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3:1-13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씻겨 주시고 그 죄를 용서해 주시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과 영원한 평화를 누리게 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말씀을 따라 살게 하심으로 영원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이제 오늘 말씀은 회복되어 누릴 평화와 번영의 모습을 그림처럼 그리고 있다.
1절은 32:1-2절과 마찬가지로 예레미야가 근위대 뜰 안에 갇혀 있을 때 말씀하셨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제 두번째로 말씀하신 것이다. 2절은 땅을 짓고 빚어 만드시고 제자리에 세우신 분께서 말씀하신다고 했다. 이는 창세기 1장에 나타난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이다.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한 것은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장면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3절은 기도하면 모두 응답된다는 뜻으로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유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부르라고 초청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겠다는 것이다. 마치 아버지를 부르면 "무슨 일이냐 내 아들 내 딸아 !"
라고 대답하시는 모습과도 같다. 유다의 회복의 시작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인 것이다.
이렇게 관계가 회복이 되면 그 다음에는 크고 비밀한 일을 말해주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관계가 되면 비밀을 알려주는 법이다. 하나님께서 하실 계획을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그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는 알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이 구절을 가지고 부르짖어 기도하기만 하면 뭐든지 놀랍게 응답하신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그 사랑하는 아들 딸들에게만 알게 하셔서 멸망의 길에 빠지지 않고 복된 길로 가게 하시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4절은 바빌론 사람들이 무너뜨린 성벽과 건물들과 왕궁들을 두고 말한다고 했다. 5절은 하나님의 분노와 노여움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 안에 죽은 사람들의 시체로 가득 채웠다는 것이다. 그들의 죄악 때문에 얼굴을 돌리셨었다는 것이다. 그 때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얼굴을 감추셨다는 것이다. 그들의 죄악 때문이다.
3절에서 말한 크고 비밀한 일이 6-8절에 나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죽게 하시고 파괴하신 것을 다시 회복시키신다는 계획이다. 먼저 6절에서 치료하여 낫게 한다는 말은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는 모습이다. 이어서 치료하신다고 했다. 이는 병이 낫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는 넘치는 평화와 안전을 드러내 보이신다는 것이다. 넘치는 평화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다. 그러면 이웃들 과의 관계 회복은 저절로 되는 것이다. 안전이라는 말은 견고한 진리라는 뜻이다. 진리의 말씀으로 굳게 서서 다시는 우상에 빠지고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7절은 평화와 진리로 회복시키신다고 보여주신 것을 실현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다시 전과 같이 회복시키신다는 것이다. 회복시킨다는 말은 다시 건설한다는 뜻이다. 이전의 모습으로 다시 재건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영어의 NLT는 그래서 "rebuild their towns" 라고 의미를 살려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돌아오게 하셔서 성읍들만 회복된 것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회복이다. 그래서 8절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지은 모든 죄악을 씻어주겠다고 하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 거역하여 지은 죄들과 하나님께 반역하여 지은 죄들을 모두 다 용서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본래 스스로 깨끗이 씻고 와서 용서를 빌어야 용서해 주시는 것이 맞다. 그러나 여전히 더러운 반역자들을 데려다가 깨끗이 씻기시고 여전히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인들인 데도 불구하고 그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시고 다시 자녀로 받아들이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9절은 "그러면 세상 만민이 내가 예루살렘에서 베푼 모든 복된 일들을 듣게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나에게 기쁨과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이름이 될 것이다" 라고 했다. 말도 안되는 죄사함과 용서의 소식을 듣고 세상 모든 만민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깜짝 놀란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님께 기쁨과 찬양과 영광이 된다고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이 도성에 베풀어 준 모든 복된 일과 평화를 듣고 온 세계가 놀라며 떨 것이다" 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일들을 듣고 모두가 놀랄 뿐 아니라 경악하며 두려워 떨게 된다는 것이다.
10-11절은 현재의 모습과 장래의 회복될 모습을 비교한 것이다. 10절에서는 완전히 파괴되어 사람도 짐승도 없는 모습이다. 11절은 그러나 "환호하며 기뻐하는 소리와 신랑 신부가 즐거워하는 소리와 감사의 찬양 소리가 들릴 것이다" 라고 했다. 전쟁의 때에는 환호하며 기뻐하는 소리도 없다. 신랑 신부가 즐거워하며 감사 찬양을 드리는 일도 없는 것이다.
이어서 "주의 성전에서 감사의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이 이렇게 찬양할 것이다" 라고 했다. 그 찬양의 내용은 시편 100:5, 106:1, 107:1절과 비슷하다. 만군의 주님께 감사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인자하심 이란 한결 같은 사랑이다. 용서하고 또 용서하시며 영원히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한 것이다. 그 한결 같은 사랑은 "내가 이 땅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여 다시 옛날과 같이 회복시켜 놓겠다" 라는 약속에 담겨있다.
12-13절은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땅의 범위를 말한 것이다. 12절은 황폐하게 된 모든 성읍들에 양떼를 뉘어 쉬게 할 목자들의 초장이 생겨난다고 했다. 모든 지역의 황무지가 푸른 초장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그 범위는 13절에 보면 산간지역의 성읍들과 평지의 성읍들이다. 또 남쪽 사막지역의 성읍들이다. 이는 유다의 모든 지역들을 말한 것이다.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의 사방과 유다의 성읍들 에서 목자들이 양떼를 센다고 했다. 역시 남왕국 유다의 회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도 우리가 경건하고 거룩해서가 아니다. 말할 수 없이 더러운 죄인이고 하나님께 반역하고 내 뜻대로 살아온 죄인들이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그 모든 죄를 용서하시며 자녀를 삼아 주신 것이다. 하나님과 평화의관계가 되고 진리의 말씀 위에 견고하게 서서 흔들리지 않게 해 주신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날마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그 말씀 위에 견고하게 서서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