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34-35 예수께서 새 계명을 주신다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한 것처럼 그렇게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아본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유다가 어둠 속으로 나갔을 때 예수께서는 자신이 영광을 받음으로 아버지께서도 영광을 받으실 때가 왔다며 이제 제자들과 함께 있을 시간이 조금 밖에 남지 않았다며 너희가 찾겠지만 지금은 올 수 없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새 계명을 주신다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한 것처럼 그렇게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아본다고 하시는 내용이다.
이제 예수님은 떠나갈 것이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찾아도 찾지 못할 것이라며 마지막 유언으로 부탁한 것이 34절이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라고 하셨다. 왜 새 계명인가? 유대교를 믿던 사람들도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레위기 19:18절에서도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라고 했다. 따라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전혀 새로운 계명이 아닌 것이다. 이는 구약에서 나온 헌 계명이고 옛 계명이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은 분명히 새 계명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이어지는 조건 때문이다. 이어지는 조건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도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그 이웃은 자신들처럼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다. 율법을 어기는 죄인들이나 이방인들은 원수이기 때문에 미워하라고 가르쳤었다. 쿰란 공동체 사람들도 공동체 사람들끼리는 서로 사랑하지만 공동체 밖의 사람들은 미워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친 사람들은 없었다. 그것도 원수의 종이 되어 발을 씻기기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원수들의 가장 낮은 종이 되어 사랑하라고 가르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자기들 감정과 생각대로 해석해서 지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따라 사랑하는 본보기를 보여주신 것이고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은 새 계명인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 했으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을 행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을 그대로 제자들에게 그대로 다 쏟아 부은 것이다. 예수님도 하나님처럼 제자들을 사랑한 것이다. 이제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서로 사랑해야 하니 결국 하나님처럼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35절은 ‘그것으로써’ 라는 말로 시작한다. 제자들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써 라는 말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원어에는 민약 너희가 서로 사랑한다면” 이라는 조건이 끝에 붙어 있다. 세상 사람들이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다. 그들이 우리가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끝까지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아, 저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구나!’ 라고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도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요한이서 5절에서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편지를 써 보내면서 이 계명은 새계명이 아니라고 했다. 요한의 공동체가 예수님께 받아서 처음부터 갖고 있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4절에 보면 그 계명은 아버지께 받은 것이라고 요한도 말했다. 따라서 예수께서 주신 새계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의 참 뜻이 무엇인지 본을 보여주시고 그렇게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따라 사랑하라고 한 것이다. 요한이서 9절에 보면 이런 사랑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지 않은 사람이라 했다. 이는 그런 사랑을 실천할 때 사람들이 제자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안다는 말의 정반대이다. 이런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