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6:1-24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보내서 그런 예레미야를 죽이려는 사람들의 손에서 예레미야를 건져 주셨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울부짖는 사자처럼 하나님의 목장을 향해 울부짖으시고 모두 다 죽이고 그 굴을 떠나는 사자처럼 떠나신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성전에 서서 다시 예루살렘 성전과 예루살렘 성이 망한다고 다시 예언하라고 하셨다. 혹시나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1절의 내용은 26장의 예언이 기원전 609-608년 사이에 주어진 것이고 알려준다. 2절은 성전 마당에 서서 성전에 경배하러 오는 모든 유다 성읍들에게 말하라고 하신다. 한마디라도 갖고 있지 말고 다 말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도 빼놓지 말고" 라는 말은 예레미야 15:2절과 48:37절에서 수염을 자른다는 말로 쓰인 말이다. 보기 싫게 튀어나온 수염을 다듬고 자르듯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고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할지도 모르는 말씀들은 잘라 내서 전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아무리 성경에 있는 그대로 전한다고 해도 듣기 싫은 말 거친 말들은 수염 다듬듯 잘라내서 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이다.
3절에서 주목해야 할 말은 "혹시" 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확정하셨다. 하나님은 저들이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다 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그들이 그 말을 듣고서 자신의 악한 길에서 돌아설 수도 있지 않겠느냐?" 라고 생각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그래도 혹시 돌아선다면 내리기로 작정한 재앙을 거두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길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기를 원하신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끝까지 듣지 않기에 심판을 받고 멸망하는 것이다.
4-6절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전하라고 명하신 말씀이다. 4절에서 "너희가 내가 너희에게 준 범에 따라서 순종하여 살지 않으면" 이라고 했는데 원어는 "만약 너희가 나에게 듣지 않는다면 너희에게 준 나의 법을 따라 걷기 위하여" 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법을 듣는 것은 그 말씀을 따라 걷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말씀을 따라 살려고 듣는 것이다. 5절에서 그 말씀은 이미 계속 반복해서 예언자들을 보내서 하신 말씀이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따라 행하기 위해 듣지 않고 그냥 듣기만 하고 만다면 6절에서는 이 성전을 실로처럼 만들어 버리고 이 도성을 세상 만민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겠다" 라고 하셨다. 실로는 사무엘상 4장에 나오는 성전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 이전의 예배장소이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고 제단만 덩그러니 있던 곳일 것이다.
7-16절은 이렇게 재수없는 예언을 한 예레미야를 잡아서 죽이려고 재판하는 모습이다. 7절은 제사장들과 예언자들과 온 백성이 주님의 성전에서 이 말씀을 다 들었다고 했다. 8절은 예레미야가 주님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을 다 전하니 제사장들과 예언자들과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잡고 죽인다고 하는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다 전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백성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골라서 전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대로다 전해서 예레미야는 잡힌 것이다.
9절에는 예레미야의 죄목이 나온다. "어찌하여 주님의 이름을 빌려 이 성전이 실로처럼 되고 이 도성이 멸망하여 여기에 아무도 살 수 없게 된다고 예언하느냐?" 라는 것이다. 첫째 죄목은 주님의 이름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절대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것은 하나님을 모독한 죄이다. 둘째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거짓으로 말해서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깨시고 자기 백성들에게 그렇게 하실 수 없다는 것이다. "주위에 모여들었다" 라는 말은 사무엘하 20:14절에서 전쟁을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 때 쓴 말이다. 이들은 예레미야를 치려고 모여들었지만 사실 이들은 하나님과 전쟁을 하려고 모여든 것이다.
10절의 유다의 고관들이란 재판관들이다. 재판관들이 당시 재판정으로 사용되던 주님의 성전 새 대문 어귀에 앉았다. 11절은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검사가 되어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고소하는 장면이다. 그 죄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한 것이다.
12-13절은 이러한 고소에 대해 예레미야가 자신을 변호하는 내용이다. 12절은 예레미야가 재판관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성전과 이 도성에 재앙을 예고하라고 보내셨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13절은 그러므로 "자신의 행동과 행실을 바르게 고치고" 라는 말은 너희 길과 행동을 고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길을 걸어야 하는데 자신들이 원하는 말씀만 골라서 길로 삼기에 그 잘못된 길과 행동을 먼저 고친 뒤 주님의 목소리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재앙을 거두실 수도 있다는 것이다.
14-15절은 예레미야가 자신은 죽어도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진짜로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전한 것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죽인다면 자신을 죽인 예루살렘 주민들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자신을 보내신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6절은 재판관들이 예레미야가 자신을 변호한 말을 받아들이고 그 말이 옳다 라고 판결을 한 내용이다. 재판관들은 예레미야가 사형 선고를 받아야 할 만한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언자가 맞고 예레미야의 죄는 하나님께서 말하라고 한 말을 전한 죄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17-19절은 일부 장로들이 일어나서 재판관들의 판결이 옳다 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일부 장로들은 이 재판을 지켜보던 배심원과도 같은 역할이다. "지방의 장로들" 이란 번역은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변두리 지방의 장로들이란 뜻이 아니다. 지방이란 "그 땅" 이란 뜻이다. 그 땅의 장로들 중 일부가 미가의 예언을 듣고 백성들이 주님을 두려워하고 은혜를 간구했기에 하나님께서 그 재앙을 거두셨던 예를 말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제사장들과 예언자들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오히려 예언자를 죽이고 하나님과 전쟁을 하겠다고 하니 큰 재앙을 불러 들이려 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20-23절은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을 한 우리야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예언을 하고 이집트로 도망간 사람을 잡아다가 죽이고 예루살렘 밖의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공동묘지에 던졌다는 것이다. 24절은 이제 예레미야도 우리야와 똑같이 될 것이었는데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보호해줘서 죽지 않게 된 것이다.
예레미야 시대의 예루살렘 사람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나 모두 똑같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축복하신다는 말만 듣고 싶어하고 자신들을 위로해 주고 용기를 주는 말만 듣고 싶어한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기는 하는데 그 말씀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데는 사용하지만 정작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길을 고치는 데는 사용하지 않는다.
전하는 자도 빼놓지 말고 다 전해야 한다. 거친 수염과 같고 삐죽 삐죽 삐져 나오고 이리저리 구부러져 보기 싫은 수염과 같은 말씀은 잘라내고 다듬어서 전하면 안된다. 듣는 자도 보기 싫은 수염과 같은 말씀들을 다듬어서 자신이 원하는 말씀만 골라서 들으면 안된다. 그 말씀은 혹시라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말씀만 표구해서 걸어 놓고 하나님 말씀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위안으로 삼으면 안된다. 하나님 말씀을 골라 들으며 하나님 말씀을 거칠게 있는 그대로 전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하는 것이다. 용서하시고 심판에서 건져 주시려고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욕을 바락바락하며 대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