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7 로마황제의 명령에 따라 요셉은 약혼자 마리아와 함께 호적을 하러 그의 조상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 갔다가 아들을 낳았는데 아기를 둘 곳이 없어 동물들을 두던 곳에 눕혀 두었다.
이전 말씀에서 사가랴는 성령이 충만하여 예언하기를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신대로 구원자를 일으키셨는데 아침해가 어두운 온 땅을 비추듯 사망의 그늘에 앉아 죽어가는 자들을 구원하시려는 것이고 그 일을 준비하게 하기 위해 요한을 주셨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내용이다.
2:1절은 원어에서 "그 때가 되었을 때" 라는 말로 시작한다. 1:36절에서 엘리사벳이 임신한지 이미 육개월이 되었다고 했기에 요한이 태어난 지 6개월쯤 뒤가 된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옥타비아누스를 말한다. 기원전 27년에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고 로마제국 최고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아우구스투스라는 호칭은 나중에 로마제국 황제의 공식 호칭으로 정착된다.
온 세계라는 말은 본래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는 뜻인데 당시엔 단순히 로마제국 전체를 뜻하는 말로 썼다(BAGD, 561). 또 호적등록을 하라는 말은 세금을 걷기 위한 명부를 만든다는 뜻이다(BAGD, 89). 따라서 로마황제가 로마제국 전체에 모든 사람은 세금 징수 명부에 등록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뜻이다. 2절은 이 호적이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첫번째 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의 재임기간동안 크고 작은 호적등록이 있었기에 맨 처음 한 것이라고 한 것이다.
3절은 모든 사람이 호적등록을 하러 각각 고향으로 갔다고 했다. 호적등록을 하려면 고향에가서 직접 얼굴을 드러내며 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4절은 요셉도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나와 유다에 있는 베들레헴이라 불리우는 다윗의 동네로 갔다고 했다. 갔다는 말이 한글 성경에는 5절에 나오지만 원어에서는 4절 맨 처음에 나온다. 갔다는 말은 올라갔다는 뜻이다. 예루살렘과 유대지역이 높은 지역이었기에 항상 올라간다는 표현을 썼다.
5절은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도 함께 호적하러 갔다고 했다.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르면 약혼은 결혼한 것으로 간주된다. 1년쯤 지난 뒤에 약혼자를 신랑의 집으로 데려가는데 그 이전에 성관계를 갖는 것은 결혼에 관한 관습에서 금지되어있었다. 따라서 아직 신랑의 집으로 데려가지 않은 처녀가 약혼자인 요셉과 함께 여행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는 이미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 1:24-25절에서는 아이를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고 직접 표현한 것이다. 마리아는 이미 잉태되었다고 했기에 요셉은 결혼 전에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숨기기 위해 일찍 자기 집으로 데려왔을 것이다.
6절은 마리아가 거기에 머물러 있을 때 해산할 날이 찼다고 했다. 7절에서 마리아가 맏아들을 낳았다고 했다. 일부 주석가들은 마태복음 1:25절을 근거로 맏아들이라는 표현은 나중에 자녀를 더 낳았는지 아닌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에 낳은 일이 없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또 이 말은 맏아들이라는 말이 마리아가 나중에 자녀를 더 낳았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마리아가 더 이상 자녀를 낳지 않았다면 누가는 독생자라는 표현을 썼을 것이기에 이 말은 마리아가 후에 자녀를 더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맏아들이라는 말이 나중에 태어났던 마리아의 자녀들과 구별하기 위한 표현일 수 있다.
이어서 아이를 천으로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고 말한다. 구유라는 말은 본래 가축의 먹이통을 뜻하는 말이지만 마구간이나 열린 공간에 있는 동물의 우리를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했다. 어떤이는 구유라는 말이 본래 동물의 먹이통을 뜻하지만 동물의 우리라는 의미로 확장되어 쓰였기에 구유에 있는 신생아는 장차 목자가 된다는 신호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 살던 유대인들의 집의 구조를 알 필요가 있다. 당시 유대인들의 집에서 동물의 우리와 사람이 머무는 곳 사이에는 높은 판자 하나로 구분이 되어 있었기에 몇걸음만 옮기면 동물의 우리로 넘어갈 수 있었다. 여관에는 들어갈 곳에 없었다고 했기에 문맥상으로 보면 동물들이 머물던 곳에 뉘였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곳은 우리가 보통 그림으로 보는 것과 같은 외양간은 아닐 것이다. 유목민이던 유대인들은 사람들이 머무는 방과 동물들이 머무는 곳을 같은 공간 안에 넘어오지 못할 정도로 구분만 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께서 모두에게 비난을 받을수 있는 미혼모의 몸을 통해 오셨다. 마리아의 약혼자인 요셉은 그런 마리아가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리 데려와 함께 살았던 것이다. 당시 세상의 최고 권력자이던 로마황제가 명령하자 모두가 다 이동을 하는 모습과 만왕의 왕이시고 영원한 왕이 이 땅에 오셨는데 여관에 누울 곳도 없어 집 안에 있는 동물들이 머무는 곳에 누우셨다는 것이 대조가 된다. 예수님은 그렇게 낮고 낮은 우리를 위해 낮은 자리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공감하시고 우리의 고통을 함께 느끼신 분이시다.