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4:47-49 예수께서는 죄사함 안으로 들어가는 회개를 선포하는 일에 제자들이 증인이라며 예루살렘으로부터 그 일을 시작하되 위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입혀질 때 까지 예루살렘에 앉아 있으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전에 가르치셨던 대로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살아나야 한다고 말씀을 근거로 자신의 부활을 증거해 주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라며 성령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 하시는 내용이다.
47절은 46절과 연결된 한 문장이다. 고난을 받는 것과 다시 살아나는 것과 선포되는 것이 나란히 병행을 이룬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다시 살아나고 선포되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는 히브리어에서 명령의 의미를 담고 있는 부정사와 같은 것으로 제자들에게 내리는 독립적인 명령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고난받는 것과 다시 살아나는 것은 병행되는 것이 어울리지만 선포되는 것은 어울리지 않기에 본래 기록된 그리스어가 아닌 히브리어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가지는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된 예언들을 나열한 것이다. 고난을 받는 것도 그리스도요 다시 사는 것도 그리스도요 전파되는 것도 그리스도이다.
그 다음에는 "그의 이름으로"라는 말이 나온다. "그의 이름으로" 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그의 이름의 기초 위에" 라는 뜻이다. 이는 예수의 이름 위에 서 있는 그림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예수의 이름의 기초 위에" 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또 이 말이 나타내는 의미를 중심으로 "시람들이 나의 대표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통하여" 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적을 행하고 선포하는 모습이 마치 예수님과 똑같기에 그렇게 해석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원어에서 선포되는 것은 두가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표현되어있다. 먼저 죄사함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회개이다. 사도행전 11:18절에서는 "생명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회개"라고 했다. 따라서 죄사함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거룩하신 하나님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뜻한다. 또 한가지 들어간다는 표현은 "모든 민족들 안으로" 이다. 그러한 죄사함 안으로 들어가도록 선포되는 것이 모든 민족들 안으로 침투된다는 뜻이다.
한글 번역들이나 대부분 영어번역들은 "예루살렘으로 ㅂ부터 시작하여" 라는 말이 47절에 연결되어있다. 하지만 원어성경에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라는 말이 48절에 연결되어 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라는 것이다. 이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조금씩 다르다.
이 일이 예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때부터 승천하시기까지 모든 지상사역을 뜻한다고 하기도 한다. 또 이 일은 부활의 모습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뜻한다고 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모든 일들을 증언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본문의 문맥은 구체적으로 앞에서 말한 세가지 즉 고난 받으시고 부활하시고 죄용서안으로 들어가는 회개를 선포하는 것을 뜻한다고 본인은 해석한다. 사도행전 5:30절에 보면 베드로와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증언한 것도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희들이 죽인 예수를 살리셨다" 라고 증언해서 고난과 부활을 증언했다. 또 31-32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게 하셨다" 라고 하며 우리가 이일의 증인이라고 했다. 예수께서는 그 일을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따라 제자들이 그대로 했다는 것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다.
49절은 원어에서 "보아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주목해서 잘 들으라는 것이다. 그것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낸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은 위로부터 오는 능력으로부터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한 것을 뜻한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죄사함 안으로 들어가는 회개를 선포하는 것을 시작하라 하셨지만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옷처럼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죽으심과 부활과 죄사함으로 들어가게 하는 회개를 선포할 수 있다고 즉시 나가서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도 역시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옷처럼 입어야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은 우리가 결심한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며 또 옷처럼 성령님으로 덧입혀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능력이 아닌 내 힘으로 하려 할 때는 쓰러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