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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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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고린도전서 9:26-27

내 급소를 쳐서 주님께 복종시켜라

땅에 심긴 씨앗과 자라난 밀 · 고린도전서 15장

2026. 5. 19. · 안정섭 목사 · 고린도전서 9장 강해 설교

고린도전서 9:26-27 나는 목표없이 달리는 것처럼 하지도 않고 허공을 치는 것처럼 하지도 않고 정확히 자신의 눈 밑을 쳐서 복종시키는 이유는 남에게 복음 전하고 자신은 실격되어 상을 받지 못하게 되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는 경기장에서 달리는 사람들 중 한 사람만 상을 받기 때문에 상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처럼 절제하며 영원한 월계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달리기 비유와 복싱의 비유로 말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킨다는 내용이다.

26절은 24절과 25절에서 이수미안 게임의 장면을 가지고 다시 말한다. 그러므로 나 바울은 골인지점도 모르고 무조건 달리는 것처럼 하지 않고 또 복싱 경기를 할 때 주먹을 허공으로 날리면서 싸우는 것처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보면 고린도 교회의 강한자들은 목표지점을 모르고 달리고 있고 허공에 주먹을 날리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추구하지 않고 지식만 추구하며 거룩한 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시골학교 운동회때 1학년 아이들의 달리기와도 같다. 트랙을 따라 달려야 하는데 트랙을 가로질러 달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거꾸로 달리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은 학교가 처음이기에 경기 규칙을 모르고 그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린도 교회의 강한 자들도 자기들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줄 알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달리는 어린 아이들과도 같다.

27절의 “내 몸을 쳐” 라는 단어는 원래 문자적으로 눈 밑을 쳐서 눈을 시퍼렇게 멍들게 한다는 말이다. 바울은 자신의 눈 밑을 주먹으로 쳐서 시퍼렇게 멍들게 할 만큼 자기 자신의 급소를 쳐서 굴복시킨다는 것이다. 굴복시킨다는 말은 노예로 만든다는 뜻이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자기 자신의 이기심과 자기 생각의 급소를 쳐서 노예로 만든다는 뜻이다.

복싱 선수들에게 가장 약한 부분은 눈 밑이다. 이 단어는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딱 두 번만 나온다. 또 한 번은 누가복음 18:5절에서 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을 괴롭게 한다는 말에서 나왔다. 불의한 과부가 계속 찾아와서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하는 것이 재판관의 급소인 눈 밑을 계속해서 치고 있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다. 만약 권투선수가 자신의 주먹으로 상대의 눈 밑을 정통으로 맞출 수 있다면 일격에 승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의 몸의 눈 밑을 목표로 삼아 주먹을 날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바울 자신의 육체를 괴롭게 하는 금욕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달리기 선수나 복싱 선수의 그림언어로 말한 것은 실제 육체의 욕구를 억제하고 금식하고 금욕하며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앞에서 말한 사역자로서 삯을 받지 않고 고된 노동을 하면서 사역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자비량 사역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좋은 대우받고 인정받으며 편안한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복음 전하고 싶은 욕구가 계속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만약 바울이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계속 전하려고 애를 쓰지 않는다면 훨씬 더 존경을 받고 편안한 전도자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이 여기서 달리기 선수나 복싱선수로 자신을 비유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삼아 그분을 닮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올라오는 자신의 생각과 뜻을 쳐서 자기 생각을 바울이 주로 모시고 있는 주님의 영에 복종시켜 노예로 만든다는 뜻이다.

바울은 자신을 달리기 선수나 권투선수보다 더 자신을 더 혹독하게 연단시키는 이유를 이어서 설명한다. 남에게 복음을 전파해 놓고는 자신은 버림 받게 될까봐 염려하는 것이다. 버림을 받는다는 말은 자격 심사에서 탈락한다는 뜻이다. 올림픽이나 이수미안 게임 선수들이 경기에서 우승 해놓고 규칙을 어긴 것으로 판명이 되어 탈락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설교를 통해 복음을 전파해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해놓고 바울 자신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 편한 사람들만 사랑하고 그들에게만 복음을 전해서 자격 미달로 상을 받지 못하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약물반응 검사에서 양성으로 나와 메달을 받지 못하는 선수처럼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은 말로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급소를 자신이 주먹으로 쳐서 시퍼렇게 멍들게 할 만큼 고통스러운 훈련이지만 그렇게 해서 자기자신이 편한 사람들에게만 복음 전하는 것을 포기하고 주님 명령하신 대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 전해서 주님 앞에서 상을 받을 때 결격사유가 없게 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22절에서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도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 같은 그런 사람들만 만나려고 하고 나와 수준이나 환경이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려고 한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정하신 경기 규칙 위반이고 결격사유가 된다. 우리 주님은 세리와 창기 같은 죄인들은 물론 회당장이나 공회 회원 같은 유대교 지도자들과도 만나서 치료해 주고 복음 전하셨다.

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모든 사람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도 끊임없이 올라오는 우리 자신의 육신의 생각을 계속 쳐서 눈 밑이 시퍼렇게 멍들만큼 굴복시키고 대신 주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우리 옛 어른 들은 이렇게 자신을 쳐 복종케 한다는 표현을 “바늘로 손톱 밑을 찌른다” 라고 했다. 많은 교회에서 소그룹 모임도 편안한 사람들끼리 비슷한 사람들끼리 편성한다. 그렇게 하면 재미있고 편하고 쉽게 부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주님의 규칙 위반이다. 어떤 교회는 비슷한 사람들 끼리만 모인 교회도 있다. 그리고는 “우리 교회는 참 분위기 좋다. 은혜스럽다.” 라고 한다. 역시 규칙 위반이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상 받지 못한다. 이러한 교회 성도들은 열심히 달리기는 달렸는데 트랙 안으로 달렸거나 거꾸로 달리는 것과도 같다. 우리는 불편해도 참고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나아가야 한다. 그들과 함께 소그룹으로 모여 대화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품어야 한다.

바울은 강력한 영상언어를 통해 고린도 교회의 강한 자들인 상류층 지식인들에게도 연약한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고 신앙에서 떠나도록 하는 일이 없도록 자기 자신들이 누릴 것을 포기하라고 권고 하고 있는 것이다. 7장부터 시작된 혼인이나 우상에 바친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한 말씀이 이 부분에서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다. 자신의 누릴 자유라 하더라도 연약한 자들을 생각하여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연약한 자들 대적하는 자들을 품고 사랑하라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구원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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