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6-49 빌립의 말을 듣고 무시하던 나다나엘은 실제로 와서 예수를 만나보고 나서 그의 초자연적인 지식에 놀라 예수님께 하나님의 아들이고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고백을 했다.
이전 말씀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한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전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빌립의 말을 믿지 못하던 나다나엘이 예수를 만나본 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내용이다.
46절에서 나다나엘은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 고 말했다. 원어의 어순으로 볼 때 이는 질문이기에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은 물음표를 넣어서 번역했다. 나다나엘이라는 이름에서 나탄은 준다는 의미이고 엘은 하나님이라는 듯이기에 “하나님께서 주셨다” 라는 의미이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구약성경에서 기록된 그분을 만났다고 한 것을 보아도 나다나엘은 구약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다. 그 말을 들은 나다나엘이 대뜸 그렇게 질문한 것은 구약에서 그리스도와 관련된 예언들이 나사렛과 함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고사하고 예언자들 조차도 나사렛에서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빌립은 “오라! 그리고 보라!” 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47절은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관해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보라!” 라는 말로 시작하신다. 놀라운 구경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 구경거리는 “진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 안에 속임수가 없는” 이다. 속임수가 없다는 말은 창세기 27:35절에서 이삭이 “네 동생이 속임수로 네 복을 가로챘구나” 라고 한 말과 연관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 즉 이스라엘은 속임수의 사람이었는데 나다나엘은 속임수가 없는 진실한 이스라엘인이라는 것이다.
48절에서 나다나엘이 예수께 말하기를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라고 놀라서 물었다.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데도 나다나엘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께서 모든 사람들의 속마음까지 다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대답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내가 그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는 너를 보았다” 라는 것이다.
원어에서 무화과 나무에는 관사가 붙어있기에 그냥 어떤 무화과 나무가 아니라 “그 무화과 나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은 예수께서 전에 나다나엘을 본 적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이는 이 무화과 나무는 나다나엘의 집 뜰에 있던 것일 것이라며 요한 복음 기록자가 마음 속까지 다 아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가지신 것을 다시 한번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자기 집 무화과 나무 아레에 앉는 것은 번영의 상징이다. 유대인 학자들은 습관적으로 무화과 나무 아래에 앉아 율법을 공부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무화과 나무 밑에 앉아있는 것 보았다는 것은 나다나엘이 날마다 자기 집 무화과 나무 아래서 습관적으로 율법을 공부하던 것까지 다 보고 계신다는 뜻이다. .
이러한 해석은 이어지는 나다나엘의 반응을 보아도 알 수 있다. 49절에서 나다나엘이 예수께 랍비라고 부르며 대답한 말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고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말은 예수께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라는 뜻이다. 50절에서도 예수께서 그 무화과 나무 밑에서 보았다고 해서 믿느냐고 하시며 더 큰 일도 볼 것이라고 했기에 나다나엘은 분명히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지식에 놀라서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고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고백을 한 것이다.
오늘 말씀은 빌립의 말을 듣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던 나다나엘이 빌립의 말대로 실제로 와서 예수님을 만난 뒤에 놀라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고백하는 장면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기록자가 오늘 말씀에서 전하는 핵심은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행동 뿐만 아니라 마음 속 생각까지도 다 아시는 전지하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인정한다면 우리도 역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나 속임이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