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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한복음 › 11:41-44

Dawn Word

요한복음 11:41-44

하나님과의 관계를 듣게 하시고 보게 하신 예수님

어둠 속에 펼쳐진 말씀과 빛 · 요한복음 1장

2024. 4. 29.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11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11:41-44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항상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신 것은 둘러서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귀로 듣게 하시고 나사로가 살아나는 것을 통해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눈으로 보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 분노하시며 무덤으로 가셔서 돌을 옮기라고 하자 마르다가 벌써 나흘이나 되어 완전히 죽었고 썩어서 냄새가 난다고 하자 예수께서는 네가 만약 믿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하지 않았느냐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감사기도를 드리시고 나사로에게 무덤에서 나오라고 하는 장면이다.

41절에서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돌을 옮겨 놓았다. 돌을 옮겼다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집어들었다는 뜻이다. 수평으로 놓인 돌을 집어 들었는지 아니면 수평인 동굴에 기대어 놓은 것을 옮겼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돌이 무거울 것이기에 마리아와 마르다가 옮길 수는 없었을 것이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돌을 옮겼을 것이다.

이어서 예수께서 기도하는 모습이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아버지, 내 말을 들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라고 하셨다. 눈을 들었다는 말은 앞에서는 사람들이 돌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예수께서 눈을 들었다는 것이다. 차이는 눈을 드는 것은 높이 또는 위로 라는 말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돌을 들었다는 말은 번쩍 들었다기 보다는 여럿이 함께 잡고 살짝 들어 옮겼을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것은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방식이다. 또 유대인들은 소리내서 기도를 했다. 이미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부탁 드린 것을 이미 응답해 주셨기에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이 때 이미 나사로는 살아났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에 감사를 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사로는 이 때 이미 살아나 잠을 자는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보지 않고도 이미 아시고 감사기도를 드린 것이다.

42절은 “그러나 나는 압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항상 자신의 말을 들어주시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은 예수님과 항상 함께 계시며 들어주시는 친밀한 아버지시라는 것이다. 이어서 그러나 둘러선 무리들 때문에 이 말을 한다고 하셨다. 아버지께서 항상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한 기도를 소리내서 하는 것은 예수님을 둘러서 있는 사람들에게 아버지께서 자신을 보내신 것을 믿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는 또한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증거를 이번에도 보여달라는 뜻이다.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시기에 스스로 생명의 근원이신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예수님은 하나님 품 안에 계시기에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간구하는 것이다.

앞에서 하늘을 보면서 소리내서 하신 기도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독생자 그리스도라는 것을 둘러선 물리들에게 들려주신 것이다. 이어지는 43절은 이제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둘러선 사람들에게 보여주시는 장면이다. 이렇게 기도하신 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외치셨다. 외쳤다는 말은 요한복음에서만 5번이 더 나오는데 모두 많은 무리들이 아주 큰 소리로 소리 지르는 장면에서 쓰인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아주 큰 소리로 쩌렁쩌렁 울리도록 나사로를 부르신 것이다.

이는 10:3절에서 우리 안에 자고 있던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과도 같다. 무덤 안에서 자고 있던 나사로는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일어났을 것이다. 나사로는 양의 우리 안에서 자고 있던 양처럼 편안히 있다가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부르시니 즉시 알아듣고 일어나 나온 것이다. 44절에 보면 죽었던 사람이 나왔다고 했다. 죽었던 사람이란 이미 완전히 죽은 사람이란 뜻이다. 손과 발은 천으로 감겨있었고 얼굴은 수건으로 싸매여 있었다고 했다.

유대인들은 이집트인들처럼 완전히 감싸서 미이라를 만든 것은 아니다. 유대인들은 커다란 천으로 시체를 감싸고 얼굴은 또 다른 천으로 가렸었다. 손과 발은 묶었지만 짐짝처럼 단단히 당겨 묶은 것은 아니다. 시체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묶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주석가들은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어느정도 손목과 발목을 움직일 수 있어 묶인 채 뛰거나 간신히 걸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수의를 건드리지 않고 몸만 빠져 나오셨다. 완전히 다른 영원한 몸으로 부활하신 것이다. 그러나 나사로는 예수님과 달리 수의와 함께 손과 발이 매여있는 상태로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그런 모습을 보신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풀어주어 그를 가게 하라고 하셨다. 이 말의 의미는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게 하라는 뜻이다. 나사로는 걸어서 집으로 갔을 것이다. 이는 마가복음 5:43절에서 다시 살아난 소녀에게 다시 먹을 것을 주라고 한 것과도 같은 말이다. 다시 일상생활로 복귀하도록 도와주라는 뜻이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하나님의 친밀한 관계이다. 예수께서 예수님을 둘러선 사람들에게 알게 하려 하신 것은 나사로를 살리는 놀라운 능력이 아니라 예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말을 들어주고 원하는 것을 해주려는 아버지처럼 늘 예수님의 말씀을 항상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나사로를 살리신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신 뒤 보여주신 것 뿐이다.

믿음이란 그럴듯한 말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늘 함께 교제하며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늘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도 늘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고 예수님의 영인 성령님을 모시고 우리도 늘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항상 함께 하면서 감사를 드리고 간구도 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고 성령님을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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