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7:25-27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한 사람으로부터 지으시고 온 땅에 흩어져 살게 하시고 역사와 나라들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사람들이 찾으려 한다면 더듬어 찾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분이라고 선포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은 아레오바고 의회 한 가운데 서서 바울이 둘러본 결과 아테네 사람들은 신들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면서도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신은 사람 손으로 만든 신전에 계시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 분은 모든 인류 족속을 만드시고 역사의 흥망성쇠와 거주할 경계도 정해주셨기에 더음어 찾으면 만날 수 있다고 바울은 말한다.
25절은 또한 그분은 무슨 부족한 것이 있어서 사람 손으로부터 뭔가 섬김을 받지도 않는 분이라는 것이다. 원어에서 사람 손으로부터 섬김을 받는다는 말은 사람 손으로부터 치료를 받는다는 뜻이다. 사람 손으로 만든 우상들은 오래되어 망가진 부분이 있으면 때우고 채워넣고 새로 만들어 넣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분은 모든 이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과 아테네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우상들을 비교하는 것이다.
원어에서 26절은 하나로부터 모든 인류의 족속들을 만드셨다고 말한다. 만드셨다는 말은 24절에서 온 우주만물을 만드셨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온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 모든 인류를 하나로부터 만드셨다는 것이다. KJV와 한글 번역들은 한 혈통으로 번역했지만 ESV나 NIV나 NLT는 한 사람으로 번역했다.
이는 5세기 사본 기록자가 하나라는 말에 피라는 말을 추가해 놓았기 때문이다. 5-9세기 대문자 사본들과 다수의 후기 소문자 사본들과 라틴어 공인본문도 이를 따라 피라는 말이 추가되어 있다. 그러나 4-5세기의 중요한 사본 세개에는 모두 피라는 말이 없다. 사본상의 외적 증거는 분명히 피라는 단어가 빠진 것이 원본임을 증명한다. 후대의 필사자가 하나라는 말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기에 한 혈통이라는 뜻으로 피라는 단어를 추가한 것이다.
문맥으로 보아도 바울은 창세기의 내용을 아테네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바꾸어 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에 아담 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원문의 본래 의미는 하나님께서 한 혈통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만드셨다는 뜻이다. 아테네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기에 아담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한 사람으로부터 모든 족속을 만드셔서 온 땅의 표면에 살게 하셨다고 한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그리스어를 안쓰는 사람들은 자신들과는 혈통 자체가 다른 야만인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바울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지으신 한 사람으로부터 왔다고 증거한 것이다.
원어를 보면 또한 그분은 시기와 경계를 정하셨다고 했다. 시기라는 말은 두가지로 해석한다. 어떤 이는 시기라는 말을 계절로 해석한다. 이를 자연계시의 생각이 깔려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역시 계절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는 계절이 아닌 역사의 시대를 정해 주셨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역사속의 흥망성쇠의 모든 시대들을 하나님께서 정해주셨다는 뜻이다. 또 거주할 지역의 경계란 나라 간의 영토의 한계을 명령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역사와 모든 나라들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27절에서 하나님을 찾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원어에서 27절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 아마도 만약 사람이 느끼고 발견한다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느낀다는 말은 손으로 만져서 느끼는 것을 뜻한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역사와 나라들을 주관하시는 분을 느끼고 발견한다면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신명기 28:29절에서 "맹인이 어두운 데에서 더듬는 것과 같이" 라는 말에서 더듬는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는 빛이 없는 어두운 곳에서 더듬거리며 무엇인가를 찾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는 복음 없이도 하나님을 발견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불확실성을 나타내는 말이기에 하나님 말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자연 만물과 역사를 보면서 더듬거리고 찾으려 한다면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 만물과 역사를 보면 하나님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진리의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분명히 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