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31-32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갖고 있는 자랑인 너희를 두고 맹세하건데 날마다 죽음의 위협을 직면한다. 인간적인 동기에서 목숨을 걸었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그냥 먹고 마시다 죽는 것이 낫다.
이전 말씀에서는 부활이 없다면 죽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침례를 받지 않을 것이고 죽음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지도 않을 것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며 인간적인 동기에서 맹수와 싸웠다해도 부활이 없다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고 질문하는 내용이다.
원어에서 31절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말로 시작한다. 날마다 죽는다는 표현이 누가복음 9:23-24절에 나오는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일종의 과장법이라고 하기도 한다. 또 날마다 죽는다는 표현이 복음을 위해 반복적으로 겪는 고난 속에 순교를 미리 경험하는 것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죽는다는 표현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30절과 연결해서 실제로 외부적인 죽음의 위험이 끊임없이 존재했다는 뜻으로 설명한다. 과장법이라 하기도 하고 비유적 표현이라 하기도 하고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고 하기도 하지만 모두 공통적인 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실제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맹세한다고 말한다. 맹세한다는 표현은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창세기 42:15절과 16절과 이 구절에서만 나온다. 창세기에서는 바로의 생명을 걸고 맹세한다고 한 내용이다. 이처럼 맹세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두고 하는 법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경우 자기 목숨을 걸고 맹세한다는 표현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바울이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맹세한다는 표현은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이 가장 소중하다는 뜻이다. 그 자랑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갖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바로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고린도 성도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최고로 소중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32절은 "만약 내가 사람을 따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사람을 따라" 라는 표현은 인간적인 관점이나 인간적인 동기나 인간적인 한계 안에서 라는 뜻이다. 이는 부활의 능력이나 하나님의 능력 없이 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이어서 에베소에서 맹수와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고 말한다. 인간적인 동기로 맹수와 목숨을 걸고 싸웠다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는 뜻이다. 바울은 인간적인 동기가 아니라 부활의 능력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목숨을 걸고 복음 전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맹수와 싸웠다는 말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바울 당시 맹수와 싸우도록 던져지는 것은 로마시민이 아닌 사람들에게 형벌로 주어지던 것이기에 대부분 이를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해한다. 바울은 존귀한 로마시민 이었기에 맹수와 싸우도록 경기장에 던져지지 않는다. 만약 바울이 스스로 맹수와 싸웠다면 시민권을 박탈당했을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로마시민인 바울이 맹수와 싸우도록 던져지는 형벌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울의 이러한 반대 질문들에 대한 결론이 32절 끝부분에 나온다. “만일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이다.” 이 말은 이사야 22:13절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포위와 멸망 앞에서 회개 대신 쾌락을 선택한 예루살렘의 태도를 말한 것이다. 만약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내일이면 열성적인 유대교 신자들의 손에 죽을지도 모르니 오늘 실컷 먹고 마시기나 하는게 낫다라는 것이다. 내일이라는 말이 미래를 뜻하는 말이라면 어차피 죽으면 끝나는 인생 실컷 먹고 마시고 즐기다 죽는 것이 낫다는 뜻인 것이다. 부활이 없다면 삶은 허무주의로 떨어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