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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누가복음 › 11:52-54

Dawn Word

누가복음 11:52-54

하나님 말씀을 알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자들

다시 찾은 어린 양과 집으로 가는 길 · 누가복음 15장

2023. 3. 15.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11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11:52-54 예수께서 하나님 말씀을 아는 지식의 문을 닫고 자신들도 안들어가고 다른 사람들도 못들어가게 막던 율법교사들에게 저주가 있다고 말씀하시자 분노한 그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예수님을 포위하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들을 사냥하려고 숨어 엎드려있는 사냥꾼들처럼 질문을 해댔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창세 이후 하나님께서 보내신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핍박한 죄를 이 세대들에게 그 책임을 물으신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지식의 열쇠를 가지고 자신들도 안들어가고 다른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율법교사들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이제 "저주가 있다 너희에게" 시리즈의 마지막이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저주 시리즈를 정리해보면 오늘 말씀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첫번째 저주는 11:42절에서 눈에 보이는 경건은 지나치게 행하면서 눈에 안보이는 사랑은 소홀히 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하신 것이다. 둘째 저주는 11:43절에서 거룩함을 나타내는 옷을 입고 어디에서나 사람들에게 존경받기를 좋아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하신 것이다. 세번째 저주는 11:44절에서 표시가 나지 않는 무덤과 같이 자신들의 더러움을 숨기던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하신 것이다. 이 세가지 저주는 모두 다 자신들의 더러운 죄를 숨기고 거룩하게 보이려는 것에 대한 저주이다.

네번째 저주는 11:46절에서 자신들은 지키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거운 율법의 짐을 지워주는 율법교사들에 대한 것이다. 이들이 사람들에게 지워준 율법의 짐들은 자신들을 거룩하게 보이려고 수도 없이 만들어낸 거짓된 지식이다. 다섯번째 저주는 11:47절에서 예언자들을 죽인 율법교사들의 조상들과 그 무덤을 만드는 율법교사들에게 내린 것이다. 자신들이 사람들에게 지워준 거짓된 지식이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날까봐 참된 지식을 전하는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모두 다 죽인 것이다.

이제 11:52절은 저주 시리즈의 마지막이다. "저주가 있다! 너희 율법교사들에게" 라고 하시며 마지막 저주로 이 부분의 결론을 내리신다. 왜 율법교사들에게 저주가 있는가 하면 이들은 지식의 열쇠를 가지고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다른 사람들도 못들어가게 막았기 때문이다.

지식의 열쇠에 대한 해석은 열쇠와 지식을 동격으로 해석하는 것과 지식을 목적격으로 해석해서 지식을 여는 열쇠로 해석하는 것 두가지로 엇갈린다. 일부 성경해석자들은 열쇠와 지식을 동격으로 해석한다. 이들은 지식 즉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이 곧 열쇠라고 보는 것이다. 이들은 들어가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하나님 말씀을 아는 지식은 열쇠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마태복음 23:13절에서 외식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문을 닫고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자도 막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1:52절은 마태복음 23:13절과 같은 가르침이라고 생각하기에 의미가 분명하게 보이는 마태복음을 근거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성경해석자들은 지식이 열쇠의 목적격으로 보고 지식과 열쇠가 동격이 아니라 지식을 여는 것이 열쇠라고 본다. 열쇠가 천국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지식으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자체의 내용과 전후 문백으로 보면 이 열쇠는 천국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니라 지식 즉 하나님 말씀 자체에 접근하게 하는 열쇠라는 의미이다. 바리새파 율법교사들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알지 못하게 막아 놓았다는 뜻이다.

저주 시리즈들을 연결해 보면 이들은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알려하지 않고 자신들을 거룩하게 보이도록 자기 중심적으로 왜곡하여 해석하여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언자들이 나타나 하나님 말씀의 참된 뜻을 알리려고 하자 그들을 모두 죽였다는 것이다. 누가복음에 나타난 저주 시리즈들은 이들이 하나님 말씀을 자신들을 거룩하게 위장했기에 예수께서 이들에게 저주를 선포하신 것이다. 전후 문맥은 분명히 하나님 말씀을 아는 지식의 문을 닫고 그 열쇠를 갖고 있으면서 자신들도 그 참 뜻을 알려하지 않고 사람들도 알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뜻이다.

성경, 특별히 복음서들을 해석할 때 다른 복음서와 비교해보고 하나의 의미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복음서의 기록들이 실제 있었던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기적이 아니라 나중에 제자들이 꾸며서 쓴 자료를 보고 쓴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기적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서구의 학자들은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 복음서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꾸며쓴 자료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비슷한 가르침을 공생애 동안 단 한번만 가르치셨다고 볼 수는 없다. 마태가 증언한 내용은 누가가 증언한 내용과 비슷한듯 하면서도 너무나 많은 내용이 다르기에 같은 가르침으로 볼 수 없다.

53절은 예수께서 그곳에서 나오실 때 율법학자들과 비리새파 사람들이 시작했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곳은 11:37절에서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새파 사람의 집이다. 그곳에는 많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있었다. 무엇을 시작했는가 하면 지독한 적개심을 품고 둘러싸면서 많은 주제들을 놓고 반대심문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개역에서 "맹렬히 달라붙어" 라고 번역한 말이나 새번역에서 "잔뜩 앙심을 품고서" 라고 번역한 말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최고로 분노하여 모두가 우르르 몰려나와 예수님을 둘러싸는 장면이다. 개역에서 "달라붙어"로 번역한 말은 본래 "안에 갖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54절은 독립된 문장이 아니라 53절에 연결되어있는 절이다. 개역은 "목을 지키더라" 라고 번역하고 새번역은 "노렸다"로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 사냥꾼이 풀숲에 납작 엎드려 사냥감을 노리고 있는 장면이다. 그래서 원어에서 "사냥하려고" 라는 말이 바로 그 뒤에 이어진다. 예수께서 자신들을 그렇게 심한 저주로 욕을 하고 집을 나서시자 함께 음식을 먹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우르르 뛰쳐나가 예수님을 죽일 듯 노려보며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질문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바로 54절에 나온 그림처럼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사냥감을 사냥하려고 엎드려 숨어있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왜곡하여 해석하고 일반 성도들은 그 뜻을 알지 못하도록 막아 놓던 것은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만이 아니다.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종교개혁이 있기 까지는 성직자들이 성경 해석에 관해 독점하고 있었다. 문제는 성경을 자신들을 거룩하게 보이도록 하고 자신들의 권위를 높이도록 왜곡한 것이다.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만 사용하여 일반인들이 직접 읽고 이해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영어로 성경을 번역한 윌리엄 틴데일은 당시 죽임을 당했다. 루터도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했지만 보호해 준 프레데렉 선체후 때문에 죽음을 면했다. 마치 예수께서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이라고 책망한 바리새파 율법학자들과 똑 같은 행동을 했다.

이제 성경은 누구나 다 읽을 수 있도록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있다. 아직 번역되지 못한 언어들도 지금 계속 번역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누구나 관심만 갖고 있으면 여러 번역들을 비교해 보고 그 뜻을 알 수 있다. 노력만 한다면 누구나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익혀 원어로 읽을 수도 있고 수많은 성경 해석에 관한 책들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을 왜곡하여 해석하는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아직도 성경을 자기 중심적으로 왜곡하여 해석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정당화시키고 자신들의 욕심을 이루며 자신들의 신앙을 미화시키는데 이용하려고 한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며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해 밤새도록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우리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말씀에서 말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역시 "저주를 받으라 외식하는 자들이여!" 라고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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