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16-17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상을 심판하기 보다는 그들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통해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자신은 모세가 뱀을 높이 든 것처럼 십자가에 높이 달림으로 자신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보내시고 아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라고 하시는 내용이다.
16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14-15절과 연결이 된다. 인자가 왜 들림을 받아서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시는가 하면이라는 뜻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흔히 이처럼 이라는 말이 하나님의 사랑의 질과 깊이를 강조하는 말이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은 이 말이 요한복음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살피지 않은 채 은혜스러운 해석을 한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이처럼 이라는 말은 항상 어느정도 사랑하셨는지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방법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다. 그렇기에 이처럼이라는 말은 3:14-15절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많이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높이 올리시는 방식으로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세상은 누구를 뜻하는가? 어떤 이들은 모든 인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구약성경의 문맥을 벗어난 채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에서 분리되고 적대적인 태도도를 취하는 부정적인 느낌을 가진 말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세상은 타락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반역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이처럼 하나님께 대해 반역하는 모습은 창세기에서 나오는 아담과 하와를 비롯하여 구약성경 전체에 끊임없이 나타나 있다. 이들이 바로 요한복음의 문맥에 나오는 세상이다. 17절에서 심판하러 하심이 아니라는 것도 반역하는 인간들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끊임없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것이 구약성서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이다. 그러한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높이 달리게 하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들을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 아들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방식이다.
그렇게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도록 내어 주신 목적이 이어서 나온다. 그 목적은 그 아들을 믿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를 믿는 자라는 말은 그를 향하여 믿는다는 뜻이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다는 방향성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그 분 안에서 믿는 자들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갖게 하시려는 것이다.
17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16절과 연결이 된다. 그 아들을 세상 속으로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를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보낸다는 말은 마태복음 21:37절과 마가복음 12:6절에 나오는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와 연결하여 이해해야 한다. 포도원의 소출 받아오라고 보낸 종들을 계속 죽이는데도 계속 보내다가 마지막에는 아들을 보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선지자들을 계속해서 거부하고 죽이기까지 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이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실제 예수님 당시 부재지주인 로마 귀족이라면 첫번째 종을 죽였을 때 바로 군대를 이끌고 가서 그 악한 소작인들을 전멸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냈다는 것이다.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군대를 붙여줘서 가서 심판하라고 보냈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반역하는 세상을 심판하게 하시려고 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을 통해 구원하시려고 보내셨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으로 퍼 주기만 하는 따뜻한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을 끊임없이 대적하는 악한 인간들에 대해 분노하시면서도 그 분노를 참으시고 사랑을 베푸시는 모습이다. 이는 구약성경에 나온 인자로 번역된 헤세드의 사랑이다. 분노하시면서도 참고 계속해서 예언자들을 보내 경고하시고 벌을 내리시면서도 끊임없이 용서하셔서 회복시켜 주시는 사랑이다. 이제 아들을 보내서 모든 인류를 심판하시고 멸하셔야 하는데도 이번에는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서 높이 들림 받아 죽게 하시기까지 참으시며 사랑하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오셔서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것도 역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신 것이다. 좋은 사람들끼리 따뜻하게 사랑하며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원수 같은 사람들을 한없이 참아주면서 그들에게 의지적으로 친절을 베풀라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