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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한복음 › 21:7-9

Dawn Word

요한복음 21:7-9

빨리 예수님을 뵙고 싶어 바다에 뛰어든 베드로

어둠 속에 펼쳐진 말씀과 빛 · 요한복음 1장

2024. 8. 19.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21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21:7-9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먼저 깨닫고 주님이시라 말하자 벗고 있던 베드로는 옷을 입고 바다에 뛰어들었고 다른 제자들은 그물을 배에 매단 채 육지에 닿아 보니 예수께서는 숯불에 물고기를 굽고 계셨고 빵도 준비해 두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이미 동 틀 때가 되었을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들어서셨지만 제자들은 알지 못했고 예수께서 그물을 오른쪽에 던지라 했을 때 그 말씀에 순종하니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서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사랑받는 제자가 주님이시라 하자 베드로는 바다로 뛰어내리고 다른 제자들은 배로 해안으로 나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다.

7절은 원어에서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끌어 올릴 수 없었으므로 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물고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다 알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라는 뜻이다. 이어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 라고 말했다. 사랑 받는 제자는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 말씀을 듣고 보았으므로 예수님이신 것을 금방 알아본 것이다. 그러나 사랑받는 제자도 눈이 좋아서 보고 알아본 것이 아니다. 그물을 오른쪽으로 던지라고 했을 때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힌 것을 보고 영적으로 밝은 요한이 먼저 깨달은 것이다.

이어서 ‘그러므로’ 말이 나온다. 요한이 주님이시라고 했으므로 라는 뜻이다. 말은 요한이 했는데 베드로가 먼저 뛰어 나갔다. 20:4-8절에서도 역시 베드로가 먼저 뛰어 나간 것과도 같다. 그런데 베드로는 벗고 일을 했던 것 같다. “벗었던 몸에다가 겉옷을 두르고 바다에 뛰어 내렸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요한은 영적으로 밝아 주님이시라는 것을 제일 먼저 깨달은 사람이지만 베드로는 성격이 급하고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라 제일 먼저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복음서에 나오는 두 사람에 대한 모든 이야기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한 사람은 영적인 천재였고 다른 한 사람은 열정적이고 충동적이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지도자였다.

여기서 벗었다는 말을 두고 논란이 있다. 벗었다는 말의 문자적 의미는 옷을 완전히 입지 않았다는 뜻이다. 영어로 체육관을 gym이라 부르는데 gymnasium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이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벌거벗는다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올림픽이나 이수미안 게임에 출전하려고 훈련을 받던 청소년들이 벌거벗고 훈련을 한데서 온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벌거벗었다는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완전히 벗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마태복음 25:36-44절에서 벗었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 완전히 벗었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옷을 제대로 입지 못했다는 뜻으로 쓰였기에 완전히 벗었다고만 볼 수는 없다.

어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셀류시드 왕조를 적대시하고 운동장에서 벌거벗고 운동하는 것을 포함한 그리스 사람들의 문화적 관습을 이스라엘에 심는 것을 싫어했기에 완전히 벌거벗었다기 보다는 생식기를 감싸는 옷은 입었을 것이라 말한다. 대다수는 이러한 속옷은 입었을 것이고 인사하는 것은 옷을 입는 것이 요구되는 종교적 활동이기에 겉옷을 두르고 치렁거리는 옷을 감아올려 묶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물고기를 잡을 때 벌거벗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며 베드로는 예수를 만나는데 적합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겉옷을 입었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과연 당시 사람들이 오늘날 사람들처럼 생식기를 감싸는 옷을 입었을지는 의문이 든다. 더구나 그물을 던지다 보면 생식기를 감싼 옷도 다 젖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4:51-52절에서 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한 청년이 벗은 몸에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자 그 입은 것을 벗어버리고 벌거벗고 도망을 했다고 했다. 여기서 홑이불이란 한국 사람들이 쓰는 홑이불이 아니라 그들이 몸에 두르던 천으로 된 옷이다. 몸을 감싼 한 장의 천으로 된 옷이 잡히자 그냥 달아났기에 옷만 남고 몸을 빠져나간 것이다. 그렇다면 베드로도 옷을 벗고 그물을 던졌을 가능성이 높다.

두른다는 말은 요한복음 13:4-5절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위해 수건으로 허리를 감쌌다는 말과도 같은 말이다. 겉옷을 말아올려 생식기 부분을 감싸서 허리에 묶었다는 뜻일 것이다. 베드로는 밤이었기에 보는 사람이 없는데다가 옷이 젖을까 염려하여 옷을 벗고 그물을 던졌던 것이다. 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한다면 입고 있던 옷도 벗고 들어가는 법인데 베드로는 거꾸로 옷을 입고 치렁거리는 옷자락을 감아올려 묶은 뒤 바다에 뛰어들었다. 주님이란 말을 듣고는 옷이 젖는 것도 개의치 않고 물에 뛰어든 것이다. 이는 베드로가 얼마나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8절을 보면 다른 제자들은 배로 왔다. 그 이유는 거리가 육지로부터 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거리는 겨우 100자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약 90m 정도 될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베드로도 배 안에서 기다렸어야 옳다. 옷이 젖을까 염려하여 옷까지 벗고 그물을 던졌던 베드로이다. 그런데 조금만 있으면 배는 육지에 닿고 예수님을 볼 텐데 그 잠깐을 못 참고 벌거벗은 몸에 옷을 둘러 묶고는 첨벙 뛰어내린 것이다. 더구나 아무리 수영을 잘한다 해도 배보다 조금 빠를 뿐일 텐데도 그렇게 물에 첨벙 뛰어든 것이다. 이는 1초라도 빨리 영광의 주님을 만나려는 것이다. 다른 제자들은 고기가 많아 그물을 배에 끌어올리지 못하고 그물을 배에 매단 채로 예수님이 계신 곳에 도착했다.

9절도 원어에서는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모두가 육지에 도착했으므로 라는 뜻이다. 9절은 “그들은 땅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을 피워 놓았는데 그 위에는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라고 했다. 제자들이 예수님인 것을 깨닫고 예수님 앞에 나와보니 뜻밖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요한처럼 영적인 제자와 몸이 먼저 움직이는 열정적인 베드로가 함께 협력하여 사역을 하는 것이 오늘 말씀에서 대조가 된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먼저 깨닫고 알려주기만 하고 배를 타고 예수님께 천천히 나아간 요한이 옳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단 일초라도 빨리 예수님을 뵙고 싶어 옷을 입고 얼른 말아 올려 묶은 뒤 바다로 뛰어들어 수영하고 간 베드로의 열정에 더 감동이 된다. 어느 누가 옳다고 할 수 없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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