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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사도행전 › 28:20-22

Dawn Word

사도행전 28:20-22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바울

바람을 받아 바다를 건너는 배 · 사도행전 2장 · 27장

2025. 7. 15.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28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28:20-22 바울은 자신이 이스라엘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에 대한 소망 때문에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고소를 당해 죄수의 신분으로 매여있다고 하자 로마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며 비판적인 태도로 바울의 말을 듣고자 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로마에 도착하여 감옥에 갇히지 않고 보호관찰 상태로 있게 되면서 도착한지 사흘만에 유대인들 중 가장 높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자신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관습에 거슬려 죄를 지은 적이 없는데도 고소를 당했다며 로마의 통치자들은 자신을 석방하려 했지만 유대사람들이 반대했기에 황제에게 상소한 것이고 자신은 유대인들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이 메시야에 대한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에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고소를 당해 매여있다고 하자 로마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며 바울의 말을 들어보자고 하는 내용이다.

20절은 이런 이유 때문에 너희를 초청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란 19절에서 바울이 설명한 자신이 로마로 잡혀오게 된 이유일 수도 있고 20절에서 말하는 메시야에 대한 소망 때문이라는 뜻일 수 있다. 어떤 이는 메시야에 대한 소망이 아니라 19절에서 말한 바울 자신이 잡혀온 이유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다수는 이런 이유란 메시야에 대한 소망 때문이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얼굴을 보고 대면하여 함께 이야기 하려고 초청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이렇게 줄로 감겨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소망이란 메시야에 대한 소망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으면서 다윗과 같은 왕이 와서 자신들을 구원시켜 주고 다윗시대같은 강력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줄 것을 기다렸다. 바울은 그 소망 때문에 자신이 죄수가 되었다며 로마의 유대인 지도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 들인다. 메시야에 대한 소망 때문에 고소를 당했다는 말은 24:14-16절에서 벨릭스 앞에서도 했고 26:6-8에서 아그립바 앞에서도 했다.

21-22절은 이러한 바울의 말에 대한 로마의 유대교 지도자들의 답변이다. 21절에서 그들이 바울에게 말한 것은 세가지가 단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첫째 우리는 유대로부터 편지를 받은 일도 없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공회가 공식적으로 기록해서 보낸 편지를 받은 일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어떤 형제들이 와서 전한 것도 없다는 것이다. 전한다는 말은 편지 보다는 비공식적이지만 공회가 보내서 바울에 대해 좋지 못한 일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일도 없다는 것이다. 셋째 그러한 일을 말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말한다는 말은 사적으로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받은 것은 점점 작아지지만 받은 적이 없다고 했기에 아무것도 안 받았다고 강조하는 것은 점점 커져만 가는 것이다. 공회는 이미 보냈지만 겨울이라 아직 도착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바울은 로마정부의 공적인 항해였기에 그렇게 무리해서 갔지만 사적인 여행의 경우는 겨울철에 그렇게 일찍 갈 수 없었던 것이다.

22절은 너의 생각이 어떤지 들으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21절보다 더 약화되어 이제 바울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일반적으로 어디서나 반대를 받는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다. 여기서 파 라는 말은 바리새파 사두개파와 같은 유대교 종파를 뜻하는 말이다. 기독교인들도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처럼 유대교의 한 종파로 취급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바울에 관해 어떤 공식적인 연락이나 비공식적인 연락도 받지 못했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 관한 부정적인 소문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듣기는 하겠지만 이미 마음을 닫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팔짱을 끼고 앉아서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태도이다. 바울은 그렇게 이미 복음에 부정적 태도로 들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 전하는 대상들도 모두 다 그런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해야 한다. 그 중 한 사람이라도 듣고 깨달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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