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예레미야 › 16:1-13

Dawn Word

예레미야 16:1-13

완전히 망할 것이니 결혼도 장례식이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말라

2019. 4. 5. · 안정섭 목사 · 예레미야 16장 강해 설교

예레미야 16:1-13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완전히 멸망할 것이니 예레미야에게 결혼하지도 말고 장례식이나 결혼식에 참석하지도 말라고 하신다. 그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악한 생각을 따라 살기 때문에 완전히 망할 것이라 하신다.

하: 완전한 멸망을 선포하시는 하나님

인: 자신들의 악한 생각을 따라 살면서도 죄인줄도 모르던 유다 백성들

나: 내 생각을 따라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 살도록 주의하고 또 주의하자.

이전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환난과 핍박을 당하면서도 그 말씀을 전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벽이 되어 지켜 주시고 위기에서 건져 주시며 악인들의 손에서 해방시켜 주신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결혼하지도 말고 장례식이나 결혼식에 참석하지도 말라고 하신다. 그 백성들에 대해서는 완전히 멸망할 것이라 하신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는 지켜 주시고 악인들은 완전히 망하게 하셔서 해방시켜 주시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예레미야에게 하시는 말씀과 그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뒤섞여 있다.

1-2절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내를 맞거나 아들이나 딸을 낳거나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혼자서 사는 것이 더 경건한 삶이라는 뜻이 아니다. 또한 독신으로 사는 것이 예언자로서 그 사역에만 전념하는 길이라는 뜻도 아니다. 이는 예레미야의 재수없는 불길한 예언들이 모두 분명히 성취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예레미야가 결혼하여 자식들을 낳고 산다면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모두 다 죽을 것이고 자식들까지 다 죽을 것이라는 말이 헛말이 되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독신으로 살면서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는 것이 그 예언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3-4절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내용이다. 3절은 이 땅에서 태어날 아들 딸과 그들을 임신할 어미와 아들 딸을 낳을 아비에 대해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기록된 문서가 없던 고대인들에게 3절과 같이 비슷한 말들을 계속 열거하며 말할 때에는 기억장치가 필요하다. 그 기억장치는 "남성-여성-남성-여성-남성-여성" 이다. 먼저 남성인 아들 다음에 여성인 딸이 나온다. 그 다음에 어머니가 나와 여성인 것 같지만 원어는 그 다음에 "이곳에서" 라는 남성형 명사가 나온다. 그 다음 여성인 어머니가 나오고 다음에 남성인 아버지가 나온다. 원어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것은 여성인 "이 땅에" 라는 말이다. 모든 사람들 모든 장소 다 빠짐없이 멸망하는 것이다.

