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8:23-29 밭을 가는 것은 씨앗을 뿌리기 위함이요 곡식을 두들기는 것은 곡식만 골라내기 위함이다.
하: 알곡만 골라내시는 하나님
나: 내가 받는 모든 고난은 나에게 붙어 있는 쓸모없는 세상 것들을 떼어내기 위함이요 영원한 하나님의 창고에 들이기 위함이다. 감사함으로 받자.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고 조롱하는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멸망시키신다는 내용이 나왔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러한 하나님의 심판이 멸망시키기 위한 심판이 아니라 추수하여 알곡을 거두기 위한 심판이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23절은 두개의 짝을 이루는 댓구로 되어 있다. 먼저 귀를 달라고 한 뒤 내 목소리를 들으라고 한다. 이와 짝을 이루는 댓구는 집중해서 들어달라고 한 뒤 내가 하는 말을 들어달라는 것이다. 이사야는 들을 준비가 안되어 있는 청중들에게 자기에게 귀를 빌려달라고 소리치며 자기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한 것이다. 들을 준비가 되자 이번에는 자기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잘 들어달라고 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이사야를 바라보며 들을 준비를 했을 것이다.
24-25절은 하나님의 심판을 밭가는 농부의 비유로 전달한다. 밭을 쟁기로 계속 갈아대는 일만 하는 농부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추수가 끝나면 농부는 밭을 가는데 그 목적은 씨앗을 심기 위한 것이지 단순히 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도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씨앗을 심는 것과 같은 희망을 심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소회향(dill)이란 미나리과에 딸린 식물인데 잎사귀를 말려서 향료로 쓰고 씨앗도 역시 향료로 사용한다. 대회향(cumin)이란 미나리과에 속하는 식물의 씨앗으로 양념으로 쓰이는 것이다. 가뭄에 잘 견디는 식물이기에 지중해 연안의 건조한 지역에서 재배하던 식물이다. 밀과 보리도 심고 밭 가장자리에는 귀리도 심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과 같은 것이므로 새로운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26절은 농부에게 밭농사를 짓도록 알려주시고 가르쳐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이제 농사의 원리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영적 의미로 넘어간다. 농사의 원리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심판도 역시 남은 자들을 씨앗으로 삼아 새로운 하나님의 밭을 가꾸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27절은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않는다 했다. 도리깨란 홈이 파져있는 널판지이다. 수확한 곡식을 마당에 펴 놓고 사람이 썰매를 타듯 널판지 위에 올라 타고 말이나 소가 그것을 끌고 다니면서 밀이나 보리를 탈곡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회향은 작은 씨앗이기에 그렇게 하면 다 으깨져서 쓸 수가 없기에 작대기로 살살 두들겨 턴다는 것이다. 대회향은 그보다 조금크지만 그래도 탈곡하는 무거운 수레바퀴로 떨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역시 막대기로 두들겨 턴다는 것이다. 원어에서 작대기는 좀 가는 막대기일 것이고 막대기는 왕의 지팡이와 같은 말이므로 지팡이 정도의 굵기와 길이의 막대기일 것이다. 대회향이나 소회향을 탈곡할 때는 조심해서 두들기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작은 씨앗들을 터는 모습으로 비유한 것이다. 한국에서 깨를 터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28절은 곡식을 떨 때 낱알이 바스러지도록 떨지 않는다 했다. 수레바퀴로 탈곡하는 단단한 곡식들도 곡식이 다 으깨지도록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탈곡의 목적은 곡식을 수확하기 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심판도 막대기로 얻어 맞거나 무거운 수레바퀴 아래에 깔리는 것 같은 고난이지만 그것은 멸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알곡만 거두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한국 식으로 말하면 낱알과 볏짚을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수확할 때는 모두 다 거두지만 탈곡하는 과정에서는 낱알만 거두고 볏짚은 불에 태우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밭가는 것과 탈곡하는 것에 비유했다. 밭을 가는 것은 땅의 입장에서 보면 고난이고 아픔이다. 그러나 그것은 땅을 부드럽게 해서 씨앗을 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밭갈 듯 가실 때도 역시 고난을 통해 우리 마음 밭을 부드럽게 해서 씨앗을 품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탈곡하는 그림에서는 추수한 씨앗들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두들기는 모습이다. 맞는 것은 씨앗이나 줄기나 함께 맞는다. 그러나 줄기는 버려지기 위해 얻어 맞는 것이고 씨앗들은 모아 저장하기 위해 맞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도 마찬가지이다. 믿는 자들을 때리시는 것 같지만 믿는 자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서 때리는 것이다. 그래서 쓸모없는 세상 사람들과 따로 떼어내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보관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알곡이 으깨지지 않도록 조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