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7 바울은 로마에 돌아와 율법을 강조하던 유대인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거룩한 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며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헤와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이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은 것은 율법이 아닌 믿음에 순종하게 하는 것이라며 로마교회의 유대인 신자들도 바울과 같은 직분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그렇게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내용이다.
이제 바울은 7절에서 편지를 받는 자들에 대한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7절에서 강조하는 두가지 축복은 은혜와 평화이다. 이는 모든 바울 서신의 서두에서 다 강조 단어들이다. 먼저 편지의 수신자들이 누구인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7절은 원래 완전한 문장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번역에서 말이 되도록 다듬어 놓아 원문의 뜻을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말이 안되더라도 그리스어 원문과 똑같이 문자적으로 직역한 Young Literal Translation을 함께 보도록 하겠다.
로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받은, 거룩한 사람들로 부르심을 받은 은혜가 너희에게 있기를, 평화가 있기를, 우리아버지하나님과 우리주예수그리스도로부터오는 to all who are in Rome, beloved of God, called saints; Grace to you, and peace from God our Father, and from the Lord Jesus Christ!
한글 성경을 보면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말인 것 같지만 모든 사람이란 말 다음에 두가지 제한하는 말이 붙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이고 다른 하나는 "거룩한 사람들로 부르심을 받은" 이다. 따라서 모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거룩한 사람들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원래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사랑하시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 같은 족장들을 가리키던 말로 다분히 유대적인 색채를 띤 말이다. 로마서11:28절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조상덕분에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이와 비교해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자이기에 아무도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라고 8:35절에서 말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한다면 모든 신자들이겠지만 하나님의 사랑받은 자들이란 분명히 유대인 신자들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들이란 말을 일차적으로 유대인 신자들에게 한 말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들이란 6절에서 이방인 구원을 위해 부름 받은 유대인 신자들과 연결시켜 생각해야 하는 말이다.
두번째로 거룩한 사람들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원래는 모든 신자가 될 수 없다. 이러한 표현은 예수님 당시 본래 쿰란 동굴에서 수도생활하던 에세네파 사람들이 자신들을 일컬은 말이다. 절대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일컬은 말이 아닙니다. 에세네파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특별히 이스라엘 가운데서 부름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이 말은 하나님을 위해 특별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다. 복음이 전파되던 초기에는 유대인 신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의 지도자들이 되었기에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라는 말과 “거룩한 자로 부름을 받은”이라는 말은 5절에서 바울 일행이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는 말과 짝을 이룬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구원을 받은 은혜를 여기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라고 다정하게 부른 것이다. 또 바울은 사도로 부름을 받았는데 6절에서는 너희도 그들 중에서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7절에서는 너희도 거룩한 자로 부름을 받았다고 한 것이다.
다수는 사랑받은 자들과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 둘 다 바울이 모든 로마 교회 신자들에게 적용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은 1:1절에서 바울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할 때 썼고 6절에서는 너희도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기에 모든 로마 교회 신자들이 아니다. 모든 로마교회 신자들이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석하는 것은 로마서의 기록목적을 잊고 해석하는 것이다.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라는 말은 모든 로마교회의 신자들이라기 보다는 로마교회로 돌아와서 율법을 강조하여 가르치던 돌아온 유대인 신자들을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배경에서 유대인 신자들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거룩한 사람들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추켜세우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를 받을 당시 로마교회는 이방인들이 주도하고 있었고 유대인 신자들은 로마교회에서 차별을 받았을 것이다. 소수이지만 저들을 바로잡지 않으면 복음을 통째로 말살시킬 영향력있는 사람들이기에 저들을 높여주면서 부탁하는 것이다.
만약 이 편지가 모든 이방인 성도들에게도 읽혀졌다면 저들에게는 유대인 신자들을 무시하지 말고 특별히 존중해주라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받고 거룩한 무리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이는 본래 로마 교회에 있는 유대인 신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들에게 두가지 축복을 말하고 있다. 먼저 유대인 신자들에게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유대인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보다도 율법을 더 중하게 여기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이제는 율법이 먼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가 먼저라는 것이다. 이 은혜는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이다.
두번째 축복인 평화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평화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그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은혜를 먼저 받아야 하고 그 다음에야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에게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를 맺게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주목할 것은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가 동격으로 놓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영광 받으신 예수께서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고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평화의 관계를 맺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누가 바울과 같은 종과 사도가 될 수 있는가? 오늘날 대부분의 성경해석자들은 로마서가 오늘날 모든 신자들에게 준 것으로 보고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서를 보낼 당시 성도들은 복음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구약성경을 잘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인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종과 사도의 역할을 부탁한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믿기 시작한 사람이 복음 전하는 종과 사도역할을 할 수는 없다.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 말씀을 잘 아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종과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사도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우리 모두가 다 결국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가 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명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먼저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 하시는 말씀에 깊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은혜를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종과 사도가 될 수 없다.
물론 이제 이 로마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은혜 받은 성도면 누구가 마음 깊이 공감하는 편지이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것도 바로 로마서를 읽고 바울과 함께 마음 깊이 공감하고 큰 감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하지만 처음 바울이 이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과 그 주된 대상이 누구인지 놓친다면 로마서 11:12절까지 바울이 계속해서 유대인 지도자들과 논쟁을 하고 있다는 점을 놓치게 된다.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것인가? 종에게는 자기의 뜻이란 없다. 오직 주인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존재이다. 주일 잘 지키고 헌금 많이 하는 등 표면적인 것만 잘 지키려고 노력한다면 아직도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율법의 종이다. 아직은 부족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하나님 말씀의 참된 뜻을 마음에 담고 순종할 의지를 가져야만 그리스도의 종인 것이다. 우리는 또한 온 세상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도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