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6:7-9 나는 주님이 허락하신다면 여러분에게 가서 한 동안 머물 예정이지만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있어야 되는 이유는 복음 전할 문이 활짝 열려있고 효과적으로 일할 기회가 있기 때문이며 그 결과 방해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마케도니아를 거쳐 여러분에게로 갈 것인데 여러분에게 간다면 한동안 머물 것이고 어쩌면 겨울을 날 것인데 그 다음에는 여러분이 비용을 대서 다음 장소로 보내달라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은 고린도에 잠깐 들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머문다며 일할 기회가 열려있지만 방해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7절은 왜냐하면 지금 나는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러서 여러분을 만나 보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6절에서 한동안 머물겠다고 한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또 이어서 왜냐하면 일정기간 동안 여러분에게 가서 머물고 싶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함께 머물면서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목회를 하고 교회가 안정되면 다음 목회지로 떠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어에서 7절 끝에는 "만약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는 조건이 달려있다. 바울은 자기 뜻대로 사역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종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계획은 고린도 교회에 가서 오래 머물면서 사역하길 원하지만 주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안가겠다는 뜻이다. 우리도 역시 모든 일을 다 주님께 맡겨야 한다. 내 생각을 앞세우고 교회의 일을 한다면 주님의 종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고 하나님인 셈이다.
8절은 그러나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머물러 있겠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오순절을 언급한 이유는 오순절과 유월절관련 성경 본문들이 그의 머릿속에 있었음을 시사한다며 고린도전서 전체에 나나타는 첫 열매와 파종 수확의 언어와 연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본문의 문맥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 의미는 오순절 자체에 있지 않다. 이어지는 9절이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며 에베소에 그 때까지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9절에서 바울은 두가지 이유를 말하고 있다. 하나는 크고 효과적인 사역의 문이 활짝 열려있다는 것다. 문이 열려있다는 말은 완전히 열려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에베소에서 해야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방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표준 새번역은 두 문장 사이의 말을 “그러나” 로 번역했지만 대부분의 영어번역처럼 “그리고” 가 맞다.
문이 크게 열려있다는 것은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알 수 있다. 바울은 3개월간 회당에서 가르쳤고 회당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기자 두란노 서원으로 옮겨 2년간 가르쳤다. 그래서 아시아에 사는 모든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바울의 손을 통해 기적들이 많이 일어나고 말씀이 능력있게 확장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이 문이 활짝 열려있고 효과적인 사역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역의 기회가 활짝 열려있다는 말은 이해가 가지만 “방해하는자(대적하는 자)”가 많다는 것이 어째서 에베소에 머물 이유가 될까? 19:9절에 보면 회당에서 일부가 완강히 반대했다.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은 주로 열성적인 유대교 신자들이다. 사도행전 23:12-13절에 보면 에베소에는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 결의 한 사람들이 40명이나 있었다고 되어 있다.
바울이 에베소에 더 머물려는 이유는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을 전도할 기회가 많다고 생각한 것이다. 바울은 어디에 가든지 유대인의 회당에 가서 유대인과 유대교를 믿는 이방인들을 중심으로 전도했기 때문이다. 복음이 효과적으로 잘 전파될수록 방해하는 사람도 많이 생기는 법이다. 반대가 심했지만 주께서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실 때까지 바울은 계속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 때가 오순절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순절 자체에 특별한 신학적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때까지는 에베소에서 머물며 사역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째서 바울이 자신이 고린도에 머물 때 도와주고 떠날 때 여행비용을 달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또 고린도에서 계속 있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면 떠나겠다고 했을까? 한번 생각해 보자. 만약 어떤 교회가 한 목회자를 담임목사로 초청했는데 그곳에서 할 일이 있어 몇 개월 더 있다가 부임하겠다고 하면 좋아할까? 또 부임하기도 전에 교회가 안정되면 곧 떠나겠다면서 도와달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그런 목회자를 좋아할 교회가 어디 있을까? 이것을 통해 우리는 바울의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바울의 삶의 목적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지 사람들에게서 좋은 평을 듣는 것이 아니었다. 바울 자신은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 목숨까지도 걸고 사역하고 있으니 자신이 사역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다.
교회가 목회자들의 생활비를 제공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호의 때문이 아니다. 내 교회만 잘 되게 하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목회자들의 생활비를 제공하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잘 전하고 가르치라는 것이다. 우리 교회의 존재 목적도 우리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명령하신 땅 끝까지 복음 전하여 제자를 삼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먼저 내 교회 안에서 복음이 잘 전해지고 말씀으로 양육되어야 하기에 먼저 담임 목회자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것이 교회 예산 집행의 최우선이다. 이것은 남침례회 뿐 아니라 모든 교단의 공통적인 원칙이다. 그것이 되면 그 다음에는 선교사들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해외선교가 교회 건물 짓고 학교 세우고 병원 짓는 일을 중심으로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 교회들이 그 일을 먼저 그만 두었고 선교사를 지원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면서 늦게 선교를 시작한 한국 교회들이 똑같이 따라서 하는 것을 보고 미국의 선교 단체들에서 어리석다고 했던 적이 있다. 아직도 개교회에서 직접 선교할 때는 선교지에 건물 짓는 일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이제 다 안다. 먼저 선교사를 지원해서 그곳에 정착하고 그곳에서 다니면서 전도하고 가르치게 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그 다음에 필요하면 교회 건물도 세우고 학교도 세우는 등의 일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도 고린도 교회에 자신이 복음 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한 것이다. 고린도에서 떠나 다른 곳에 갈 때 그 여행경비도 지원해 달라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