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0:1-6 하나님께서는 근위대장을 통해 또 다시 잡혀가고 있는 예레미야를 풀어 주게 하셔서 남아있는 유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사명을 맡겨 주셨다.
하나님 편에 서서 목숨 걸고 예레미야를 구해준 왕궁 하인 에벳멜렉을 하나님께서 구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바빌로니아 왕의 근위대장은 예레미야가 예언한 그 말씀 그대로 주님께서 하셨다고 말하며 예레미야를 석방해 주는 장면이다.
40:1절은 원어에서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말씀하신 내용을 사람들에게 뭐라고 선포했는지 나와있지 않다. 그 내용은 아마도 2-3절에서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에게 말한 내용일 것이다. 그 때에 예레미야는 또 다시 잡혀 포로로 끌려가고 있었다. 앞에서 느부갓네살의 명을 받은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를 석방해 주었다. 그 후 예레미야는 유다 사람들에게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왕의 명령을 알지 못하는 군인에 의해 다시 잡혀서 포로로 끌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2절에서 근위대장은 "그대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이 곳에 이런 재앙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셨소" 라고 했다. 3절에서는 "이제 그대로 하셨소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한 것이오" 라고 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예레미야를 죽이려 했다. 그런데 반대로 이방인이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 그 입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한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 것이다. 또 이어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고 그 이유까지 말한다. 이는 예레미야가 1절에서 주님께 받은 말씀의 내용일 것이다.
4절에서 근위대장은 예레미야를 풀어 주면서 포로가 아닌 친구로 대하면서 함께 가도 좋다고 권한다. 다른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 가지만 예레미야는 근위대장의 친구의 신분으로 함께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강제로 가자는 것은 아니다. 가기 싫으면 안가도 좋고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가라고 했다.
5절은 예레미야가 아직 돌아가려고 하지 않으니까 근위대장은 이곳에 머물기를 원하면 그달리야에게 돌아가라고 한다. 그달리야는 바빌로니아 왕이 유대지역을 다스리도록 임명한 유대인 총독이다. 열왕기하 22:8-20절에 보면 사반은 요시야에게 두루마리를 읽어 준사람이다. 그 아들 아히감도 요시야가 여자 예언자 훌다에게 왕의 듯을 전하라고 보냈던 사람이다. 그달리야도 시드기야의 신하였을 것이다. 근위대장은 그달리아에게 돌아가는 것도 싫으면 다른 곳 어디든 가서 살아도 좋다는 것이다. 유대 뿐 아니라 모든 지역이 다 바빌로니아 왕의 지배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근위대장은 예레미야에게 길에서 먹을 양식과 선물까지 줘서 보냈다.
6절을 보면 그달리야가 통치하는 총독부는 예루살렘에 있지 않았다.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기 때문이다. 총독부는 미스바에 있었다. 미스바는 예루살렘에서 8마일 북쪽에 있던 곳이고 오랫동안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였던 곳이다. 완전히 파괴된 예루살렘과는 달리 미스바가 파괴된 증거는 발굴되지 않았다. 기원전 6세기 경의 것으로 밝혀진 그달리야의 이름으로 찍힌 압인이 발굴되었기에 그달리야가 총독으로 있었다는 것도 역사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예레미야는 바빌로니아 왕의 근위대장의 제안에 따라 좋은 대우를 받으며 바빌로니아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강력한 나라이고 문화적으로도 가장 발달한 나라였기에 그곳에 가서 사는 것이 더 편안했을지도 모른다. 그 곳에 가서 바빌로니아 왕의 보호를 받으며 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따라가지 않았다. 대신 완전히 폐허가 된 곳에 흩어져 있던 백성들을 모아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도록 가르치는 일을 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안위를 따라 살지 않았다. 끝까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 멸망한 유다에 남아 사람들을 가르쳤다. 우리도 역시 우리 육신의 안위를 따라 살면 안된다. 불편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명은 우리가 있는 이곳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방황하고 고통 중에 있는 이웃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도록 인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