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9:22-23 모든 종류의 사람이 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사람이 된 것은 그들 가운데 몇이라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며 복음을 위해 이 모든 일을 하고 있고 복음에 동참하는 동업자가 되기 위함이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자이지만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된 것은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함이고 그래서 율법아래에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율법이 있는 사람처럼 되었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 있으면서도 율법 없는 사람들에게는 율법 없는 사람처럼 되었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모든 종류의 사람을 다 얻기 위해 모든 종류의 사람이 된 것은 복음을 위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22절은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 결과 약한 사람들을 얻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20-21절에서는 "유대사람처럼,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처럼, 율법 없는 사람들처럼" 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여기서는 약한 사람들처럼 되었다고 하지 않고 약한 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반복을 피하기 위한 변화일 수도 있지만 복음과 바울의 사역의 특성을 묘사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는 약함이라는 말이 고린도전서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 주제이기에 … 처럼이라는 말을 안쓴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앞에서 말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과 똑같이 되었다고 하지 않고 그들에게 맞춰서 행동한 것이다. 하지만 약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실제로 약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일 수 있다.
약한 자들에 대한 해석은 전통적으로는 8장에 나오는 약한 형제들과 연결하여 양심적으로 연약해서 우상의 제물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실족해서 다시 우상숭배의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사람으로 본다. 새번역은 이러한 해석을 따르기에 원어에 없는 믿음이라는 말을 넣어서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약한 자는 우상의 제물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들이 아니라 후원자나 주인에게 매여있어 자기 주도적으로 행동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일 수 있다. 8장에 나온 우상의 제물에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들도 단순히 민감하게 과민반응하는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사회적인 약자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사회적 약자들은 글을 잘 모르고 우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어 여전히 우상의 영향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다. 고린도전서 전체에서 약자란 당시 사회 대다수를 차지하던 후원자들(patrons)에게 매여있던 사람들이나 노예 같은 사람들을 뜻한다.
이어서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앞에서 되었다는 말은 단순 과거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되었다는 말은 완료형이다. 이는 지금까지 말한 모든 종류의 사람들과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바울은 자신을 완전히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제 바울은 자기를 완전히 비우고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완벽하게 모든 종류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 하기 위함이라 했다. 모두가 다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3절은 원어에서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대부분 영어 번역들은 이 말을 생략했다. 모든 사람들을 얻기 위해 모든 사람들에게 맟춰준다는 것은 절대로 다른 사람들을 얻어 자기 사람들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나 내가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하고 있다" 라고 한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것이 복음 자체의 성격인 것이다.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은 모든 사람들에게 맞춰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목적은 새번역은 바울이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함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원어에는 복이라는 말은 없다. 원어는 단지 그 결과 그것의 동업자가 되려는 것이라는 말만 있다. 그것이란 복음을 가리킨다. 복음의 유익이나 복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동참한다는 말은 본래 상업적으로 동업을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복음에 동업자가 된다는 뜻이 본래의 의미이다. 그러나 이는 상업적 동업자보다 훨씬 더 유기적인 결합이다. 로마서 11:17절은 올리브 나무의 수액을 공급 받는다 했고 요한복음 15장에서는 포도나무의 비유로 말했다. 이처럼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복음 전하는 사역에 동참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