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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누가복음 › 12:25-26

Dawn Word

누가복음 12:25-26

세상적인 것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

다시 찾은 어린 양과 집으로 가는 길 · 누가복음 15장

2023. 3. 23.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12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12:25-26 예수께서는 생명 유지를 위해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해 아무리 염려한다 해도 그 생명을 조금도 연장할 수 없다며 세상적인 것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생명을 유지하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음식과 옷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며 부정한 새인 까마귀 조차도 먹이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하물과 너희들은 그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아무리 걱정한다 해도 자기 수명을 한 순간도 늘릴 수 없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원어에서 25절은 너희 중에 어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늘릴 수 있느냐고 하시는 내용이다. 한 자란 한 큐빗이다.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의 길이를 한 단위로 사용해서 길이를 재던 단위를 말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한 큐빗은 52 cm였다. 원어를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세상에 어느 누가 염려함으로 자기 키를 한 큐빗 늘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글 개역과 영어의 KJV은 원어의 문자적인 뜻 그대로 키를 한 큐빗 더 늘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뜻으로 번역했다. 만약 그렇게 해석한다면 예수께서는 엉뚱한 과장법으로 유머 한 마디 툭 던지시며 염려가 얼마나 비합리적인 것인지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한글 새번역과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은 세상에 어느 누가 염려함으로 인생의 길이를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는 뜻으로 번역했다(ASV, ESV, NASB, NIV, NLT, RSV). 이렇게 번역한 것은 한 큐빗이라는 말이 길이를 재는 단위이기도 하지만 비유적으로 쓰일 때는 짧은 시간을 뜻하는 말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키라는 말도 실제 사람의 키를 뜻하는 말이지만 비유적으로 쓰일 때는 사람의 나이나 수명을 뜻하는 말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키가 아무리 작은 사람이라도 52 cm 더 자라길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키가 150인 사람이라도 52 cm 더 자란다면 202 cm가 된다. 물론 키가 120 cm 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자라고 싶겠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키를 조금이라도 더자라게 하고 싶다는 뜻으로 말씀하셨다면 큐빗이라는 단위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염려함으로 수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뜻으로 해석한다. 본문 바로 앞의 내용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다음에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특별히 고대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는 이유는 생존에 관한 문제이다. 이전 문맥과 연결한다면 그렇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한다해도 하나님께서 데려가신다면 아무도 염려함으로 그 생명을 연장할 수 없다는 것이 문맥상 맞다.

이어지는 26절을 보아도 아무도 염려함으로 그 생명을 잠시라도 연장할 수 없다는 뜻이 맞다. 26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25절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만약 가장 작은 일도 할 수 없다면 어째서 그밖의 나머지 것들에 대해 염려하느냐는 것이다. 그 밖의 나머지 것들이란 먹을 것과 입을 것과 같은 세상적인 걱정들을 뜻할 것이다. 수명을 아주 조금도 연장할 수 없다면 무엇 때문에 먹을 것과 입을 것과 같은 세상걱정들을 하느냐는 뜻이다. 만약 키를 52 cm 자라게 한다는 뜻이라면 그것은 지극히 작은 것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고 놀라운 일이다. 25절 다음의 문맥과 연결해 볼 때도 수명을 잠시라도 연장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에 대한 걱정들은 모두 다 쓸데없는 일이다.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본다고 해도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적인 필요에 대한 것을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쓸데없는 염려가 우리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와 자리잡을 마음의 공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미래를 위해 아무런 저축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아껴쓰지도 말고 있는 것 그때 그때 다 써 없애면서 즐기고 살라는 뜻도 아니다. 초점은 물질에 대한 염려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며 그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다. 세상에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것에 따라 살면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집중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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