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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이사야 › 49:1-7

Dawn Word

이사야 49:1-7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하나님

2018. 12. 5. · 안정섭 목사 · 이사야 49장 강해 설교

이사야 49:1-7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셔서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 세계 만방에서 돌아오게 하신다.

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르시는 하나님

나: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수고를 평가해 주시고 그 수고한 만큼 보상해 주실 것이니 우리 주님께서 명령하신 일을 묵묵히 하자.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말고 묵묵히 계속하자.

이전 말씀은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이스라엘에는 평화가 끊이지 않을 것이고 공의가 흘러 넘칠 것이며 그 자손들을 축복하시고 항상 지켜주실 것이라 했다. 그 기쁨의 소식을 외치며 달려나가는 그림이 이제 아주 멀리에 있는 섬들에게까지 선포되는 모습으로 이어지면서 하나님의 종을 통해 온 세계 모든 민족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1절은 48:20-22절에서 기쁨의 함성을 외치며 바빌론에서 빠져 나왔던 것과 연결이 된다. 그 기쁨을 이제 땅 끝 뿐만 아니라 그 땅 끝에서도 더 멀리있는 섬들에게까지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원받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모습이 이제 "나" 라고 표현되는 한 사람으로 바뀐다. "나"를 이렇게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종으로 삼으신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태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다" 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께서 종으로 정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하나님께로 돌아선 참 이스라엘이라는 집합체라고 해야 이전 부분과 연결이 된다.

만약 하나님의 종이 참된 이스라엘이라면 참된 이스라엘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온 세계 만방에 선포하신다는 뜻이다. 2절은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셔서 주님의 손에 숨기셨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종은 고레스처럼 군사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종이 아니다. 입을 날카로운 칼로 만드셨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종으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그 말씀이 사람들의 관절과 골수를 쪼기기까지 할 것이다. 칼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칼집에 넣어 손에 숨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필요한 때 꺼내어 그 날카로운 칼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이다. 또 "나를 날카로운 화살로 만드셔서 주님의 화살통에 감추셨다" 고 했다. 역시 칼집에 숨겨져 있는 칼과 마찬가지로 화살통 속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칼은 가까이에 있는 적들에게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화살은 멀리있는 적들에게 선포되는 말씀이다.

3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종은 이스라엘이라는 집합체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종들이 이스라엘이라고 해야 옳다. 그러나 원어는 분명히 하나님의 종 한 사람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은 본래 야곱의 이름이다. 하나님께서는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고 아브라함과 약속하셨다. 그 약속이 야곱을 통해서 이루어졌기에 이스라엘이라는 한 개인의 이름이 그 공동체의 이름이 된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공동체의 이름을 다시 개인의 이름으로 사용하신 것이다. 새로운 이스라엘을 통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으신다는 뜻이다. 이 하나님의 종은 지금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려 명령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있는 종이다. 그 말씀은 칼집과 화살통 속에 숨겨져 있다가 이제 드러난 종이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세계 만방에 선포할 종이다. 4절은 그렇게 말씀을 선포한 하나님의 종이 하는 말이다. 이 종이 하나님 말씀을 선포한 것이 헛수고 같았다는 것이다. 또 "쓸모 없고 허무한 일에 내 힘을 허비한 것 같았다" 라고 한다. 하나님 말씀을 선포했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참으로 주님께서 나를 올바로 심판하여 주셨으며 내 하나님께서 나를 정당하게 보상하여 주셨다" 고 했기 때문이다. 원어의 뜻은 공정한 심판이 여호와께 있다는 것이다. 정당한 보상도 역시 여호와께 있다는 뜻이다. 핵심은 하나님의 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에 쓸모없는 일을 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는 것이다.

영어의 NASB는 49:1-4절에 나오는 모든 "나" 라는 말을 대문자로 표시했다. 이 하나님의 종은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도 말씀이 육신이 된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다. 초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로 표현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된다고 NASB는 번역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집합체인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개인인지 잘 알 수 없으면 그대로 두고 계속 이어지는 문맥을 살펴보면 된다.

5절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그의 종으로 부르셨다" 라고 했는데 원어는 "모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라는 뜻이다. 야곱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다시 그에게 불러 모으시려고 나를 택하셨다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바빌론에 포로가 되어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버린 것이다. 따라서 돌아오게 하는 것도 예루살렘이라는 땅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저들의 문제는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에 있기에 돌아오게 하는 것도 역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버린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종을 부르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종이 탄생하기 오래 전부터 이미 계획되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6절은 하나님의 종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살아남은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오히려 가벼운 일이라 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회복시키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종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6절을 보면 1절부터 말한 하나님의 종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미치게 하려고 내가 너를 뭇 민족의 빛으로 삼았다" 라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옳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을 보내신 목적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 것 시작으로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이다.

7절은 하나님의 종을 "남들에게 멸시받는 사람, 여러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는 사람, 통치자들에게 종살이하는 사람" 이라고 부르신다. 하나님의 종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렇게 멸시를 받았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여러 민족들과 모든 통치자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다. 그런데 반전이 7절 뒷부분에서 이루어진다. "왕들이 너를 보고 일어나서 예를 갖출 것이며 대신들이 또한 부복할 것이니" 라고 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멸시하는 비천한 종에게 모든 왕들과 통치자들이 다 그 발 앞에 엎드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 종을 택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시는 것을 유대인들은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이해를 했다. 그래서 다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번영하게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사야 전체를 보면 문제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 문제이지 약속의 땅을 떠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사야를 통해 선포하시는 말씀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을 통해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참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온 세계 만민들을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신 것이다.

그 계획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쓸모없고 허무한 일 같아 보인다고 했다. 오늘날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도 아무 쓸모없고 허무한 일 같아 보이는 것이다. 오늘날 목회자들도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선포하지만 다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심판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우리가 수고한 보상도 역시 하나님께서 하신다. 오늘날 믿는 자들의 문제는 자신들이 스스로를 심판하여 자신들이 수고했고 자신들이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에 있다.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수고했는데도 하나님은 아무런 보상도 안하시니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심판은 하나님의 몫이다. 보상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수고에 대한 모든 평가와 보상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대로 할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아무런 보상도 없는 것 같은 일을 묵묵히 하셨다면 우리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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