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30-31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계속 애를 쓰면서도 아무도 예수께 손을 대지 못한 이유는 아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한 그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예수님의 가족을 알기에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며 자신은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사람들이 예수를 잡으려 했지만 아무도 손을 대는 사람이 없었는데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무리들 중에는 믿는 사람도 많았다는 내용이다.
30절은 원어에서 “그러므로” 라는 말로 29절과 연결된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관계이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냈다고 했으므로 라는 뜻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5:16절에서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 가에서 병자를 치료함으로 자신들이 규정한 안식일 법을 어긴 때부터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29절에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며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말씀하셨기에 이는 안식일보다 훨씬 더 중한 하나님을 모독한 죄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를 잡으려고 했다.
잡으려고 했다는 말은 잡으려고 계속해서 끊임없이 잡을 방법을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중 잡는다는 말은 손으로 단단히 누른다는 뜻이다. 21:3절과 10절에서는 물고기를 잡을 때 썼는데 펄떡거리는 물고기를 손으로 잡아 눌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구약 성서 전체에서 13번 나오는데 그 중 요한이 9번 사용한 단어로 요한이 주로 사용한 특별한 단어이다. 마태와 마가는 힘으로 압도하거나 통치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일반적인 단어를 썼다.
그런데 아무도 그 위에 손을 대는 자가 없었다고 했다. 손을 댄다는 말은 원어에서 예수 위에 손을 던진다는 뜻이다. 잡으려고 예수 위로 손을 확 덮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뜻이다. 손을 던져 덮치는 그림은 앞에서 나온 손으로 단단히 누른다는 말과 한 동작으로 연결이 되는 말이다. 먼저 손으로 확 덮친 다음에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손으로 단단히 누를 수 있는 것이다. 요한은 범인을 체포하는 장면을 생생한 그림처럼 묘사한 것이다.
계속해서 잡으려고 애를 쓰면서도 손으로 확 덮치는 자가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이어서 설명한 이유는 아직 그의 때가 완전히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때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가 아직 안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저들은 예수님을 잡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잡혀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예수님의 뜻이지 힘이 없어 잡히시는 것이 아닌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계속 애를 쓰고 있으면서도 잡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를 요한은 31절에서 설명한다. 무리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고 또 “그리스도가 오신다고 해도 이 사람이 행한 표적보다 더 많겠는가?”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께 적대적이었다. 하지만 먼 곳에서 온 순례객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직접 보고 듣고 나서 조심스럽게 하는 말이다.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하나님이 아니라면 아무도 행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예수를 믿었다는 증거는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된 예언자로 여기고 있기에 아무도 손으로 덮쳐 잡으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폭동이 일어나고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려 한 죄로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무리들을 두려워하여 손을 대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보는 사람들이 없어도 그들은 예수님을 잡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때가 아직 되지 않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눈을 더 두려워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모습이 나온다. 하나님의 아들을 잡아 죽이는 것은 하나도 두렵지 않지만 사람들이 두려워 잡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나님 대신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오늘날도 거짓 믿음과 참된 믿음을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 사람들만 보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행하지만 사람들이 보면 거룩한 척 하는 것이 거짓 믿음이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그들을 연극배우라는 뜻으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부르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