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한복음 › 14:1-3

Dawn Word

요한복음 14:1-3

너희 마음이 근심하지 못하게 하라

어둠 속에 펼쳐진 말씀과 빛 · 요한복음 1장

2024. 5. 30.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14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14:1-3 예수께서는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며 예수께서 아버지 집에 제자들이 거할 곳을 마련하고 다시 와서 예수께서 계신 아버지의 집으로 안내하신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한 베드로가 예수께 어디로 가시는지 묻자 예수께서는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고 하셨다. 베드로는 목숨까지 바쳐서라도 따라가겠다고 하자 예수께서는 닭이 울기 전에 세번 부인한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며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을 예비하고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하시는 말씀이다.

14:1절은 연결하는 말 없이 갑자기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라고 하시는 내용이다. 원어는 너희 마음이 근심하지 못하게 하라는 뜻이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안정시키라는 것이다. 앞부분과 연결이 되지 않는 것 같지만 분명히 연결되는 말씀이다. 13:37절에서 베드로가 목숨까지도 내려놓겠다고 하자 38절에서 세번 부인할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기에 모든 제자들이 깜짝 놀라 근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제자들의 대표로 제자들의 뜻을 전한 것이기에 모든 제자들은 근심하고 있는 것이다.

근심한다는 말은 5:7절에서는 “물이 움직일 때” 라는 말에서 움직인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잔잔한 연못의 물이 갑자기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12:27절과 13:21절에서는 예수님의 마음이 소용돌이 치는 것을 나타낼 때 썼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배반할 유다를 생각하면서 그 마음에 소용돌이가 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자들의 마음이 소용돌이를 치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나 배반할 유다를 생각해서 소용돌이 치는 것이 아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왕이 될 줄 알고 따라다녔다. 그런데 자신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신다고 하자 자신들의 꿈이 좌절되어 그 마음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말은 세상 모든 염려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들의 계획이 좌절된 것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다. 염려 대신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다. 또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이다. 원어는 하나님을 향하여 믿고 예수님을 향하여 믿으라는 뜻이다. 제자들 스스로 계획한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고 따라 오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을 믿고 따르게 된다는 뜻이다.

왜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근심 대신 하나님을 믿고 또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인가? 2절에 보면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라고 하셨다. 거할 곳이라는 말은 떠돌다가 잠시 머물 광야에서의 텐트와 같은 집이 아니라 저택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라틴 벌게이트 역이나 KJV은 mansions로 번역한 것이다. 이를 따라 대저택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내 아버지 집은 하나님 나라나 새예루살렘으로 보고 그 안에는 제자들이 거할 대저택들이 많다는 뜻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다수는 언덕 위에 높은 곳에 성처럼 세워진 대저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방이나 apartments나 suits과 같은 구조로 본다. 본래 아버지의 집이란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다는 말은 아버지의 집 안에 아들의 신분으로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8:35절에 보면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한다고 했다. 따라서 여기서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는 뜻은 높은 곳에 성처럼 지어진 대저택 같은 것이라기 보다는 수많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버지의 집에 아들로서 영원히 함께 산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떤 학자들은 내 아버지의 집을 천국이라고 해석한다. 물론 천국이라는 뜻도 포함할 수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구약시대와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집을 생각하고 읽어야 한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들의 관계이다. 아버지의 집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는 아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거대한 하나님의 나라 안에 수많은 대저택들이 있는 장면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 안에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아들로 살게 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고 너희에게 말했겠느냐?” 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가셔야 거할 방이 많은 하나님 아버지의 집을 준비하실 수 있다고 이미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뜻이다. 너희가 있을 곳을 예비하러 가신다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을 뜻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자신이 새로운 성전이 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성전이 되시는 예수님 안에는 모든 믿는 자들이 다 거할 만큼 많은 방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3절에서는 “내가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 라고 하셨다. 다시 오신다는 말은 종말 때 다시 재림하신다는 뜻일 수도 있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 성령을 보내신다는 뜻일 수도 있다. 14:18절을 보면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라고 하셨다. 바로 뒤에 나오는 이 말씀과 연결해 본다면 부활 승천하신 뒤 성령을 보내셔서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전후 문맥으로 볼 때 맞는다.

다시 오셔서 제자들을 예수님에게로 데려가신다 했는데 데려간다는 말은 누가복음 17:34절에서는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라는 말에서도 나왔다. 또 마태복음 20:17절에서도 “열두 제자들을 따로 데리시고” 라는 말에서도 나왔다. 개역은 이 말을 영접한다는 말로 번역했지만 새번역처럼 데리고 간다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이 말 자체는 옆에 취한다는 뜻이다. 이는 예수께서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되고 제자들은 그 옆과 뒤에서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그림이다.

가는 곳은 “나에게로” 인데 이는 내 집으로 안내하신다는 뜻이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4마일 정도 떨어진 시골 마을에 사는 친구가 자기 집에 가자고 나를 초대했다. 그 때 나는 그 친구가 가자는 길로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데려가신다는 말도 함께 동행하기도 하고 앞서 가기도 하며 인도하신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데려 가시는 그 곳은 예수님의 집이고 또한 하나님의 집이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집에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집은 하나님의 성전인데 예수님 자신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시다. 이는 또한 장차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 하나님 아벚의 자녀들로 영원히 살게 하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는 안심하고 너희 마음이 소용돌이 치지 못하도록 잘 단속하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