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37-43a 무리 중 하나가 아이를 제자들에게 데려왔지만 치료하지 못했다며 예수님께 치료해 달라고 하자 예수께서는 믿음이 없고 구부러져있다고 책망하시며 귀신을 쫓아내시고 아이를 치료해 주셨다.
이전 말씀에서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임재하신 것을 보았고 예수가 바로 하나님께서 구원사역을 위해 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들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러한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못하거나 잘못된 믿음으로 믿고 있는 당시 사람드를 책망하시는 내용이다.
누가는 37절을 "다음날이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9:28절에서 "팔일쯤 되어" 라고 한 그 다음날이었다는 뜻이다. 9:32절은 "베드로와 함께 있는 자들이 잠에 짓눌려 있을 때" 라는 표현이 있기에 예수께서 변화되신 때는 밤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유대인들은 해가 지면 다음 날이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팔일쯤 되던 날 낮에 산에 올라갔고 그 날 밤부터 다음 날이다. 따라서 다음날이었다는 말은 팔일쯤 되던 날 바로 다음날 아침이 되어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함께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이다.
유대인들 방식으로 계산한다면 그 다음날 아침도 예수께서 변화되시던 그 날과 같은 날이다. 해가 져야만 다음 날이 새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3세기 초 파피루스 사본인 P75와 4세기 대문자 사본인 Codex Alexandrinus를 비롯해서 많은 대문자 사본들과 소문자 사본들은 "다음 날이었다"라는 말 앞에 영어의 "in"에 해당하는 말이 붙어있다. 팔일째 되던 날 바로 그 다음날 어느 시간 중에라는 뜻이다. 이는 유대인들의 날짜 계산 방식에 따르면 해가 뜻 후에도 여전히 바로 팔일째 되던 날 바로 그 다음날이었기 때문이다. 다수의 주석가들도 예수께서 변화되신 그 사건이 밤에 있었고 날이 밝자 아침에 산에서 내려왔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38절은 원어에서 "보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큰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뜻이다. 그 구경거리는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소리질렀다는 말은 누가복음 3:4절에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목소리" 라는 말이서 외쳤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18:7절에서 "날마다 부르짖는 그의 택하신 자들의 원한"이라는 말에서 부르짖는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사도행전 8:7절에서는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 지르며" 라는 말에서 소리지른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선생님! 내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입니다" 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는 뜻이다. 그렇게 큰 소리로 예수님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자기 아들을 굽어살펴 달라고 소리친 거시 바로 큰 구경거리이다. 외아들이라는 말은 이 사람이 정말 불쌍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개역에서 돌아본다고 번역한 말은 표면을 살펴보라는 말이다. 이는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서셔서 땅바닥에 쓰러져 발작하고 있는 이 사람의 아들을 살펴봐 달라는 뜻이다.
39절에도 "보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사람의 아들이 이미 땅에 쓰러져 발작을 하고 있었기에 "저것좀 보십시오!" 라는 뜻이다. 개역에서는 "귀신이 저를 잡아 졸지에 부르짖게 하고" 라고 번역했는데 귀신이라고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는 "한 영"이다. 한 영이 이 사람의 아들을 붙잡아 갑자기 소리지르게 한다는 것이다. 소리를 지르게 한 다음에는 거품과 함께 경련을 일으키게 한다고 했다. 그 다음에는 심히 상하게 한 뒤에야 겨우 떠나간다고 했다. 개역에서 심히 상하게 한다는 말은 "함께" 라는 말과 "문지른다" 라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땅에 쓰러져 발작을 하기에 얼굴과 온 몸을 땅에 문지르며 많이 상하게 한 뒤에 떠나간다는 뜻이다.
40절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간구해서 그 영을 쫓아내 달라고 했는데 그들은 못했다는 것이다. 못했다는 말은 제자들이 그 영을 쫓아낼 만큼 강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은 예수님은 제자들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있다는 뜻이다.
41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이어진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며 말씀하신 것은 "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라는 한탄이다. 패역한 세대라는 말은 구부러졌다는 뜻이기에 믿음이 없고 있는 믿음도 구부러진 쓸모없는 믿음이라는 뜻이다. 이 사람은 분명히 제자들보다 예수님이 더 강하다는 것을 믿고 간구하고 있는데도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라고 말씀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믿음이 없고 세대란 누구를 가리키는가? 세대란 어느 한 사람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당시 모든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없고 구부러진 믿음을 가진 세대는 아이를 치료하는데 실패한 제자들이 아니라 그 아이의 아버지와 무리들을 가리킨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다수의 주석가들은 아이를 치료해 주지 못한 제자들과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던 예수님 당시의 모든 사람들을 뜻한다고 말한다. 이 아버지를 비롯한 무리들은 제자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한 것이고 제자들은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행할 믿음이 없다는 뜻이다. 이어서 예수께서 한탄하시듯 말씀하신 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내가 너희들과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아줘야 하느냐는 것이다. 참는다는 말은 높이 들고 있다는 뜻이다. 무거운 짐을 높이 들고 견디는 모습을 뜻하는 말이다. 믿음이 없는 세대들을 참고 참으시며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며 네 아들을 이리로 데려오라고 하셨다. 그러자 42절에서는 그가 예수님을 향하여 다가올 동안에 라고 했다. 그 아이가 예수님께 다가올 동안에 귀신이 그 아이를 땅에 메어치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했다고 했다. 누가는 이제 그 영이라는 말을 귀신이라는 말로 바꾸어 말한다. 아이가 예수께 다가오자 귀신을 그 아이를 땅에 메어치고 그 다음에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발버둥을 치게 한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더러운 것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치료해주셔서 그 아이의 아버지에게 돌려주었다고 했다. 39절에서는 귀신을 단순히 "한 영" 이라고 부르다가 42절에서는 "귀신" 으로 부르다가 마지막에는 "그 더러운 것" 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더러운 귀신이 이 아이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43절 앞부분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다고 했다. 위엄이라는 말은 아주 크고 장엄하다는 뜻이다.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모두가 다 놀랐다고 했는데 놀랐다는 말은 밖으로 쫓겨났다는 뜻이다. 너무 놀라 한대 얻어 맞고는 정신이 밖으로 쫓겨났다는 뜻이다. 모두가 정신이 그 몸에서 가출할만큼 크게 놀랐다는 뜻이다.
오늘 말씀에서 핵심되는 말은 믿음이 없고 구부졌다는 말이다. 제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무리들이 다 그렇다는 것이다. 믿음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믿기에 구부러진 믿음인 것이다. 제자들이나 예수님 당시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도 역시 믿음이 없거나 구부러져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은다 하면서도 사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수단으로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이다. 구부러진 믿음이 아닌 똑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