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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사도행전 › 7:30-38

Dawn Word

사도행전 7:30-38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치자와 속량하는 자로 세우셨다

바람을 받아 바다를 건너는 배 · 사도행전 2장 · 27장

2024. 11. 11. · 안정섭 목사 · 사도행전 7장 강해 설교

사도행전 7:30-38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통치자와 속량하는 자로 세우셔서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놀라운 일과 표징을 항하며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전달해준 사람이다.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은밀하게 알려주신 때가 가까이 왔을 때 모세가 태어났고 모세는 이집트의 지혜로 강해져서 그 지혜로 자신의 백성들을 구하려다가 실패하고 부정한 이방인의 땅에서 살았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통치자와 속량하는 자로 세우셔서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놀라운 일과 표징을 항하며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전달해준 사람이라고 증거하는 내용이다.

먼저 30절은 40년이 다 찼을 때 천사가 가시나무 떨기 불길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났다고 했다. 31절에서는 이 광경을 보고 기이히 여겼다고 했다. 누구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자세히 관찰하려고 다가갔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32절에서 그 음성은 하나님이셨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그러자 모세는 두려워 떨었고 이번에는 감히 자세히 관찰하려고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51절에서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 받지 못한 유대교 지도자들과는 반대의 모습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그들 앞에 나타나셔서 가르치시고 기적을 보여주셨는데도 두려워 떨지 않았기 때문이다.

33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네 발의 신을 벗으라고 했다. 왜냐하면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성전이 있는 곳이 거룩한 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데반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 거룩한 땅이라고 하셨다고 증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부정한 땅에서 부정한 사람들과 40년을 산 모세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시내산 광야도 역시 가나안 땅이 아니기에 스데반 당시 유대인들의 관점에서는 거룩한 곳이 아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곳도 본래 거룩한 곳이라고 정해진 곳은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그 어디나 거룩한 곳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지 순례라는 말도 잘못된 말이고 성경 유적지 방문이라고 해야 한다. 예루살렘이 거룩한 땅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아무리 아름답게 세워졌다 해도 그곳 역시 거룩하지 않다. 지금 예루살렘 성전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 우리 교회에 계신다. 그러니 성지 순례는 이스라엘로 가지 말고 우리들의 교회로 오라. 교회 건물이나 장소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여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면 그곳이 거룩한 곳이다.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지 않는다면 그 성전은 단순히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진 이후 성전 자체를 하나님과 동일시했다. 성전 자체를 숭배하고 성전으로 피하면서 성전이 하나님의 몸인것처럼 행동했다. 성전이 파괴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다고 생각했다. 선지자들이 비난한 것은 바로 이러한 개념이었다.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은 내 백성이 학대 받는 것을 보셨다. 또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내려오셨다. 그렇게 보시고 들으시고 내려오신 그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집트로 보낸다는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지도자와 해방자로 보내시면서 천사들의 손들과 함께 보내셨기에 더 이상 누가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느냐며 모세를 떠밀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보이던 손과 함께 모세를 통치자와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다고 했기 때문이다.

36절에 보면 모세는 이집트 땅과 홍해에서 또한 40년 동안 광야에서 그렇게 놀라운 일과 표징을 행하며 그 백성들을 이끌어 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이제 더이상 모세를 떠밀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오늘 말씀 다음에 이어지는 39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모세를 떠밀고 이집트로 가려했다. 그들은 모세를 떠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밀고 거부한 것이다.

37절은 신명기 18:15절을 인용한 것이다. 바로 이 사람 모세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운 것 같이 너희의 형제들 가운데서 예언자 한 사람을 세워주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한 사람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사도행전 3:22-23절에서 베드로도 이 구절을 인용하며 말했다. 자신들이 그렇게 숭배하는 모세가 예수님이 오실 것을 말했으니 그렇게 예언한 대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했어야 했다. 그것이 모세가 전하는 율법을 듣고 철저히 지키는 길이었다.

38절에서는 이 사람이 천사와 함께 광야에서 회중들 가운데 있었다고 했다. 회중이란 말은 나중에 교회라는 말로 쓰인 말이다. 모세가 인도하던 광야교회는 나중에 예수께서 머리가 되신 교회의 모형이다. 천사와 함께 있었다고 했지만 시내산에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말씀하신 천사라고 했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을 구약에서는 천사로 표현한 것이다. 그 모세가 "산 말씀" 을 받아서 광야의 회중들에게 전해 준 사람이다. 모세가 그 "산 말씀"을 전해 준 사람이라고 한 것은 자신이 모세의 율법을 모독하지 않았다는 것을 변호한 것이다. 개역에서 생명의 도라고 번역한 말은 살아있는 말씀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던 것이 분명하던 모세를 떠밀고 자기들 뜻대로 하나님을 믿었다. 구약성경에서 그러한 이스라엘이 음란한 우상숭배를 했다고 표현한 것은 실제로 우상을 섬겼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자신들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믿은 것이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도 그것이 바로 자신들을 인도한 하나님이라 했다.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 지도자들이나 스데반을 죽이려던 유대인들이나 모두 똑같이 자기들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며 예수님을 떠민 것이고 스데반도 떠민 것이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을 떠민 것이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아도 믿는 자들은 계속해서 자기들 생각대로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하나님을 우상으로 바꾸어 믿었던 역사이다. 내 생각과 내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우리 역시 똑같이 하나님을 떠미는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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