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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한복음 › 8:19-20

Dawn Word

요한복음 8:19-20

하나님을 만나보지 못했기에 예수님을 보고도 알지 못하는 자들

2024. 2. 28.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8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8:19-20 예수님을 죽이려던 대적들은 당신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고 묻자 예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본 적이 없기에 예수님을 보고도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셨는데도 예수님의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기에 공개적인 장소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잡지 않았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너희의 율법에도 두 사람이 증언하면 참되다고 한 것처럼 예수님 자신과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고 있기에 자신의 증언은 참되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의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묻자 예수께서는 너희들은 나도 모르고 아버지도 모른다고 하셨는데도 그들은 잡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19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18절과 연결이 된다. 18절에서 예수께서 예수님 자신과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께서 증언해 주시니 증인 두 사람의 조건이 충족된다고 하셨으므로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들에 예수께 묻기를 “네 아버지가 어디에 있느냐?” 라고 했다. 예수님의 대적자들은 예수께서 그 자리에 있으니 또 한 사람의 증인인 그의 아버지를 불러 물으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전혀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알지 못한다는 말은 완료형이기에 과거부터 지금까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본래 원어에서 본다는 말에서 온 것이다. 보아서 안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육신의 가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예수님의 대적들이 예수님을 보고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전혀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예수님 자신을 보고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도 예수님의 참된 정체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만약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라고 하셨다. 비슷한 구절이 14:7절에서도 나온다. 그런데 한글 번역이나 영어 번역들에서는 똑 같은 말로 번역이 되어있지만 원어에서는 다른 말이다. 8:19절에서 나온 말은 본다는 말에서 나온 말이다. 예수님을 대적하고 있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만약에 과거에 예수님을 보고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과거에 보아서 알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누구보다 더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정말 많이 배운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으로 백성들을 가르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이 정작 하나님을 만나보지 못했기에 그들에게는 보아서 안다는 말을 사용하신 것이다. 만약 그들이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으로부터 듣고 과거에 이미 알았더라면 예수님의 아버지도 과거에 이미 보고 완전히 알았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만약 그들이 이미 과거에 배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 보았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금방 알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14:7절에서 나온 말은 배워서 안다는 뜻이다. 14:7절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과거에 너희들은 예수님을 전혀 몰랐었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만약 과거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배워서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배워서 알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한 일반 백성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배웠다. 그러나 그들도 하나님을 만나보지 못했기에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전혀 배우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는 배우지 않았기에 알지 못한다고 하신 것이다. 14:7절에서는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 즉 하나님을 이미 보았다고 하신다. 그들은 예수님께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 알고 그 결과 하나님을 이미 만난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20절에서 이 말씀은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헌금궤가 있는 곳에서 하신 말씀이라고 했다. 원어는 “헌금궤 안에서” 라는 뜻이다. 헌금궤라는 말은 본래 헌금이나 귀한 물건들을 넣어두던 방을 뜻하는 말이다. 유대인 역사가 요셉푸스도 이 말을 재물을 보관해 둔 방을 뜻하는 말로 썼다(Jewish War v.200; vi.282). 그러나 예수께서 그 방 안에 들어가셨을 가능성은 없다. 그렇기에 어떤 이들은 성전 바깥마당의 헌금을 보관하던 방 근처에서 가르치셨다는 뜻일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또 어떤 이들은 이 말이 여인의 뜰에 있던 헌금함을 뜻할 것으로 해석하며 그곳에등불을 켜서 축하했고 춤을 추던 곳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요한의 초점은 그 장소가 어디냐에 있지 않다. 이는 아직 그의 시간이 아직 완전히 오지 않았기 때문에 공개적인 장소에 있었는데도 잡지 않았다 라는 것에 초점이 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 보5고 있는 공개적인 장소에 있었는데도 아무도 잡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은 예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던 공개적인 장소에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발언으로 여겨질 말을 하셨는데도 잡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직 그의 시간이 완전히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8:19절과 14:7절을 대조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배운다고 하나님을 만나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하나님 말씀을 많이 아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참 뜻을 깨닫지 못했고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과거에는 그렇게 배웠기에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배웠기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신비한 영적 체험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을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 받아들이고 지키며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자신들의 중심에 하나님 대신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깨닫고 그 말씀을 간직하고 성령님을 마음 중심에 모신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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