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8:30c-35 빌립은 성령님의 지시하심에 따라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다가가서 지금 읽는 것을 이해하느냐고 질문을 했고 내시의 청에 따라 마차에 올라 그가 읽던 이사야 53:7-8절의 고난 받는 종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예언한 것이라며 기쁜 소식을 전했다.
이전 말씀에서 빌립은 주의 사자의 지시에 따라 한 낮에 사막으로 갔고 거기서 이디오피아 여왕의 재정을 담당한 고위 관료를 만났다. 성령께서 가까이 다가가라고 하시자 빌립은 주저하지 않고 그에게 다가가서 이사야를 읽는 것을 들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디오피아 고관이 읽는 이사야의 말씀을 빌립이 가르쳐 주며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다.
30절 끝부분에서 빌립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지금 읽는 것을 이해하느냐고 물었다. 고대인들은 항상 큰 소리로 소리내어 읽었다. 고대의 필사본들은 눈으로 읽을 수 있던 것이 아니었고 소리를 내 봐야 알 수 있었다. 원어에서 31절은 “그러나 그가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라는 말로 이어간다. 여기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이 자연스럽지 못하기에 대부분 번역에서 뺀 것이다. 이는 말을 하지 않았어도 “당연히 이해 못하지” 라는 의미를 서로 주고받은 것이다.
이어서 내시는 “만약 어떤 사람이 나를 안내해 주지 않는다면” 이라고 했다. 지도한다고 번역된 말은 길을 안내한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15:14절에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이라는 말에서도 나왔다. 그러므로 이 말은 실제로 길을 안내한다는 뜻인데 비유적으로 쓰인 것이다. 이 성경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앞에서 바른 길로 이끌고 갈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이에 에디오피아 내시는 빌립이 이 구절을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올라와서 자기 곁에 앉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가 읽던 구절은 32절-33절에 나온다. 성경 구절이란 길다란 두루마리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두루마리를 풀어가며 읽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서 그가 소리내서 읽고 있던 내용은 이것이라고 소개한다. 먼저 도살자 앞에 끌려간 양처럼이라고 했다. 이미 양은 도살자 앞에 끌려갔고 도살자는 양의 머리를 잡고 칼을 높이 들고 내리치려는 장면이다.
또 다른 비유는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것처럼"이다. 이 두가지 비유는 서로 다른 내용이지만 이는 모두 칼을 들고 있는 사람 앞에서도 소리를 내지 않는 양과 같았다는 뜻이다. 이러한 양처럼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말없이 순종했다는 뜻이다. 오늘 말씀에 나온 빌립도 역시 말없이 순종하며 사마리아든 남쪽 사막길이든 어디든 간 것이다. 빌립 역시 이러한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것이다.
새번역은 33절을 "그는 굴욕을 당하면서, 공평한 재판을 박탈당하였다" 라고 번역했다. 굴욕을 당한다는 말의 어원이 낮은 자리에서 멸시를 당한다는 뜻이기에 개역은 “낮을 때에” 라고 번역한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항상 예외없이 낮은 자리에서 멸시를 당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누가복음 1:48절의 마리아의 찬가에서 "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라는 말에서도 나온다. 미혼모인 마리아가 세상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며 지내던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이사야에 양으로 비유된 사람도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멸시를 받아 굴욕을 당하면서도 공정한 재판을 박탈당하였다는 것이다.
원어에서 33절 뒷부분은 "누가 그의 세대를 자세히 말하겠느냐?" 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이야기 한다거나 말한다고 번역한 말은 자세히 설명하여 말한다는 뜻이다. 그 사람의 시대의 사람들이 너무도 악하기에 그들의 악함은 어느 누구도 끝까지 자세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어서 “왜냐하면 그의 생명도 땅에서 빼앗겼기 때문이다" 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강탈당했다는 말과 빼앗겼다는 말은 똑같은 말이다. 공정한 재판은 이미 과거에 강탈당해 사형 판결을 받았고 또한 그 생명도 현재 강탈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사형 판결을 받고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상태이기에 현재 강탈당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34절에서 내시는 이사야가 말하는 사람이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이냐고 반응한다. 이사야 자신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이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대단히 예리하고 지적인 질문이다. 이 구절을 해석한 탈굼을 보면 악한 이방 나라들이 승리한 메시야에 손에 고난을 당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있다(Targum of Isaiah 53:7-8). 유대인들은 고난 받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보고도 자기들의 탐욕을 따라 멋대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고난을 받은 의로운 자가 회복된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기에 이 사람은 이러한 엇갈린 해석에 대해 빌립에게 질문을 한 것이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 구절을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라고 해석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사형 판결을 받고 죽는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내시가 읽을 때는 이사야나 예레미야와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의문이 들었기에 질문을 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고난을 받고 죽는다는 것을 생각했다는 증거는 없다. 저들은 강력한 군사적인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 구절은 절대로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고 해석한 것이다.
35절에서 빌립은 입을 열었다. 32절에서 양은 입을 열지 않았다는 말과 대비된다. 이제 빌립은 고난 받고 억울한 재판으로 죽어간 양이 누구인지 양 대신 빌립이 입을 열었다는 것이다. 빌립은 이디오피아 고관의 날카로운 질문을 놓치지 않고 이 말씀은 이사야가 고난을 받은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라고 설명하며 복음을 전한 것이다. 빌립은 이 성경 구절에서 시작하여 이 사람이 예수라고 연결하며 기쁜 소식을 전했다. 때마침 이 구절을 읽고 있던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난 것도 성령님께서 주도하신 기적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구절들을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성령님께서 개입하셔서 주도적으로 땅끝까지 복음 전하게 한 놀라운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