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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사도행전 › 17:16-18

Dawn Word

사도행전 17:16-18

분노를 자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 바울

바람을 받아 바다를 건너는 배 · 사도행전 2장 · 27장

2025. 3. 18.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17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17:16-18 바울은 아테네에 가득한 우상들을 보고 분노했지만 자제하고 회당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들과 토론하고 광장에서는 그리스 철학자들과 토론을 통해 예수와 부활을 전했지만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전 말씀에서 베뢰아 형제들은 바울을 바닷가로 보냈고 실라와 디모데는 그곳에 남아있었다. 형제들은 바울을 아테네까지 안내했고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갔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울이 아테네에 가서 유대인 회당에서도 토론하고 광장에서 그리스 철학자들과 토론을 벌이는 장면이다.

16은 바울이 아테네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격분했다는 것이다. 격분했다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옆에서 날카로운 물체에 찔렸다는 뜻이다. 그러면 얼마나 화가나겠는가? 이 말은 구약에서는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분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낼 때 쓴 말이다. 바울도 아테네에서 기다리는 동안 그렇게 분노했다는 것이다. 왜? 온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 찬 것을 둘러보고 나서 그렇게 격분한 것이다.

원어에서 우상으로 가득 찼다는 말은 우상들 아래에 있다는 뜻이다. 이는 큰 나무들 같은 우상들에 도시 전체가 가려져 있다는 뜻이다. 이는 빽빽한 우상들의 숲이라는 뜻이다. 마치 빽빽한 수풀 아래에 햇빛도 받지 못하고 숨이 막혀 죽어가는 작은 풀들과도 같은 그림이다. 당시 아테네에 있던 풍자시 작가들도 아테네에서 사람을 발견하는 것보다 신을 발견하기가 더 쉽다고 한 말도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전도하기 전에 먼저 아테네를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우리도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전도하려면 먼저 그들의 종교를 연구해야 한다. 종교를 갖지 않은 무신론자들을 전도하려면 그들이 믿는 것들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종교에서 윤리적으로 아주 본받을만한 훌륭한 내용들이 있다해도 경계해야 한다.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생각에 빠져 복음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아테네를 자세히 관찰하고 연구한 뒤 이렇게 격분했는데도 17절을 보면 바울은 자제와 존중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바울의 행동은 구약의 선지자들과는 많이 다르다. 선지자들이 전하는 대상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우상숭배를 했을 때는 분노를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분노를 터트린 것이다. 그러나 아테네 사람들과 같은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분노를 표현하지 않고 토론하며 말씀을 전달한 것이다.

바울은 다양한 사람들과 토론을 했다. 먼저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유대교를 믿던 이방인들과 토론을 했다.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는 회당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 한 군데를 방문한 것인데 아테네에는 회당이 하나 뿐이었다 한다. 토론 했다는 말에 대해 사도행전의 다른 부분에 나타난 것처럼(4:29, 31; 8:25; 11:19; 13:46)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 전하던 것을 가리키는 전문용어였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때는 데살로니가나 베레아의 회당에서 토론한 방식과 같이 토론을 했을 것이다. 또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날마다 토론을 했다. 이들과는 소크라테스의 방식으로 토론을 했을 것이다.

18절에서는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스토아 철학자들이 바울과 논쟁했다고 했다.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은 말하기를 신들은 인간들에게 관심도 없고 영향력도 끼칠 수 없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이나 두려움 질병등과 멀리 떨어져 있는 평온한 삶의 향락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다. 이들과는 달리 스토아 철학자들은 최고의 신을 인정했지만 수많은 신들을 믿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쾌락의 향유보다는 정해진 숙명에 따라 복종과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다.

이들 철학자들 중에 일부는 이 말쟁이가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인가? 하고 조롱하듯 말했다. 말쟁이라는 말은 씨앗을 쪼아먹는 새를 뜻하는 말이다. 이는 독창적인 생각없이 지식의 부스러기들을 주워모아서 아는 체 하던 지식 사기꾼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자신들과 전혀 다른 내용을 가지고 토론하기에 그렇게 조롱하듯 말한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생각하기를 외국의 시시한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했기 때문이다. 원어에서 예수는 남성명사이고 부활이라는 말은 아나스타신인데 여성명사이다. 그렇기 때문 크리소스톰이라는 교부는 이 철학자들은 바울이 남자신인 예수와 여자신인 아나스타시아를 전한다고 오해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울은 성경을 알지 못하는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청중들의 상황에 맞도록 십자가라는 말을 빼고 전한 것이다. 그런데 청중들은 부활이라는 말을 여신의 이름으로 오해를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성경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들은 바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한 것은 19절을 보아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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