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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사도행전 › 16:35-37

Dawn Word

사도행전 16:35-37

남겨진 교인들을 위해 부당한 벌을 받은 것을 주장한 두 사도들

바람을 받아 바다를 건너는 배 · 사도행전 2장 · 27장

2025. 3. 11.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16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16:35-37 날이 밝은 뒤 집정관들이 두 사도를 놓아주라고 하자 바울 일행은 로마시민인 자신들을 합당한 재판절차없이 때리고 가두었다며 집정관들이 직접 와서 석방시키라고 주장했다.

이전 말씀에서 간수는 두 사도에게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묻자 두 사도는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며 간수와 그 집안 사람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고 침례를 주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날이 샌 뒤 치안관들이 두 사람을 놓아주라고 하자 바울은 로마시민인 자신들을 유죄판결을 내리지도 않고 때리고 가두었다며 치안관들이 직접 와서 석방하라고 하는 내용이다.

35-40절은 귀신을 쫓아낸 일에 대한 집정관들의 다음날 반응이다. 35절은 다음날 아침 집정관들이 두 사람을 놓아 주라고 부하들을 보냈다. 부하들이라는 말은 몽둥이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경찰이라는 뜻이다. 집정관들이 갑자기 두 사람을 놓아주라고 한 이유를 세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지진이 지진이 신들로부터 온 사인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둘째 부유한 루디아의 부탁 때문이라는 것이다. 셋째 공적으로 수치를 준 것이 충분한 벌이 되었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석방의 이유는 두가지를 두고 팽팽하게 갈린다. 다수는 첫번째 이유인 지진으로 인해 신의 보복이 두려워서 석방한 것으로 해석한다. 또 다른 다수는 사소한 죄였고 이미 충분히 벌을 준데다가 상급 기관에 알려서 재판을 받게 할 만한 범죄도 아니었기에 석방해 주었다고 말한다. 양쪽 모두 비슷하게 갈리는데다가 양쪽 모두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는 문맥의 흐름을 봐야 한다. 이 부분의 문맥의 흐름을 보면 이 집정관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사람들이 앞에서 그 지역 유지인 노예주인의 고소를 듣고 재판도 없이 벌을 준 사람이다. 또 뒤에 보면 로마시민이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따라서 집정관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분명하기에 신의 보복을 두려워했다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은혜와 감동이 되는 해석보다 본문의 문맥에 따른 해석이 우선이다. 지진 자체가 두려움이 아니다. 지진은 당시 그 지역에서 흔히 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간수의 두려움은 지진 때문이 아니라 바울과 신라의 기도와 찬송 소리로 인해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 때문이었다. 집정관들은 그러한 찬송 소리를 직접 듣지 못했기에 간수처럼 두려움을 직접 경험할 수 없었다.

36절에서 간수는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바울에게 전해 주었을 것이다. 집정관들이 당신들을 놓아 주라고 했으니 평안히 가도 된다고 전한 것이다. 평안히 가라는 말은 간수가 받은 명령이 아니라 두 사도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덧붙인 말이다. 이 말은 간수가 축복을 한 것이다. 간수가 성경 언어를 말한 것이고 새로 얻은 종교적 정체성을 정교하게 가리킨다고 말하기도 한다. 평화 가운데 라는 말은 유대인들의 인사였기에 바울 일행에게서 배운 것이 분명하다.

37절에서 바울은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한다. 대조되는 말은 공개적으로 때리고는 비밀리에 석방시키려 한다는 말이다. 로마시민인 자신들을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무리들 앞에서 옷을 찢고 공개적으로 매질을 해서 수치를 당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와서 슬그머니 아무도 모르게 나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당시 로마시민은 집정관이나 다른 어떤 사람에 의해서도 재판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매를 맞거나 구속되어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행전 25:12절에서 바울이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했을 때 황제에게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말 이상한 것은 어째서 옷이 다 찢겨진 채 피투성이가 되도록 매를 맞고서 이제 와서 로마시민이라고 집정관들의 죄를 문제 삼는 것일까?

바울이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먼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두었고 그 다음은 유대교의 유산에 두었고 마지막으로 그레코 로만 유산인 로마 시민권에 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는 것은 감사함으로 받은 것이다. 만약 그러한 핍박을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서 피한다면 비겁한 것이고 세상과 타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제자의 길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아무 말없이 떠난다면 그곳 사람들에게 자신들은 죄인으로 그대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불명예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복음 전하는 자들에게도 동일한 대우를 하게 되는 위험한 선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또 바울이 남겨놓고 떠날 교회의 성도들의 자유를 위해서 자신들의 무죄를 증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여종의 주인들이 고소한 죄목으로 그곳에 남겨진 성도들도 매를 맞고 옥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대로 그냥 갈 수 없다며 집정관들이 직접 와서 자신들을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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