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6:12-15 바울은 대제사장의 권한을 위임받아 다마스커스로 가는 중에 정오의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바울과 함께 가던 일행들을 비추었기에 모두가 엎드렸다. 바울은 누구냐고 묻자 그 음성은 "나는 스스로 있는자, 예수 네가 핍박하는자" 라고 바울에게 대답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예수를 믿는 거룩한 자들을 핍박하는 일의 강도를 점점 더해가며 날뛰다가 나중에는 외국의 도시들까지 가서 핍박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대제사장의 모든 권한을 위임 받아 다메섹으로 갈 때에 예수님을 만난 내용이다.
12절은 외국의 여러 도시들 중의 한 예를 든 것이다. 바울은 대제사장의 권한과 위임을 가지고 다마스커스까지 가고 있었을 때였다. 권한과 위임은 하나의 관사로 묶여져 있기에 모두 다 대제사장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원어에서 위임이라는 말은 본래 하지나 동지와 같이 태양의 위치가 중요한 변화의 위치에 있는 것을 뜻하는 말에 그 표면 위에 라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이는 중요한 논쟁거리가 있을 때 그들 위에 서서 그것을 중재하는 권한을 받은 것을 뜻한다. 그러한 결정권은 대제사장에게 있기에 대제사장의 권한과 위임을 받아 다마스커스에 가서도 대제사장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바울이 얼마나 미쳤었는지 다마스커스까지 성도들을 잡으러 갔다는 것이다. 당시 대제사장의 권한과 위임이 외국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의 회당에서는 대제사장의 편지를 들고 가면 모두가 그 말을 따랐던 것이다. 당시 지중해 연안을 지배하던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의 종교에 관한 문제는 간섭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 자신이 최고로 미쳐 발광하던 모습을 말한 뒤 13절은 "한 낮에 길을 가다가 보았습니다, 왕이시여" 라고 다시 차분하게 말한다. 아그립바를 왕이라고 다시 부른 것은 아주 중요한 내용이니 자신의 말에 집중을 하게 하려는 것이다. 정오는 해가 가장 밝은 때이다. 그런데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일행들을 둘러 비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정오의 해보다 더 밝은 빛은 없다. 이러한 빛은 유대인들의 언어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경우에 쓰인다. 이러한 빛은 신적 존재가 된 부활하신 주님이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을 알리는 것이다.
이 빛은 바울과 동행한 사람들까지 모두 둥그렇게 둘러 비추고 있었다고 했기에 이는 바울 혼자서 본 내적 환상이 아니고 모두가 다 함께 경험한 실제 사건이다.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을 경험한 것이다. 14절은 우리는 모두 땅에 엎어졌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렇게 밝은 빛은 하나님의 임재라는 것을 유대인들은 모두 알기에 함께 가던 일행 모두 엎드렸다는 것이다. 함께 가던 유대인들도 모두 함께 엎드렸다고 했기에 미친 바울이 헛것을 본 것이 아니라 실제 사건이라는 뜻이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모두가 엎드린 것이다.
그러나 14절 뒷부분은 히브리말로 나에게 "사울아 사울아 너는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는냐?" 라고 말했다. 나에게 라는 말은 바울에게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 엎드러졌는데 그 들려온 음성은 바울만 듣고 이해하고 바울하고만 대화를 했다는 뜻이다.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는 고생이라는 말에서 가시채란 동물들을 일정한 방향으로 보내도록 찌르는 막대기이다. 소 떼를 몰고 가는데 그 중 한 마리가 길을 벗어나자 목동이 끝이 뾰족한 나무로 소를 찌른다. 그런데 소가 그 뾰족한 장대를 뒷발로 차다보니 그 뾰족한 끝에 다리를 찔려버리게 되는 그림이다.
15절에서 바울은 누구시냐고 묻자 주님께서 바울에게 대답하신 것은 "나는 스스로 있는자 예수, 네가 핍박하는 자" 라는 말이다. 원어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표현은 출애굽기 3:6절에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라고 한 뒤에 원어에서 바로 이어지는 말은 "예수! 네가 핍박하는" 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신데 바울이 하나님을 핍박하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