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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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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누가복음 20:41-44

예수님은 단순히 왕이 아니라 구주이시다

다시 찾은 어린 양과 집으로 가는 길 · 누가복음 15장

2023. 7. 12.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20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20:41-44 예수께서는 부활에 관해 동의한 율법학자들에게 시편 110편을 인용하시며 그리스도가 단순히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의 부활에 관해서는 모세도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통해 은밀하게 알려주었다고 하시며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들의 하나님이라고 하시자 듣던 율법학자들 중에 일부가 옳다고 했고 모두 더 이상 물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자신이 메시야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들에게 반격하는 질문을 하시는 내용이다.

41절은 "예수께서 저들에게 말씀하시길" 이라는말로 시작한다.아마도39절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말씀에 동의한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일 것이다. 마태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모여 의논하고 있을 때라고 했고 마가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율법학자들이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지를 말하며 그 대상이누구인지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누가는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지 분명히 밝히지 않고 저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어떤 이는 45절에 나온 무리들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라 하지만 본인은 39절의 율법학자들과 연결된다고 본다. 부활에 대해 동의했기에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일 것이다.

마태와 마가는 "성령 안에서" 라고 했는데 누가는 42절에서 "성경의 시편 안에서" 라고 하면서 시편 110편을 인용하셨다고 증언한다. 예수님은 아마도 두가지를 다 포함하여 "다윗이 시편에서 성령 안에서 그 자신에게 말하되" 라고 하셨을지도 모른다. 이 시편은 바리새파 사람들도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시라고 인정했던 시편이다. 그 질문은 42-43절을 보면 "그러면 다윗이 시편에서 그리스도를 주라 부르며 말하길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내 우편에 앉으라! 네 원수들을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라고 하셨느냐?"는 것이다. 시편 110:1절의 그리스어 번역에는 둘 다 똑같이 "주"라고 번역이 되어있다.

그러나 히브리어는 본래 첫번째 "주"는 ""여호와"이고 두번째 주는 "아도나이"이다. 물론 히브리 사람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입에 담을 수 없어 "아도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시편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로 부르고 메시야는 "아도나이"로 구별해서 부른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과 같은 메시야를 기대했지만 예수께서는 다윗도 자신의 자손 중에 올 메시야를 "아도나이"로 높여 불렀기에 메시야는 단순히 다윗의 혈통인 인간 메시야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대처럼 단순히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해방시킬 인간 메시야는 아니라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대답할 틈도 주지 않으시고 "그러므로 다윗이 그를 "아도나이" 라고 불렀다면 어떻게 그의 아들이 되겠느냐?"라고 하셨다. "아도나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대신 부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종이 주인을 부를 때도 쓰는 말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아도나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아도나이"라고 절대로 부르지 않는 법이다.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은 다윗을 가장 위대한 왕으로 보고 그 자손 중에 올 왕인 메시야는 다윗만은 못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다윗이 그 아들을 향해 "아도나이" 즉 주님이라고 부른 시편 말씀을 인용해서 바리새파 사람들을 할 말이 없게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라면 다윗은 절대로 자신의 아들을 향해 "아도나이" 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리새파 율법학자들 뿐만 아니라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대부분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를 다윗과 같은 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왕이 다시 나타나면 자신들을 해방시켜 주고 잘사는 나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나님 말씀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욕심과 소원을 따라 읽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의 욕심과 소원을 내려놓지 않으면 성경의 다른 부분을 읽을 때도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처럼 읽을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은 단순히 왕을 뜻하는 아도나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담을 수 없어 부르던 하나님과 동등한 아도나이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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