4절은 질병과 칼과 기근 이 세가지로 인해 다 죽게 된다는 것이다. 질병으로 죽는 비참한 모습은 그 비참함이 점점 더 강조되어 진다. 첫째는 울어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사람이 질병으로 죽었는데도 울어줄 사람 조차도 없다는 것처럼 비참한 것을 없다. 둘째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묻어 줄 사람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셋째는 거름덩이처럼 된다고 했는데 원어는 땅 위에 굴러다니는 똥들과 같이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병으로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한 죽음은 전쟁에서 죽는 것인데 원어는 칼로 죽는다는 뜻이다. 병으로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한 죽음은 적군의 칼에 찔려 죽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적군의 칼에 찔려 죽는 것보다 훨씬 더 비참한 죽음은 굶주림으로 굶어 죽는 것이다. 자신들의 아들 딸들이 자신들의 품에서 굶어 죽는 모습을 보며 자신들도 모두 다 죽어가는 것이다. 질병으로 죽어가는 모습의 비참함을 세단계로 점점 그 비참함을 강하게 드러낸 뒤 죽는 방법도 세단계로 그 비참함을 점점 더 강하게 드러낸 것이다. 유다의 처참한 멸망의 최고점은 새들과 들짐승들이 그 시체들을 뜯어먹는 그림이다. 그렇게 완전히 망한다는 것이다. 예레미야에게 결혼하지 말라 하신 말씀이 진실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5절은 다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이다. 2-3절은 결혼하여 자녀를 낳지 말라는 말씀이었던 것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이번에는 초상집에 가지도 말고 가서 곡하지도 말고 유가족을 위로하지도 말라고 하신다. 가는 것과 가서 곡하는 것과 곡을 한 뒤 유가족을 위로하는 것이 조문의 순서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에게 베푼 평화와 한결 같은 사랑과 자비를 거두어 들이셨기 때문이다. 이 세가지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위해 보여주신 깊은 헌신이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인내가 끝이 났고 모두 다 거두어 들였으니 초상집에 가서도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6절은 다시 그 백성들에게 하는 말이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다 죽을 것이라 했다. 원어는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이나 다 죽는다는 것이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다 죽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묻히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기르던 애완동물이 죽어도 땅에 묻어주는 법이다. 그런데 낮은 사람은 그만두고 라도 존귀한 사람들 조차도 묻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완전히 다 망한다는 뜻이다. 장례식에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고 머리를 미는 것은 이스라엘을 둘러 싼 이방 종교를 믿던 사람들이 하던 것이기에 금지된 것이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따라 우상숭배를 했기에 장례식에서 이런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했었다. 아무도 슬퍼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7절은 장례식에서 음식을 나누는 모습이다. 죽은 사람의 유가족을 위로하려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 했다. 이웃이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은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정결법에 따라 죽은 사람과 접촉한 그 집에서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례식이 끝난 뒤 이웃집에서 음식을 해 주면서 위로해 주는 것이다. 또 다른 면은 그런데 그럴 이웃도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도 다 죽었기 때문이다. 친 부모를 잃은 사람에게 위로의 잔을 건네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 했다. 본래 위로의 잔은 조문객의 대표가 가족에게 건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그럴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모두 다 죽었기 때문이다.

8절은 다시 예레미야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이번에는 결혼식의 잔치 자리에 가서 함께 앉아서 먹고 마시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레미야 자신이 결혼하지 말라고 하신 뒤에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의 결혼식에 조차도 참석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이제 그 백성들은 완전히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9절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경고하시는 말씀이다. 흥겨워하는 소리와 기뻐하는 소리는 결혼식에서 노래하며 기뻐하는 모습이다. 흥겨워 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신부의 목소리는 결혼식의 순서대로 나열된 것이고 그 기쁨은 점점 커지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것이 다 사라지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1-9절은 예레미야에게 결혼하지 말라는 말로 시작해서 결혼식에 참석하지도 말라는 말로 끝이 난다. 그 중간에는 장례식에 참석해서 위로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모두가 평화로운 시기에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다 깨뜨려 버리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백성들에게 베푸시던 평화와 한결 같은 사랑과 자비를 완전히 거두어 들이신 것이다.

10-13절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무서운 재앙을 선포하시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완전히 깨뜨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0절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모두 다 전달하면 그 백성들이 예레미야에게 "무엇 때문에 주님께서 이토록 무서운 재앙을 우리에게 선포하시는가? 우리가 주 우리 하나님께 무슨 죄를 짓고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라고 묻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들은 아무 죄도 없고 잘못도 없다는 뜻이다. 그 백성들은 죄를 짓고도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11절은 이렇게 대답하라는 것이다. 먼저 말하는 것은 조상들의 죄이다. 조상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상들의 죄가 문제가 아니다. 그 때는 하나님께서 그래도 참으셨다는 것이다. 12절은 그런데 이제 이 백성들은 조상들보다 더 악한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 죄는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고집대로 살아가며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상숭배보다 더 악한 것은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우상숭배보다 더 악한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기 보다는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 하면서 사실은 자기 악한 생각과 고집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죄악이다. 그것이 죄인 줄 모르고 살았기에 그 백성들은 자기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무서운 재앙을 선포하시느냐고 따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면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데 우리는 그 길을 따르지 않고 우리의 악한 생각을 따라 살아간다면 아무리 예배를 잘 드리고 기도를 열심히 잘하고 헌금 많이 해도 하나님 앞에서 멸망 받을 큰 죄인 것이다.

예레미야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