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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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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예레미야애가 5:20-22

용서하시고 받아 주시는 하나님

2019. 9. 14.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애가 5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애가 5:20-22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잊으셨거나 버리셨는지를 물으며 그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 그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한 일이다.

이전 말씀에서 예레미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영원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며 소망을 두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 만 소망을 둔 예레미야가 구원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간구하며 애가를 마치고 있다.

20절은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셨는지 묻고 있다. 잊었다는 말은 창세기 40:23절에서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않고 잊었더라" 할 때 잊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는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레미야 에서 잊었다는 말은 주로 유다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잊었다고 할 때 썼던 말이다(예 3:21; 13:25; 18:15; 23:27). 유다 백성들은 우상숭배와 세상 탐욕에 정신이 팔려 여호와를 잊었던 것이다. 이제 예레미야는 반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신 뒤 회복시키시는 것을 깜빡 잊어버리신 것은 아닌지 묻고 있는 것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말은 "어찌하여 우리를 이렇게 오래 버려 두십니까?" 라는 말이다. 버려 둔다는 말은 창세기 2:24절에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할 때 떠난다는 말과도 같은 말이다. 본래 부모와 하나였는데 부모를 버리고 아내와 하나가 되야 한다는 뜻이다. 본래 남자가 결혼하면 부모는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아내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버리고 가는 아들을 자꾸 붙잡으며 내 새끼라고 하니까 결국 아내와 한 몸 되지 못하고 찢어지는 것이다.

예레미야에서 25번 나오는데 대부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다고 할 때 썼다.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고 절했다는 것이다. 이는 깜빡 잊은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버린 것이다. 하나님을 버리지 않으면 다른 신들과 하나가 될 수 없으니 유다 백성들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 때문에 이번에는 혹시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아주 버리신 것이 아닌지 묻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21절은 "우리를 주님께로 돌이켜 주십시오" 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주 버리지 마시고 유다 백성을 주님께로 돌아서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들도 주님께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서 나서셔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아주 버리셨다면 그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서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돌아 보시고 그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서도록 해 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돌아서게 했더라도 백성들이 돌아서지 않겠다고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구약성경에서 우상숭배를 주로 간음에 비유한다. 그렇다고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진짜 신부이고 하나님은 신랑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다른 신들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 부부관계와 같기에 그렇게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 아내를 남편이 아무리 용서하고 돌아오라고 해도 아내가 뉘우치고 돌아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도 같다.

이제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먼저 하나님 편에서 그 백성들을 다시 받아 줄 터이니 돌아오라고 해 달라고 예레미야가 간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백성들도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날들을 새롭게 하셔서 옛날과 같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한 것이다. 다시 예전처럼 다정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지내게 해 달라는 것이다.

22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만약" 이라는 말로 21절과 연결된다. 영어의 AV, ESV, NASB, NIV, NRSV,등은 이 말을 "unless" 라고 번역을 했다. NLT는 이 말을 "or" 라고 번역을 하고 22절을 21절과 독립된 의문문으로 번역했다. 새번역은 NLT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22절은 "unless"

로 시작하는 21절에 딸린 조건문으로 보는 것이 맞다(ESV, NIV, NRSV). 이는 이런 뜻이다. 만약 주님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시지만 않는다면 우리에게 측량할 수 없는 엄청난 분노를 아직도 품고 계시지만 않는다면 옛날처럼 다시 알콩달콩 하나님만 사랑하며 살게 해 주십시오.

따라서 열쇠는 하나님이 쥐고 계신 것이다. 예레미야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먼저 그 백성들을 돌아오라고 설득해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그 백성들도 그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백성들이 절대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 백성들이 아무리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받아 달라고 사정을 해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겠다고 하시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의 뜻은 바로 이런 뜻이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겠다며 불러 주시는 것이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반쯤 노력하시고 인간들이 반쯤 노력해서 합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단지 이러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고 스스로 거부하고 돌아서서 영원히 멸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로보트로 짓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세상 탐욕과 짝하여 살던 바람난 여자 같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아 주시기로 결정하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그분을 믿으면 용서하시고 영생을 얻게 하신 것이다. 이처럼 놀랍고 파격적인 제안을 받아들이고 하나님만 사랑하며 영생을 누리며 살지 아니면 거부하고 세상 탐욕을 따라 살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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