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4:8-12 이사야는 창조주이시고 아버지이심에 근거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하: 우리를 지으신 아버지
나: 이사야와 같은 마음으로 이웃을 위해 간구하자. 또한 이웃들에게는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전하자.
이전 말씀에서 주님은 주님께 매여 주님과 동행하길 원하는 사람을 만나주시지만 사람들은 모두 생리혈로 더럽혀진 옷처럼 부정하여 낙엽처럼 주님에게서 떨어져 버렸고 죄악에 이끌려 굴러 다니기에 그대로 내버려 두셨다고 했다. 이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존재하게 하셨다는 것을 근거로 호소하고 있다. 하나님의 지으신 백성이 이제는 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대로 망하게 둘 것인지에 대해 묻는 것이다.
8절은 두개의 구절을 나란히 비교하며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자신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자신들은 진흙이라고 한다. 이와 나란히 병행되는 구절은 하나님은 토기장이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피조물이라고 한다. 아버지 하나님은 본래 우리를 지으신 토기장이셨다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본래 아무것도 아닌 진흙이었는데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셔서 토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낳으신 아버지가 아니고 창조하셔서 자녀 삼아 주신 아버지이다.
9절은 이러한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 근거하여 간구한다. 그렇게 측정이 불가할 만큼 진노하지는 말아 달라는 것이다. 우리의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는 말아 달라는 것이다. 대신 “주님 보십시오” 라고 했다. 지금 자신들의 상태를 보고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이다. 사실 지은 죄로 따진다면 하나님의 엄청난 분노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면 모두 다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아버지이고 우리는 주님의 피조물인 주님의 백성이기에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이다. 이사야는 어떤 자격이 있어 구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근거해서 구해달라는 것이다.
10절부터는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자세히 말한 것이다.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이다. 먼저 “주님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습니다” 라고 말한다. 주님께서 거하시던 거룩한 성읍이 아무것도 없는 메마른 땅이 되었다는 것이다.
“시온은 광야가 되었고” 라는 말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시온 산이 완전히 파괴되고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은 황폐해졌습니다” 라는 말은 시온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들이 살던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었다는 것이다.
11절은 10절의 성전과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들이 살던 도시가 어떤 곳이었는지를 말하고 있다. 먼저 우리 조상들이 주님을 찬송하던 거룩하고 아름다운 집을 말하고 있다. 이 집은 시온 산에 있던 성전을 말한다. 그 아름다운 하나님의 집이 불에 타버렸다는 것이다. 또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던 곳”은 예루살렘 주민들이 살던 집들을 말한다. 집들은 완전히 파괴되어 폐허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성전은 불타서 광야가 되었다고 했기에 하나님의 집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주민들의 집은 폐허가 되었기에 무너진 채로 그대로 있는 것이다.
12절은 하나님께 모든 형편을 아뢴 뒤에 하나님께 두가지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형편이 이러한데도 주님께서는 그저 가만히 계십니까?”가만히 계신다는 말은 억누르고 참고 계신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자식을 불쌍히 여겨 울컥하고 올라오는 마음이 있지만 참고 계시느냐는 질문이다. 또 “그렇게 잠잠히 계서서” 라는 말은 이제 울컥하는 심정이 가라앉은 상태에서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계신다는 것이다. 주님의 자녀들이 이렇게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는데도 그렇게 가만히 계실 것인지 묻고 있다.
오늘 말씀에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함을 근거로 구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억울하게 당하고 있으니 구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창조하신 아버지라는 사실에 근거해서 구해 달라는 것이다. 자녀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어지는 65장을 보면 하나님은 응답할 준비를 하고 계시지만 아무도 하나님께 요청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사야가 아무리 간구해도 그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집을 나간 탕자와 같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 아들을 보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해 주신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팔을 벌리고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이사야 당시 이스라엘의 문제는 백성들에게 있던 것이지 하나님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도 하나님께 있지 않고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지만 구원은 결국 각자의 몫이다. 스스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