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7:9b-16 요셉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시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셔서 요셉에게 모든 환난을 겪게 한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큰 환난에서 건져내셨다.
이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외국 땅에서 종살이를 할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나오셔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 하실 것이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시기하던 이스라엘의 족장들과 함께 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팔아 넘긴 요셉과 함께 하신다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요셉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요셉을 총리가 되게 하셔서 흉년에 그 가족들을 구하게 하셨다는 내용이다.
9절 뒷부분에서 16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요셉을 총리가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기근에서 구하신 일을 말하고 있다.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사람은 요셉이다. 족장들의 시기 때문에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갔는데 이집트 역시 당시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부정한 이방인의 땅이다. 그런데 그곳에 있던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다는 것이다. 역시 가나안 땅이나 예루살렘 성전이 거룩한 땅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디든지 영광의 하나님이 계신 곳이 거룩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함께 계셨던 증거가 10절에 나온다. 요셉이 처한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셨다는 것이다. 또한 요셉에게 이집트의 바로 왕 앞에서 은혜와 지혜를 주셨다는 것이다. 은혜와 지혜라는 말은 누가복음 2:40절에서 어린 예수께 지혜가 충족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었다고 한 것에서도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는 바로 왕 앞에서 은혜와 지혜를 주셨다고 했기 때문에 같은 뜻이라 말할 수 없다. 다수는 여기서 꿈을 해석하는 지혜를 주신 것이고 그로 인해 바로 왕에게 호의를 얻은 것을 뜻하는 말로 해석한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단어 그 자체의 의미로 해석하기보다 항상 문맥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지혜란 적대적인 환경에서도 인정을 받고 이겨낼 수 있게 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바로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은혜와 지혜를 주신 것을 보고 요셉을 모든 이집트와 바로의 집을 다스리는 총리로 세운 것이다.
11-14절은 이집트와 가나안 온 지역에 큰 흉년이 들어 재난이 극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1절에서 이집트와 가나안 전체에 흉년이 들었고 큰 환난이 있었다고 했다. 새번역에서 재난으로 번역한 말은 10절의 환난과 똑 같은 말이다. 누가는 10절의 모든 환난들과 11절의 큰 환난으로 아재개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요셉이 팔려가면서 겪은 모든 환난들은 결국 11절에서 큰 환난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 큰 환난은 모두가 다 굶어 죽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모든 환난들로부터 구해내신 것은 택한 백성들을 큰 환난으로부터 구해내시기 위함이기에 요셉을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께서도 그 백성들에게 거부를 당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환난과 죽음에서 일으키셔서 그를 거부한 사람들에게 조차 영생을 주려는 것이다.
이어서 우리 조상들은 먹을 거리를 구할 수 없었다고 했다. 개역은 양식으로 번역하여 곡식을 의미하는 말로 의역을 했지만 원어의 의미는 음식이라는 뜻이기에 새번역처럼 먹을 거리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원어는 음식을 구할 수 없었다고 했는데 농사를 짓거나 양을 키워 먹을 거리를 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었다는 뜻이다. 큰 가뭄으로 인해 들판의 풀까지도 다 말라죽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요셉에게 많은 환난들을 겪게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큰 환난으로 모두가 죽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큰 환난은 완전한 멸망이 아니다. 12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반전을 암시하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야곱은 이집트에 곡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로 보냈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보냈다는 말은 바로 이어지는 13절에 나온 두번째 방문과 연결되는 말이다. 두번째 방문 때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려졌고 또 요셉의 가족들이 바로에게도 밝혀졌다는 것이다. 14절에서 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그 아버지와 모든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초청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요셉이 팔려가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라는 것이다. 요셉을 통해 야곱과 모든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구원했다는 것이다.
15절은 야곱도 이집트에 내려가 살다가 죽었고 야곱의 아들들인 이스라엘의 조상들도 모두 그곳에서 살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16절은 야곱과 이스라엘의 조상들의 유해는 나중에 세겜 땅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세겜 땅은 스데반 당시 유대인들이 부정하다 취급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땅이었다. 이는 당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던 장소를 예루살렘 성전과 유대 땅으로만 한정하던 유대교 지도자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이다.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사마리아까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겜의 의미는 명확하다. 세겜은 거룩한 땅 바깥이고 유대인들이 미워하던 사마리아 사람의 땅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만 거룩하다며 사마리아 사람들을 혐오하는 것은 잘못인 것이다. 그곳은 그들의 조상들이 묻힌 곳이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의 초점은 모든 환난들과 큰 환난이라는 말에 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요셉에게 모든 환난을 겪게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 원수인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모두가 멸망할 수 밖에 없는 큰 환난에서 구해내셨다는 것이다. 스데반을 죽이려 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였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 조상들을 구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계획을 갖고 계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