기 25:8-17).
가난으로 인해 땅을 팔았더라도 희년이 오면 본래 주인에게 돌아가기에 사람들은 밭의 값을 매길 때도 희년이 돌아 오려면 얼마나 남았는지 따져서 거래했다.
어떤 이들은 에스겔의 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McGregor, 720). 과거를 회상하며 말할 때 보통 말하는 사람 자신의 나이를 말하는 것이 보통이기에 가능성이 있다. 에스겔은 제사장이다. 민수기에 보면 레위인들은 30살부터 그 직분을 맡기 시작해서 50살까지 감당했다(민 4:3, 23, 30, 39, 43; 대상 23:3). 제사장도 역시 그 나이에 시작했기에 에스겔은 서른살의 나이에 상징적인 제사장직을 시작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 때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과 함께 그발강 가에 있었다고 했다. 그발강은 유프라테스 강으로부터 농업용수를 끌어 오기 위해 만든 인공운하였다고 한다(Cooper, 59). 유대인들은 부정한 바빌로니아 땅에 살고 있었기에 기도하기 전에 흐르는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려고 자주 강가에 나와 있었을 것이다. 바울도 빌립보에 도착했을 때 안식일에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성문 밖의 강가에 나갔다(행 16:13). 이것으로 볼 때 에스겔과 함께 잡혀간 유대인들은 제의적 정결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강가로 갔을 것이다.
2절은 그 때가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잡혀 온지 오년 째 되는 그 달 오일이라고 말한다. 3절은 그 때 그 강가에서 부시의 아들인 에스겔 제사장에게 특별히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성전은 없는데도 에스겔은 자신을 제사장이라 부르고 있다. 자신이 제사장 가문이고 또한 회복될 성전을 바라보며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의 제사장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특별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주님의 권능이 자신을 사로잡았다고 했다. 주님의 권능이란 여호와의 손이라는 뜻이다. 자신은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힌 바 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시고 자신들을 곧 회복시킬 것이라는 희망적인 예언자들과 분명히 구별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잡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붙잡고 계시기에 에스겔은 그렇게 배척을 받으면서도 고난을 자처하며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배척해도 에스겔은 고난을 견디며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셨고 하나님께서 그 권능의 손으로 붙잡아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산다면 하나님께서 그 권능의 손으로 잡아 주신다. 어떠한 고난도 견딜 수 있게 하시며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