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17-21 베드로는 자신이 지키던 정결법과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가라고 하신 명령 사이에서 크게 당황하며 고민하던 중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했고 성령께서 의심하지 말고 가라고 하셔서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그 사람들을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이전 말씀에서 베드로는 기도하는 시간에 옥상에 올라가 기도하던 중에 환상을 보았는데 각종 동물들과 새들이 들어있는 큰 보자기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것들을 잡아먹으라 했을 때 베드로는 부정하거나 속된 것을 먹은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정결하게 하신 것을 부정하다 할 수 없다며 잡아먹으라는 말을 세번이나 반복해서 확증해 주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불편하게 생각하던 것을 내려놓고 순종하여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서로가 만나는 장면이다.
17절은 원어에서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환상과 음성을 세번이나 들려주어 확증해 주셨으나 라는 뜻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직도 자기가 본 환상이 대체 무슨 뜻일까 하고 속으로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어리둥절하고 있다는 말은 철저히 라는 말과 당황한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계속해서 쉬지 않고 대단히 당황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사도행전 2:12절에서 제자들이 각 나라의 말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듣고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고 할 때도 쓰였다. 또 5:24절에서는 베드로가 감옥에서 사라진 일을 두고 놀라 당황하였다고 할 때도 쓰였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 어쩔줄 몰라하며 최고로 당황하고 있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세번이나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며 확증해 주셨는데도 아직도 베드로는 아직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계속해서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 환상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철저히 유대교의 율법 안에서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구별하는 삶을 평생 살아온 베드로이기에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용납이 안된 것이다. 속되고 부정한 것이 거룩한 것들과 함께 섞인다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마침" 이라는 말은 원어에서 "보라!" 라는 뜻이다.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으니 보라는 것이다. 환상 중에 말씀하신 것이 무슨 뜻일까 고민하고 있는데 "보라!" 성령께서 사람들을 보내셨는데 그 사람들이 도착했다는 것이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서 문 앞에 다가섰다고 했다. 찾았다는 말은 집집마다 다니며 물어 보았다는 뜻이다. 오늘날처럼 GPS가 있던 시절이 아니기에 집집마다 물어 물어 찾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드디어 집을 찾아서 문 앞에 서 있다.
원어에서 문이라는 말은 일반적인 집의 문이 아니라 왕궁이나 성전이나 귀족들의 대저택 입구에 방이 있는 문을 뜻하는 말이다. 그 문을 들어서면 넓은 안마당이 있는 대저택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누가가 이 단어를 잘못 쓴 것으로 보고 일반적인 서민 주택의 문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반대로 원어 그대로 큰 건물로 된 대저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영어의 NLT도 대저택으로 보고 번역했다. 우리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이 일반적인 서민의 주택이었는지 아니면 대저택이었는지 알 수 없다. 유대인들은 부정하게 여겼지만 그렇다고 그가 큰 부자가 아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생각이 누가와 누가가 만난 증인들의 증언을 앞설 수는 없다.
18절에서 그들은 베드로라는 시몬이 여기에 손님으로 묵고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고 했다. 19절은 또다시 "그러나" 라는 말로 연결이 된다. 이렇게 사람들이 묻고 있었지만 베드로는 이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몬의 집이 대저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문 밖에 서서 문을 쾅쾅 두들기며 큰 소리로 소리를 치고 있는데도 대문과 집 사이의 거리가 멀기에 베드로는 듣지 못하고 환생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 수 있다.
베드로는 여전히 그 환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중이다. 물론 본문의 문맥으로 보면 집이 커서 못들은 것이 아니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기에 못들은 것일 수도 있다. 곰곰이 생각한다는 말은 마음 가운데 던져두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생각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것은 분명한데도 하나님 뜻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계속해서 여러가지로 생각하며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보라!" 라고 말씀하셨다. 10:3절에서는 "하나님의 천사" 라고 했고 10:13-15절에서는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이라고 했다. 그런데 19절에서는 분명하게 "그 영" 이라고 했다. 모두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가리킨 말이다. 고넬료나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분은 모두 하나님이신 것이다. 17절에서 베드로가 고민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보내신 사람들이 나타났다. 베드로가 19절에서도 계속 고민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너를 찾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모두 성령께서 주도하셔서 보내시고 또한 알려주신 것이다.
20절은 앞에서 계속 나온 "그러나" 보다 훨씬 강한 반대를 나타내는 말로 시작한다. 성령께서는 베드로가 아직도 이방인과 섞이는 것을 반대하고 있을 것을 알고 계셨다는 뜻이다. 성령께서는 베드로가 고민하는 것 다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생각을 내려놓고 일어나서 내려가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아직도 시몬의 집 옥상에 있었기에 내려가라고 한 것이다. 내려가서 그들과 함께 가라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보낸 사람들이니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거라" 라고 했다. 의심하지 말라는 말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는 판단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고린도전서 10:25절에서 시장에서 파는 것은 묻지 말고 먹으라는 말이 나온다. 묻지 말라는 말과 이 말씀에 나온 의심하지 말라는 말은 앞부분만 다르고 같은 말이다. 고린도전서에서는 분석하여 따지지 말라는 것이고 여기서는 유대인 이방인을 구별하여 따지지 말라는 것이다. 베드로가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만 닥치고 그대로 순종하라는 명령이다.
21절은 성령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베드로가 아래 층으로 내려가는 장면이다. 베드로는 옥상에서 아래로 내려가서 말했다. "보시오" 라는 말이 오늘 본문에서 세번째로 나온다. 모두 성령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타낼 때 썼다. 베드로는 "보시오, 내가 당신들이 찾고 있는 사람이오" 라고 말했다. 성령께서 당신들의 주인 고넬료에게 말씀하셔서 데리고 오라고 한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슨 일로 왔는지 물었다. 베드로는 이미 성령님의 명령에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순종하기로 마음 먹었다는 뜻이다.
베드로는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평생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며 살던 습관을 내려놓지 못해 대단히 당황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세번이나 말씀하시며 확인시켜 주었는데도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왔을 때 성령께서 의심치 말고 가라고 하시자 그제서야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세상적인 지식이나 믿음에 대한 생각이나 신학이나 교회의 관습에 갇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따르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며 몸부림치며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무조건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자기 생각을 따라가게 되어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말도 안되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것이 순종이고 믿음의 길이고 십자가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