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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로마서 › 11:30-32

Dawn Word

로마서 11:30-32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자비

2025. 12. 6. · 안정섭 목사 · 로마서 11장 강해 설교

로마서 11:30-32 이방인 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은 것처럼 이스라엘도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입은 것을 보고 자비하심을 입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자신들의 힘으로는 절대 탈출할 수 없는 불순종이라는 감옥에 가두어 두신 것은 하나님의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복음 전파의 관점에서 보면 유대인들은 이방인에게 복음 전파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지만 택하심의 관점에서 보면 유대인들은 조상들과의 언약 때문에 사랑을 받는 자들이 된 것이고 이러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방인 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은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신비한 비밀의 첫번째 속성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은 후회가 없다 또는 철회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나오는 두번째 속성은 30-32에 여러차례 반복된 “자비하심”이다. 이 부분에서 여러차례 반복되며 대비가 되는 말은 불순종과 자비이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은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이와같이 앞으로 이스라엘도 구원하실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30절은 왜냐하면 …처럼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이 어째서 철회되지 않는가 하면 너희도 하나님께 불순종했었는데 그러나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 즉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된 것처럼 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이 불순종했기에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해진 것 처럼이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이 초대교회 유대인 성도들을 핍박했기 때문에 유대인 성도들이 핍박을 피해 이방지역으로 피난을 갔다가 복음이 전해지게 된 것이다. 이것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포함된 것이다. 유대인들의 불순종이 이방인 전도의 기회가 되어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된 것이다.

31절은 이와 같이 또한 이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원어를 보면 30절과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너희가 그들로 바뀌고 전에 라는 말이 지금으로 바뀐 것이 다르다. 원어를 보면 너희가 받은 자비라는 말이 중간에 있는데 이 말이 앞에 있는 “그들도 지금 불순종하고 있다”는 절을 설명하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고 또한 뒤에 나오는 그들도 이제 자비를 받고 있다는 말을 설명할 수도 있다.

만약 너희들이 받은 자비라는 말이 앞에 나온 말을 설명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너희 이방인들이 받은 자비를 보고 유대인들이 지금 불순종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Good News Bible은 이방인들이 받은 자비 때문이 지금 이스라엘이 불순종하고 있다는 의미로 번역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UBS 원어성경도 쉼표를 너희들이 받은 자비라는 말 다음에 찍어 GNB처럼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받은 자비라는 내용이 유대인들의 불순종을 설명하는 말로 보는 것이 원어의 어순의 흐름상 앞 절을 꾸미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만약 너희들이 받은 자비라는 말이 뒤에 나오는 말을 설명한다면 너희들이 받은 자비 때문에 그들 즉 이스라엘이 긍휼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뜻이 된다. 개역이나 새번역을 비롯하여 NASB나 NIV를 비롯한 대다수의 영어 번역들이 뒤에 나오는 구절을 수식한다고 번역한다. 다수의 주석가들도 뒤에 나오는 구절을 수식한다고 해석한다. 전에 불순종하던 너희들 이방인 신자들은 이스라엘의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들 즉 이스라엘도 지금은 불순종하고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보여주신 자비를 보고 회개하여 그들도 자비하심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개역은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번역했고 새번역은 마침내는 자비하심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미래형으로 번역했다. 하지만 원어는 가정법이기에 그들이 구원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 부분에서 서로 다르게 기록된 사본들이 존재한다. Codex Sinaiticus나 Codex Vaticanus는 영어의 “now”에 해당하는 단어를 포함한다. 하지만 P46이나 Codex Alexandrinus는 “now”에 해당하는 단어를 삭제했다. 이 네개의 사본들은 모두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사본들이다. 이처럼 오래된 사본들의 증거가 이처럼 엇갈리기에 어느 쪽이 맞은지 사본의 증거로는 판별할 수 없다. 그래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원어성경도 결정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C]로 분류하고 대괄호 안에 표기했다.

이런 경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원문으로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사본들이 기록되던 시기는 2-5세기이다. 바울은 지금 그들이 자비를 입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바울 당시 뿐 아니라 이러한 시본들이 기록되던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믿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라는 단어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서 삭제했을 것이다. 12-13세기 소문자 사본인 1573 사본은 “나중에” 라는 단어를 삽입한 것도 유대인들이 믿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삽입한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분명히 이제는 유대인들이 자비를 입을지도 모른다고 기록했지만 후대에 이 말을 삭제한 것이다.

32절은 지금까지 내용의 요약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과 온세상의 종말론적 화해를 담고 있다. 성경은 수많은 그림언어로 되어 있다. 여기에 나타난 그림은 절대 탈출할 수 없는 감옥이다. 그 감옥의 이름은 불순종이다. 인간들은 모두 죄인이기에 자신들의 힘으로는 절대로 불순종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셔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들에게 자비를 베푼다고 했는데 원어에서는 모두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뜻이다. 모두란 유대인과 이방인을 다 포함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 먼저 자비를 보여주셨다. 종말에 가서는 이스라엘에게 자비를 보여주실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노력해서가 아니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자비 때문이다. 자비가 자비일 수 있는 경우는 스스로 그 불순종이란 감옥을 탈출할 수 없을 때이다. 만약 스스로의 노력으로 탈출한다면 그 탈출은 하나님의 자비가 아니다. 또 자격이 있어 석방된다면 그 석방 역시 자비가 아니다.

한 어머니가 나폴레옹을 찾아와 감옥에 갇힌 자기 아들을 석방시켜달라고 간청을 했다. 그러나 나폴레옹 황제는 “당신 아들은 죽을 죄를 두번이나 지었기 때문에 법에 따르면 사형에 처할 수 밖에 없다”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정의를 구한 것이 아니라 긍휼을 구한 것이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당신의 아들은 그런 긍휼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어머니는 물론 그럴 자격 없음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긍휼을 베풀어달라는 것이 아닙니까? 긍휼을 받을 자격이 있으면 긍휼이 아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감동이 되어 나폴레옹은 그 여인의 아들을 석방시켜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자격없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것이 바로 자비이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스스로 탈출하려고 별의별 노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했기에 절대로 그 감옥을 탈출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석방시켜주셔야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비로 죄에서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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