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37-38 그대가 뿌리는 씨앗은 장차 생겨날 그 식물 자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벌거벗은 씨앗을 뿌릴 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 이미 정하신대로 각 씨앗에 고유한 몸을 주신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며 어떤 몸을 입고 오느냐고 묻는 사람들을 향해 어리석은 자라고 강하게 책망하며 그대가 뿌리는 씨앗은 죽지 않으면 살려지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대가 뿌리는 것은 장차 이루어질 몸 그 자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나 하나의 씨앗에 그 몸을 주신다고 하는 내용이다.
37절은 그리고 너의 뿌리는 것은 장차 되어질 몸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벌거벗은 씨앗 뿐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장차 되어질 몸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장래에 이루어질 과정을 뜻하는 말이다. 그대는 단지 벌거벗은 씨앗 알갱이를 뿌릴 뿐이고 장차 그 농작물이 싹이 터서 아름답게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그 과정을 뿌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어서 어쩌면 밀이나 그 밖의 곡식들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에 이는 분명히 씨앗을 심는 비유로 말하는 것이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단지 벌거벗은 씨앗 알갱이를 뿌릴 뿐이고 장차 되어질 아름다운 농작물을 심는 것은 아니라는 비유를 말하는 것이다. 싹이 터서 자라게 하시고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씨 뿌리는 비유에서 벌거벗은 씨앗은 우리가 현재 입고 있는 죽을 몸을 뜻한다. 여기서 대조되는 것은 볼품없는 벌거벗은 씨앗과 장차 되어질 초록빛 식물과 거기에서 피어나는 꽃과 열매들이다. 벌거벗은 작은 씨앗 하나와 장차 아름답게 자라서 풍성한 결실을 맺은 농작물을 비교한 것은 현재 우리의 육체와 장차 우리가 입을 영광의 몸의 차이를 비교한 것이다. 이는 마치 바울이 로마서 8:18절에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한 것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의 현재의 몸과 장차 입을 영광을 볼품없는 밀의 씨앗 한 개와 그것이 자라 3-5개의 줄기로 자라서 200개 정도의 밀알을 매달고 있는 누렇게 익은 모습과 대조되고 있는 것이다.
38절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몸을 주신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서 그가 원하셨던 그대로 라는 말이 이어진다. 그가 주신다는 말은 현재도 주고 계신다는 뜻이고 그가 원하셨던 그대로 라는 말은 과거에 이미 한번 정한 것을 말한다. 여기서 현재 그가 주신다는 말은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나타내고 그가 원하셨던 그대로 라는 말은 지금 뜻하는대로가 아니라 창세 때에 이미 한번 정하셨던 대로 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각 존재가 어떤 몸을 갖게 될지 이미 정하셨고 그 정해진대로 지금도 몸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또는 하나님이 그 뜻대로 라고 번역한 것을 지금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그 씨앗에 몸을 주신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처음 정하신 그대로 지금도 계속 몸을 주고 계신다는 뜻이다. 이어서 각각의 씨앗에 그 고유한 몸을 주신다고 한 것을 보아도 창조 때 이미 정하신 그대로 각각의 씨앗에 그 고유한 식물의 모습을 주신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는 부활시에 우리가 입을 몸도 각자가 다 다른 형태라는 의미를 갖는다. 부활한 몸은 모두가 똑같이 생긴 영광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 때 정한 그대로 각각 고유한 몸을 입는다는 것이다. 각 씨앗은 각각의 몸을 가진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신대로 장차 영광의 몸을 각 사람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씨앗과 그 식물이 모양은 다르지만 그 정체성을 보존하는 것처럼 우리가 입을 몸도 역시 지금과 다른 몸을 입지만 우리 각자의 정체성은 그대로 보존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